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융캉 자금줄 ‘페트로차이나’의 몰락 장제민(蔣洁敏). (Getty Images)중국의 3대 석유회사의 하나이자 저우융캉의 자금줄로 알려진 페트로차이나의 고위간부 4명이 최근 줄줄이 체포되고 있는 가운데 9월 1일 오전, 중공의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는 정부급(正部級)인 국무원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이하 국자위)의 주임이자 전 페트로차이나 회장인 장제민(蔣洁敏)이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장제민은 전 중공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의 심복으로 장제민 체포는 페트로차이나의 저우융캉 계열 전체 붕괴를 의미한다. 공개된 정보로는 장제민은 1955년에 출생했으며 1972년 12월에 산둥 승리(勝利)유전을 시작으로 성리석유관리국 부국장 등을 22년 동안 역임했다. 장제민은 석유업종의 엔지니어부터 시작해 4년간 정계에 몸을 담은 때를 제외하고 37년 동안 석유 업종에 종사했다. 80년대에 저우융캉은 승리유전 당 서기 등을 역임하면서 ‘승리계의 대부’라 여겨졌다. 또, 이미 체포된 궈융샹(郭永祥)은 당시 승리유전 당 위원회 사무실 비서로 근무했다. 장제민,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조사 중공 당국은 9월 1일 국자위 주임을 맡은 지반 년이 채 되지 않은 장제민이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중기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18차 당 대회 이후 첫 번째로 낙마한 중앙 위원이다. 보시라이가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8월 26일에 중기위와 국자위는 잇따라 페트로차이나 4명의 고위간부가 조사를 받았다는 정보를 공개했으며, 이틀 간격으로 4명의 고위간부는 모두 낙마해 여론의 관심거리가 됐다.페트로차이나의 고위 간부가 낙마했을 때 장제민은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9월 1일 자 중국 재신망(財新網)의 보도에 따르면 8월 27일에 리화린(李華林) 등 세 명의 고위 간부가 조사를 받았다고 발표했을 때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국자위 당 위원회 서기인 장이(張毅)와 장제민은 퇴임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된 8월 26일에 중기위는 페트로차이나의 왕융춘이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바로 공개했다. 왕융춘은 장제민의 심복으로 한때 18차 당 대회 후에 장제민의 후임으로 거론됐었다. 중국경영보(中國經營報)에 따르면 페트로차이나 4명의 고위간부가 조사받기 전 2013년 상반기부터 시작해 페트로차이나의 쿤룬(昆仑)천연가스이용유한공사 전 사장인 타오위춘(陶玉春)은 이미 관련 부서의 조사에 협조했으며 업계에서는 타오위춘이 관련 조사를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여긴다고 했다. 타오위춘과 그다음 조사를 받은 쓰촨성의 인민대표대회 전 부주임 궈융샹과 리화린은 모두 페트로차이나의 승리 유전에서 근무했다. 페트로차이나에 대한 부정부패 척결이 전개됨에 따라 석유화학 계통에서만 잘 알려진 승리 유전이 조금씩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페트로차이나는 줄곧 저우융캉 세력들이 장악해왔다. 타오위춘에서 궈융샹까지 다시 3명의 고위간부부터 현재 저우융캉의 페트로차이나의 제일 핵심 심복인 장제민까지 조사받았다. 이 때문에 페트로차이나 내의 저우융캉 심복들은 거의 체포됐다. 페트로차이나 숙청 작업에 언론 관심 집중 중국 석유업계에서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국제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8월 28일 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석유업종은 지금까지 실세들의 세력 범위에 있었다. 이 때문에 어떤 조사도 할 수 없는 불가침 영역이었다.이에 대해 조지아주립대학의 와이드만 정치학 교수는 “이는 하나의 도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의 수중에는 두려울 정도로 많은 권력이 집중돼 있고 이러한 집중된 권력은 이들로 하여금 비리를 저지를 수 있게 해주고 권력을 이용해 부정부패 행위를 은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중공은 11월에 회의를 개최해 향후 10년 동안의 경제개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BBC의 분석가 덩컨 씨는 9월 1일, 정부가 개혁 측면에서 국유기업의 방해를 받기 때문에 기율부서가 이때부터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베테랑 분석가는 “페트로차이나 그룹은 중국에서 제일 큰 독점기업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줄곧 숙정의 목표가 됐다. 하지만 페트로차이나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부패해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저우융캉, 입막음을 위해 부하 살해 저우융캉은 석유업종에서 38년간 종사했다. 