무신론의 교사, 신을 경험한 충격 (사진 = 명혜망) 파룬궁(法輪功·중국 심신수련법, 파룬따파[法輪大法], 대법이[大法​]이라고도 함)이 1992년부터 전해진 후 오늘까지 22년 남짓 된다. 그중 최근 16년은 박해 속에서 지나왔다. 놀랍게도 파룬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수 년 만에 1억에 달하는 중국인이 수련하게 되었다. 그 후 중공이 모든 국가 시스템을 동원하여 잔혹한 탄압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의연히 전세계로 퍼져나갔을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정계 요인과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은 세계 100여 개 나라에 널리 전해졌으며, 많은 민족·나이·직업의 사람들이 수련의 문에 들어섰다. 이 세상에 도대체 신(神)이 있을까 없을까? 무신론자였던 퇴직 교사가 직접 겪은 충격적 체험으로 유신론자가 된 사연을 소개한다. 아래는 11월 11일 명혜망(明慧網)에 게재된 글이다. 나는 퇴직교사로서 60세를 넘었다. 나는 일찍 뿌리 깊은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에 파묻혀 성장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누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내심 그를 비웃으면서 미신을 믿는 우매한 바보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오히려 확고한 유신론자가 됐다. 이제부터 나의 변화 과정을 간단히 서술해 보려 한다. 1998년부터 중국에는 기공(氣功) 붐이 일어 다양한 종류의 기공이 나타났다. 아침에 나가보면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연마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연마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사람이 많으면 가보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또 가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연마해 보았고 이는 매우 즐거웠다. 이렇게 나는 거의 모든 공법을 한 번씩은 다 연마해 보고 비교해 보았다. 아무래도 파룬궁이 좋았다. 연마하고 나면 몸이 가볍고 친구 또래도 있으므로 파룬궁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약 한 달가량 연마했는데 수련생이 하는 말이 파룬궁에 책도 있다고 했다. 나는 몹시 놀랐다. 파룬궁은 연공 동작 몇 개를 연마 하는 체육이 아니었나? 어찌하여 또 책이 있는가? 있다고 하니 그럼 보자. 우선 본 것이 ‘전법륜’에 있는 ‘논어’였다. ‘논어’의 내용은 아주 신선하고 남다른 감을 주었다. 다시 목차를 보니 호기심 가는 부분이 많았다. 무슨 천목(天目)이요, 요시(遙視) 공능이요, 숙명통(宿命通)이요, 벽곡(辟穀,단식)이요, 부체(附體)요 하는 등등은 평소에 궁금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이것들을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부분 부분 골라 읽다 보니 안 읽은 부분이 얼마 없게 되어서 아예 다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내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이 책은 내 일생에 꿈도 꿔보지 못한 신기한 책이었다. 이는 바로 수련의 책이고 몸을 건강히 하면서 심성을 닦아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평이하게 서술된 이 책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매우 이치가 있어 나의 무신론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나의 시야는 크게 넓어졌다. 특히 제4강 ‘실과 득’, ‘업력의 전화’ 이 두 개 부분의 내용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단번에 깨우쳐 주었다. 이는 마치 두 갈래 햇빛이 내가 사는 마을을 비춰주는 듯 너무도 밝은 깨달음이었다. 오! 원래는 이런 일이였구나! 파룬궁에는 5개의 공법 동작이 있다. 전 1~4장은 동공(動功)이라 아침에 나가서 단체로 연공하고, 제5장은 정공(靜功)이라 가부좌하고 앉아서 하므로 사람들은 집에서 연마했다. 그러나 나는 동공만 하고 정공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은 교사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감정상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홀로 방 한 칸을 쓰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중 12시에 깨어났는데 도무지 다시 잠도 오지 않고 누워있자니 싱숭생숭했다. 뭘 할까? 옆방의 집사람 잠을 깨울 수는 없으니 아예 정공을 해보자. 나는 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서 눈을 감고 조용한 상태에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에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전생(前生)이었다. 다 보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나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육도윤회가 정말임을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정말 너무 신기했고 너무 불가사의했다. 나는 들끓는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으나 며칠간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천목(天目)이 열려 다른 공간의 정경을 나 자신의 의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천목이 열리는 과정 역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과정이었다. 