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 국무원 처장, 장쩌민한테 “7번 박해, 70가지 고문받았다” [앵커]중국의 법을 어겨가면서 파룬궁을 박해한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을 고소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1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고소자 중에는 중공 국무원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전직 관료도 1명 포함됐습니다. 마르스크-레닌주의 신봉자로 당내 요직을 역임했던 사람이 어쩌다가 전직 총서기를 고소하게 됐을까. 장이제(張亦潔)씨의 사연을 전합니다. [기자] 1989년12월, 차우셰스쿠의 공산독재에 저항하는 루마니아인들이 봉기했습니다. 장이제 씨는 당시 주 루마니아 중국 대사관 경제 2급 비서관이었습니다. [장이제] “빗발치는 총알을 무릅쓰고 제1선을 뚫고 들어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외교부의 비밀전보로 (중공) 중앙 지도자의 사무실에 보고했지요.” 7일간의 혁명으로 루마니아 공산당의 독재가 종식됐습니다. 그러나 장 씨는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정보가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왜곡 보도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장이제] “(그들은) 루마니아 혁명 과정을 자기네(중공) 정권 입장에 따라 마구 편집해 전국민을 기만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크게 충격받고 그것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장 씨와 동료들은 차우셰스쿠와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진압명령을 내렸고 나중에는 그 자신이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장 씨는 인생의 의미와 역사적 순간에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귀국 후, 장 씨는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생명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장 씨는 독서와 역사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몇 가지 기공도 수련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습니다. 1994년 말, 장 씨는 여동생으로부터 파룬궁(法輪功) 서적인 ‘전법륜’(轉法輪)을 우편으로 받게 됐습니다. 전법륜을 다 읽은 그녀는 집의 거실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이제] “‘전법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내 인생의 모든 의문에 답을 줬습니다. 인간 세상의 어떠한 과학, 어떠한 사상과도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더군요.” 장 씨의 기억으로 당시 대외경제무역합작부에서는 약 70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큰 고위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면서 중공 고위층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탄압대상이 됐습니다. [장이제] “약 일곱 차례 체포됐습니다. 리란칭(李嵐清)의 명령으로 노동교양형을 받게 됐지요.” 장 씨는 수면박탈 등 70여종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한 동물실험에서는 수면박탈 14일째 동물이 사망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장 씨는 무려 42일 동안 수면을 박탈당했습니다. [장이제] “42일동안 밤낮 없이 서있게 했습니다. 9명이 교대해가며 24시간 감시했습니다. 잠은 커녕 졸지도 못했죠. 너무 졸려서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감시자들이 찬 얼음물을 끼얹었습니다. 당시 베이징 노동교양소에는 ‘4대 악녀’가 있어서 그녀들은 나를 발로 차곤 했는데, 발길 질 한 번에 반대쪽 벽으로 날아가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몇 대 맞으면 나는 쇼크(로 기절)했어요.” 장씨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사람이 신앙으로 인해 심령이 맑아지고 자신과 타인, 천지 만물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 중공의 감옥에서 무엇이 존엄을 ‘유린’하는 것인지도 체험했다. [장이제] “화장실도 못 가게 했고 대소변도 못 보게 했어요. 4,5일째 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옷을 입은 채 소변을 보고 말았어요. 그들은 나를 오줌 위로 넘어뜨렸습니다. 나는 옷을 바꿔 입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거부했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고 전향하기만 하면 즉시 새 옷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교환조건이었죠.” 전향이란 중공에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해준 것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 파룬궁 창시자를 비난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경찰은 수련생 1명을 전향시키면 수백~수천 위안의 상금을 받습니다. 장 씨는 몹시 황당했습니다. [장이제] “공산당은 (자신의) 사악함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당을 신앙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들겠다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 당이 어디 있습니까?” 2006년, 형을 마치고 석방된 장 씨는 혼자 태국으로 도피해 이후 미국 뉴욕으로 오게 됐습니다. [장이제] “다행인 것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또 아직 살아있는 것이죠. 내가….” 장 씨는 올해 정식으로 중국의 최고인민법원, 최고검찰원에 장쩌민에 대한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장이제] “… 16년의 박해는 너무 깁니다. 끝낼 때가 됐습니다. 파룬따파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내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NTD 뉴스 린란, 쑹성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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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 국무원 처장, 장쩌민한테 “7번 박해, 70가지 고문받았다”
  • [ 기사입력   2015-08-21 오후 06:13 ]

     


     

    [앵커]

    중국의 법을 어겨가면서 파룬궁을 박해한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을 고소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1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고소자 중에는 중공 국무원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전직 관료도 1명 포함됐습니다. 마르스크-레닌주의 신봉자로 당내 요직을 역임했던 사람이 어쩌다가 전직 총서기를 고소하게 됐을까. 장이제(張亦潔)씨의 사연을 전합니다.

