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화학무기 공격…‘히틀러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3일 미 의회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지난 8월 21일 화학무기 공격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날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마틴 템프시 미 합참의장이 출석해 증언했다.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1차 대전서 처음 대량 사용후세인이 금기 깼으나 침묵“백년 감축노력 힘 잃어”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된 시리아 시민봉기가 내전으로 확대된 이후 국제 사회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주시해왔다. 지난 8월 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위치한 반군 점령지에서 신경가스 공격 징후가 포착됐다. 미국은 자국 정보당국의 보고서를 인용, 신경 독가스인 사린가스 공격으로 최소 1429명이 죽었고 이중 최소 426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시리아가 금지선(red line)을 넘었다’고 비난하며 당장 시리아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태세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월 30일 먼저 의회 승인을 받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양군 모두 사용… 9만 명 희생돼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8월 31일자)는 화학무기가 탄생 때부터 그 사용이 금기시됐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서방세계는 이미 1899년 ‘질식가스 발산’을 금지하는 헤이그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격전지였던 현 벨기에 서부 이프러스(Ypres)에서 처음 염산가스를 살포했다. 이후 연합군과 독일군 양편에서 모두 화학무기를 사용해 최소 9만 명이 사망했다. 또 사망자 수의 10배가 넘는 100만 명이 화학무기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 화학무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1차 대전 전체 전사자 수의 1%에도 못 미쳤지만, 전쟁이 끝난 후 서방 국가들은 1925년 제네바 협정을 통해 화학무기 사용 금지를 재확인했다. 이후에도 서방 열강들은 계속 화학무기를 개발했지만 대량 사용은 철저히 금기시했다. 2차 대전서 일본만이 사용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화학무기를 사용한 국가는 일본뿐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2000차례에 걸쳐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피해자 수는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놀라운 점은 나치 정권조차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사용하면서도 전장에서는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군이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역사가들은 히틀러가 1차 대전 당시 본인이 독가스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어 개인적으로 화학무기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일례로 히틀러가 주요 무기 개발구역 중에서 유일하게 방문하지 않은 곳이 화학무기 실험장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화학무기는 ‘히틀러조차 사용하지 않은 무기’라는 악명을 새롭게 얻게 됐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본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연합군보다 훨씬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개발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2차 대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미군 장군 오마르 브래들리는 나치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면 2차 대전의 승패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리아·북한 금지협약 조인 거부2차 대전 이후 제네바협정이 위반된 사례는 이번 시리아를 제외하고는 1980년대 이라크가 유일하다.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과 자국 내 소수민족 학살에 독가스를 이용, 약 5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1988년 할랍자(Halabja)라는 쿠르드족 마을 공격으로 주민 3000~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미국을 포함해 국제사회는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했을 뿐 후세인에게 군사적 타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7년 유엔 화학무기금지협약이 발효됐는데, 화학무기의 사용뿐 아니라 생산과 판매까지 금지․제한했다. 세계 인구의 98%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이 협약을 조인했으나 북한과 시리아는 조인을 거부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번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도 군사 개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리아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가능성 때문에 잃을 것만 있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 군축운동연합(ACA)의 대럴 킴벌 회장은 이번에는 후세인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킴벌 회장은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후세인을 실질적으로 제지하지 못함으로써 1세기에 걸친 화학무기 감축 노력이 그 힘을 잃게 됐다고 진단했다. 킴벌 회장은 당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침묵함으로써 “후세인이 전쟁에서 화학무기를 계속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 무기를 개발하게끔 충동질한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   Section - | 뉴스 | 라이프 | 연재 | 엔터테인먼트 | 칼럼 | 오피니언
  •   Category - | 국제 | 경제 | 시사 | 중국 | 전국
  • 뉴스 Edition > 국제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히틀러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 [ 기사입력   2013-09-06 14:10:32 ]

      지난 3일 미 의회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지난 8월 21일 화학무기 공격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날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마틴 템프시 미 합참의장이 출석해 증언했다. Chip Somodevilla/Getty Images

       

       

      1차 대전서 처음 대량 사용
      후세인이 금기 깼으나 침묵
      “백년 감축노력 힘 잃어”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된 시리아 시민봉기가 내전으로 확대된 이후 국제 사회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주시해왔다.


      지난 8월 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위치한 반군 점령지에서 신경가스 공격 징후가 포착됐다. 미국은 자국 정보당국의 보고서를 인용, 신경 독가스인 사린가스 공격으로  최소 1429명이 죽었고 이중 최소 426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시리아가 금지선(red line)을 넘었다’고 비난하며 당장 시리아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태세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월 30일 먼저 의회 승인을 받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양군 모두 사용… 9만 명 희생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8월 31일자)는 화학무기가 탄생 때부터 그 사용이 금기시됐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서방세계는 이미 1899년 ‘질식가스 발산’을 금지하는 헤이그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격전지였던 현 벨기에 서부 이프러스(Ypres)에서 처음 염산가스를 살포했다. 이후 연합군과 독일군 양편에서 모두 화학무기를 사용해 최소 9만 명이 사망했다.

       

      또 사망자 수의 10배가 넘는 100만 명이 화학무기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 화학무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1차 대전 전체 전사자 수의 1%에도 못 미쳤지만, 전쟁이 끝난 후 서방 국가들은 1925년 제네바 협정을 통해 화학무기 사용 금지를 재확인했다. 이후에도 서방 열강들은 계속 화학무기를 개발했지만 대량 사용은 철저히 금기시했다.

       

      2차 대전서 일본만이 사용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화학무기를 사용한 국가는 일본뿐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2000차례에 걸쳐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피해자 수는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놀라운 점은 나치 정권조차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사용하면서도 전장에서는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군이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역사가들은 히틀러가 1차 대전 당시 본인이 독가스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어 개인적으로 화학무기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일례로 히틀러가 주요 무기 개발구역 중에서 유일하게 방문하지 않은 곳이 화학무기 실험장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화학무기는 ‘히틀러조차 사용하지 않은 무기’라는 악명을 새롭게 얻게 됐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본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연합군보다 훨씬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개발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2차 대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미군 장군 오마르 브래들리는 나치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면 2차 대전의 승패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리아·북한 금지협약 조인 거부


      2차 대전 이후 제네바협정이 위반된 사례는 이번 시리아를 제외하고는 1980년대 이라크가 유일하다.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과 자국 내 소수민족 학살에 독가스를 이용, 약 5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1988년 할랍자(Halabja)라는 쿠르드족 마을 공격으로 주민 3000~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미국을 포함해 국제사회는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했을 뿐 후세인에게 군사적 타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7년 유엔 화학무기금지협약이 발효됐는데, 화학무기의 사용뿐 아니라 생산과 판매까지 금지․제한했다. 세계 인구의 98%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이 협약을 조인했으나 북한과 시리아는 조인을 거부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번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도 군사 개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리아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가능성 때문에 잃을 것만 있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 군축운동연합(ACA)의 대럴 킴벌 회장은 이번에는 후세인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킴벌 회장은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후세인을 실질적으로 제지하지 못함으로써 1세기에 걸친 화학무기 감축 노력이 그 힘을 잃게 됐다고 진단했다. 킴벌 회장은 당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침묵함으로써 “후세인이 전쟁에서 화학무기를 계속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 무기를 개발하게끔 충동질한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Tweeter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