어느 날 오후 2시 넘어서, 나는 회의실에서 십여 명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계속 앉아 있다가 아래를 바라보았더니 다른 공간의 정경이 보였는데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고개를 들어 회의장을 보니 햇빛은 찬란하고 지도자와 동료들이 현실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시 머리를 숙이고 아래를 바라보니 여전히 다른 공간의 정경이 보였다. 그 또렷함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천목을 열어 주셨음을 금새 알게 됐다. 놀랍기도 하고 격동되기도 했다. 파룬궁이 하는 말은 모두 정말이었다. 내색을 내지 않으려고 힘껏 자신을 억제했지만, 이는 무신론자인 나에게는 또 한 차례 중대한 충격이었다. 후에 나는 또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하신 설법 몇 편을 보았다. 그중 한 편은 미국에서 하신 설법이었는데 전문 과학의 각도로부터 우주의 구조, 공간의 구분, 신불(神佛)이란 무엇인가를 말씀하셨고, 동시에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우주 중에서의 위치 및 삼자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마음은 흥분했으면서도 차분한 그런 상태가 되었다. 무신론에 빠지면서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두 개의 의문이 단번에 해결되었다.직접 겪은 일 : 무신론이 무너지다하나는 내가 6살 때 겪은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마을 앞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작은 강이 있었다. 그해 여름 어느날, 강 상류에서는 물을 빼서 하류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점심때 나는 너무 더워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른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기에 나는 홀로 강변에 물 구경을 갔다. 나는 강물과 가깝고 가장 낮아 수평면보다 반 자 가량 높은 단단한 땅을 찾았다. 온 강변에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강물은 소용돌이치며 흘러왔다가는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곳에 서서 물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의 땅이 꺼져 내려갔다. 단단해 보였던 땅 표면 밑은 물에 파여 비어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마치 무너지는 절벽 위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깜짝 놀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이 순간 무형의 커다란 손 하나가 나를 단숨에 들어 뒤쪽에 놓아주었는데 나는 신발 바닥도 젖지 않았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어른들께 야단맞을 까봐 물어볼 수도 없었다. 5, 60년이 지나갔다. 그때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여 마치 방금 발생한 일 같았다. 다른 한 가지 일은 30년 전이다. 병이 중한 나의 어머니는 마지막 목숨을 부지하며 자리에 누워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큰 소리를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흔들면서 물었다. “엄마, 꿈 꾸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야, 네 할머니가 오셔서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마차를 타고 오셨어.” 내가 말했다: “엄마, 가긴 어딜 가요? 우린 헤어지지 않아요.” 어머니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일 점심 12시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더라.” 결과적으로 이튿날 오후 1시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는 지식도 없는 소박하고 무던한 농촌 부인이므로 그 시각 어머니가 무슨 거짓말을 지어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신론의 각도에서 보니 이런 것이 너무도 쉽게 이해되었다. 십여 년 동안의 실천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신불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는 그야말로 진리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파룬궁을 배운 후 나의 신체와 사상에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일신에 병이 없어 좋았고 일을 대함에 맑고 이성적이었으며, 인생을 웃음으로 대할 수 있는 태연함을 갖추어, 나는 정말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다. 중공은 일관되게 무신론을 선전하고, 수차례의 정치 운동, 특히 문화 대혁명을 수단으로 신을 믿는 전통 중화 문화를 철저히 말살했다. 하지만 중공 당수와 많은 고관이 오히려 귀신을 믿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신불이 세간에서 뜻을 펼치고 있음을 세인들은 깨우칠 수가 있다. 그런 많은 일들이 도처에서 생생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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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의 교사, 신을 경험한 충격
  • [ 기사입력   2015-11-17 오전 10:54 ]