     

    [기자]

    1989년12월, 차우셰스쿠의 공산독재에 저항하는 루마니아인들이 봉기했습니다. 장이제 씨는 당시 주 루마니아 중국 대사관 경제 2급 비서관이었습니다.

     

    [장이제]

    “빗발치는 총알을 무릅쓰고 제1선을 뚫고 들어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외교부의 비밀전보로 (중공) 중앙 지도자의 사무실에 보고했지요.”

     

    7일간의 혁명으로 루마니아 공산당의 독재가 종식됐습니다. 그러나 장 씨는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정보가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왜곡 보도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장이제]

    “(그들은) 루마니아 혁명 과정을 자기네(중공) 정권 입장에 따라 마구 편집해 전국민을 기만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크게 충격받고 그것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장 씨와 동료들은 차우셰스쿠와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진압명령을 내렸고 나중에는 그 자신이 총살형을 당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장 씨는 인생의 의미와 역사적 순간에 개인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귀국 후, 장 씨는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생명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장 씨는 독서와 역사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몇 가지 기공도 수련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습니다.

     

    1994년 말, 장 씨는 여동생으로부터 파룬궁(法輪功) 서적인 ‘전법륜’(轉法輪)을 우편으로 받게 됐습니다. 전법륜을 다 읽은 그녀는 집의 거실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이제]

    “‘전법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내 인생의 모든 의문에 답을 줬습니다. 인간 세상의 어떠한 과학, 어떠한 사상과도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더군요.”

     

    장 씨의 기억으로 당시 대외경제무역합작부에서는 약 70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영향력이 큰 고위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면서 중공 고위층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탄압대상이 됐습니다.

     

    [장이제]

    “약 일곱 차례 체포됐습니다. 리란칭(李嵐清)의 명령으로 노동교양형을 받게 됐지요.”

     

    장 씨는 수면박탈 등 70여종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한 동물실험에서는 수면박탈 14일째 동물이 사망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장 씨는 무려 42일 동안 수면을 박탈당했습니다.

     

    [장이제]

    “42일동안 밤낮 없이 서있게 했습니다. 9명이 교대해가며 24시간 감시했습니다. 잠은 커녕 졸지도 못했죠. 너무 졸려서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감시자들이 찬 얼음물을 끼얹었습니다. 당시 베이징 노동교양소에는 ‘4대 악녀’가 있어서 그녀들은 나를 발로 차곤 했는데, 발길 질 한 번에 반대쪽 벽으로 날아가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몇 대 맞으면 나는 쇼크(로 기절)했어요.”

     

    장씨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사람이 신앙으로 인해 심령이 맑아지고 자신과 타인, 천지 만물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 중공의 감옥에서 무엇이 존엄을 ‘유린’하는 것인지도 체험했다.

     

    [장이제]

    “화장실도 못 가게 했고 대소변도 못 보게 했어요. 4,5일째 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옷을 입은 채 소변을 보고 말았어요. 그들은 나를 오줌 위로 넘어뜨렸습니다. 나는 옷을 바꿔 입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거부했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고 전향하기만 하면 즉시 새 옷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교환조건이었죠.”

     

    전향이란 중공에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해준 것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 파룬궁 창시자를 비난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경찰은 수련생 1명을 전향시키면 수백~수천 위안의 상금을 받습니다. 장 씨는 몹시 황당했습니다.

     

    [장이제]

    “공산당은 (자신의) 사악함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당을 신앙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들겠다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 당이 어디 있습니까?”

     

    2006년, 형을 마치고 석방된 장 씨는 혼자 태국으로 도피해 이후 미국 뉴욕으로 오게 됐습니다.

     

    [장이제]

    “다행인 것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또 아직 살아있는 것이죠. 내가….”

     

    장 씨는 올해 정식으로 중국의 최고인민법원, 최고검찰원에 장쩌민에 대한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장이제]

    “… 16년의 박해는 너무 깁니다. 끝낼 때가 됐습니다. 파룬따파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내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NTD 뉴스 린란, 쑹성화입니다

     


  • 글로벌 원문 링크:www.ntdtv.com/xtr/gb/2015/08/12/a1216834.html#sthash.5Kbu0Z25.dp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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