     

    (사진 = 명혜망)

     

    파룬궁(法輪功·중국 심신수련법, 파룬따파[法輪大法], 대법이[大法​]이라고도 함)이 1992년부터 전해진 후 오늘까지 22년 남짓 된다. 그중 최근 16년은 박해 속에서 지나왔다.

     

    놀랍게도 파룬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수 년 만에 1억에 달하는 중국인이 수련하게 되었다. 그 후 중공이 모든 국가 시스템을 동원하여 잔혹한 탄압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의연히 전세계로 퍼져나갔을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정계 요인과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은 세계 100여 개 나라에 널리 전해졌으며, 많은 민족·나이·직업의 사람들이 수련의 문에 들어섰다.

     

    이 세상에 도대체 신(神)이 있을까 없을까? 무신론자였던 퇴직 교사가 직접 겪은 충격적 체험으로 유신론자가 된 사연을 소개한다. 아래는 11월 11일 명혜망(明慧網)에 게재된 글이다.

     

    나는 퇴직교사로서 60세를 넘었다. 나는 일찍 뿌리 깊은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에 파묻혀 성장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누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내심 그를 비웃으면서 미신을 믿는 우매한 바보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오히려 확고한 유신론자가 됐다. 이제부터 나의 변화 과정을 간단히 서술해 보려 한다.

     

    1998년부터 중국에는 기공(氣功) 붐이 일어 다양한 종류의 기공이 나타났다. 아침에 나가보면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연마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연마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사람이 많으면 가보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또 가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연마해 보았고 이는 매우 즐거웠다. 이렇게 나는 거의 모든 공법을 한 번씩은 다 연마해 보고 비교해 보았다. 아무래도 파룬궁이 좋았다. 연마하고 나면 몸이 가볍고 친구 또래도 있으므로 파룬궁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약 한 달가량 연마했는데 수련생이 하는 말이 파룬궁에 책도 있다고 했다. 나는 몹시 놀랐다. 파룬궁은 연공 동작 몇 개를 연마 하는 체육이 아니었나? 어찌하여 또 책이 있는가? 있다고 하니 그럼 보자.

     

    우선 본 것이 ‘전법륜’에 있는 ‘논어’였다. ‘논어’의 내용은 아주 신선하고 남다른 감을 주었다. 다시 목차를 보니 호기심 가는 부분이 많았다. 무슨 천목(天目)이요, 요시(遙視) 공능이요, 숙명통(宿命通)이요, 벽곡(辟穀,단식)이요, 부체(附體)요 하는 등등은 평소에 궁금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이것들을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부분 부분 골라 읽다 보니 안 읽은 부분이 얼마 없게 되어서 아예 다 보고 말았다. 그리고 내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이 책은 내 일생에 꿈도 꿔보지 못한 신기한 책이었다. 이는 바로 수련의 책이고 몸을 건강히 하면서 심성을 닦아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평이하게 서술된 이 책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매우 이치가 있어 나의 무신론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나의 시야는 크게 넓어졌다. 특히 제4강 ‘실과 득’, ‘업력의 전화’ 이 두 개 부분의 내용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단번에 깨우쳐 주었다. 이는 마치 두 갈래 햇빛이 내가 사는 마을을 비춰주는 듯 너무도 밝은 깨달음이었다. 오! 원래는 이런 일이였구나!

     

    파룬궁에는 5개의 공법 동작이 있다. 전 1~4장은 동공(動功)이라 아침에 나가서 단체로 연공하고, 제5장은 정공(靜功)이라 가부좌하고 앉아서 하므로 사람들은 집에서 연마했다. 그러나 나는 동공만 하고 정공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은 교사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감정상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홀로 방 한 칸을 쓰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중 12시에 깨어났는데 도무지 다시 잠도 오지 않고 누워있자니 싱숭생숭했다. 뭘 할까? 옆방의 집사람 잠을 깨울 수는 없으니 아예 정공을 해보자. 나는 가부좌하고 단정히 앉아서 눈을 감고 조용한 상태에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에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전생(前生)이었다. 다 보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나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육도윤회가 정말임을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정말 너무 신기했고 너무 불가사의했다. 나는 들끓는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으나 며칠간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천목(天目)이 열려 다른 공간의 정경을 나 자신의 의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천목이 열리는 과정 역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과정이었다. 어느 날 오후 2시 넘어서, 나는 회의실에서 십여 명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계속 앉아 있다가 아래를 바라보았더니 다른 공간의 정경이 보였는데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고개를 들어 회의장을 보니 햇빛은 찬란하고 지도자와 동료들이 현실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시 머리를 숙이고 아래를 바라보니 여전히 다른 공간의 정경이 보였다. 그 또렷함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천목을 열어 주셨음을 금새 알게 됐다. 놀랍기도 하고 격동되기도 했다. 파룬궁이 하는 말은 모두 정말이었다. 내색을 내지 않으려고 힘껏 자신을 억제했지만, 이는 무신론자인 나에게는 또 한 차례 중대한 충격이었다. 후에 나는 또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하신 설법 몇 편을 보았다. 그중 한 편은 미국에서 하신 설법이었는데 전문 과학의 각도로부터 우주의 구조, 공간의 구분, 신불(神佛)이란 무엇인가를 말씀하셨고, 동시에 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우주 중에서의 위치 및 삼자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 마음은 흥분했으면서도 차분한 그런 상태가 되었다. 무신론에 빠지면서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두 개의 의문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직접 겪은 일 : 무신론이 무너지다

    하나는 내가 6살 때 겪은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마을 앞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작은 강이 있었다. 그해 여름 어느날, 강 상류에서는 물을 빼서 하류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점심때 나는 너무 더워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른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기에 나는 홀로 강변에 물 구경을 갔다. 나는 강물과 가깝고 가장 낮아 수평면보다 반 자 가량 높은 단단한 땅을 찾았다. 온 강변에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강물은 소용돌이치며 흘러왔다가는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곳에 서서 물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의 땅이 꺼져 내려갔다. 단단해 보였던 땅 표면 밑은 물에 파여 비어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마치 무너지는 절벽 위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깜짝 놀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이 순간 무형의 커다란 손 하나가 나를 단숨에 들어 뒤쪽에 놓아주었는데 나는 신발 바닥도 젖지 않았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어른들께 야단맞을 까봐 물어볼 수도 없었다. 5, 60년이 지나갔다. 그때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여 마치 방금 발생한 일 같았다.

     

    다른 한 가지 일은 30년 전이다. 병이 중한 나의 어머니는 마지막 목숨을 부지하며 자리에 누워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큰 소리를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흔들면서 물었다. “엄마, 꿈 꾸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야, 네 할머니가 오셔서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마차를 타고 오셨어.” 내가 말했다: “엄마, 가긴 어딜 가요? 우린 헤어지지 않아요.” 어머니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일 점심 12시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더라.” 결과적으로 이튿날 오후 1시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는 지식도 없는 소박하고 무던한 농촌 부인이므로 그 시각 어머니가 무슨 거짓말을 지어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신론의 각도에서 보니 이런 것이 너무도 쉽게 이해되었다.

     

    십여 년 동안의 실천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신불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는 그야말로 진리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파룬궁을 배운 후 나의 신체와 사상에는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일신에 병이 없어 좋았고 일을 대함에 맑고 이성적이었으며, 인생을 웃음으로 대할 수 있는 태연함을 갖추어, 나는 정말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다.

     

    중공은 일관되게 무신론을 선전하고, 수차례의 정치 운동, 특히 문화 대혁명을 수단으로 신을 믿는 전통 중화 문화를 철저히 말살했다. 하지만 중공 당수와 많은 고관이 오히려 귀신을 믿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신불이 세간에서 뜻을 펼치고 있음을 세인들은 깨우칠 수가 있다. 그런 많은 일들이 도처에서 생생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원문 링크:www.ntdtv.com/xtr/b5/2015/11/12/a12351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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