그가 과거 장쩌민의 측근인 청칭홍(曾慶紅)과 석유부에서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 석유업의 대표적인 독점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 그룹은 청칭홍과 저우융캉 계열에서 장악해왔다.본지의 이전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장악했던 공안계통은 파룬궁 탄압 외에도 부하를 위협하며 입막음을 위해 살해까지 했다. 또, 장제민은 비리와 여러 건의 살인사건에도 연루돼있다. 특히 중기위는 페트로차이나의 장부에서 거액이 저우융캉에 흘러들어 갔으며 파룬궁 탄압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냈다.다른 소식에 따르면 2012년 3월 18일 베이징에서 발생한 페라리 차 사고는 저우융캉이 보시라이 낙마를 추진한 사람에 대한 정치적인 암살이라고 한다. 당시 사망한 사람은 전 중앙반공청 주임인 링지화(令計劃)의 아들이었다. BBC 등의 여러 언론에서는 장제민이 이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았다고 보도했다. 작년 9월 5일, 중국 국내외 언론은 당시 장제민의 실종 사실을 보도했다. BBC의 중문 사이트는 홍콩 언론을 인용해 장제민은 연초 베이징에서 발생한 페라리 차 사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기위의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본지는 과거 페트로차이나 내부인사 폭로를 인용해 정보보호를 책임지고 있는 직원이 컴퓨터에서 상부의 뇌물 수수와 횡령 등과 관련한 부정부패 증거를 발견했고, 이 때문에 그는 결국 회사 건물 내에서 실수로 떨어진 것처럼 위장돼 살해됐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저우융캉 관련자들 줄줄이 낙마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8월 30일과 31일, 이틀 연속으로 1면에 중공 최고위층은 최근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저우융캉의 쓰촨성과 페트로차이나 재임 시절 문제를 중심으로 조사를 전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2012년 12월 쓰촨성 당 부서기였던 리춘청(李春城)이 면직된 후 쓰촨의 관계와 재계에 그 여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공식 통계로는 10명의 쓰촨성 재계 인사가 잇따라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중 18차 당 대회 후에 중국의 정계에서 낙마한 최고위층 간부는 리춘청, 우융원과 궈융샹이다. 이들은 모두 저우융캉과 관련이 있다. 8월 26일 보시라이의 마지막 재판에서 변론 내용 가운데 보시라이의 윗선과 관련된 내용이 삭제됐는데 미국의 월스트리트지는 삭제된 부분은 저우융캉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도했다. 보도는 또 당내 정보를 인용해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보시라이를 가장 옹호한 자는 당시 정법위를 장악하고 있던 저우융캉이었다고 한다. 본지의 이전 보도에 따르면 작년 보시라이-왕리쥔 사건이 터진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당이 정한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정변을 모의하기 위해 두 사람은 많은 언론과 인사들을 통제했다. 보시라이가 낙마한 주요 원인은 정변을 모의했기 때문이며 그의 가장 큰 범죄행위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이다. 저우융캉은 이 사건들의 배후 주모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공은 몰락을 피하고자 이러한 진상을 계속 덮어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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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우융캉 자금줄 ‘페트로차이나’의 몰락
    • [ 기사입력   2013-09-04 09:39:19 ]

      장제민(蔣洁敏). (Getty Images)


      중국의 3대 석유회사의 하나이자 저우융캉의 자금줄로 알려진 페트로차이나의 고위간부 4명이 최근 줄줄이 체포되고 있는 가운데 9월 1일 오전, 중공의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는 정부급(正部級)인 국무원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이하 국자위)의 주임이자 전 페트로차이나 회장인 장제민(蔣洁敏)이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장제민은 전 중공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의 심복으로 장제민 체포는 페트로차이나의 저우융캉 계열 전체 붕괴를 의미한다. 공개된 정보로는 장제민은 1955년에 출생했으며 1972년 12월에 산둥 승리(勝利)유전을 시작으로 성리석유관리국 부국장 등을 22년 동안 역임했다.


      장제민은 석유업종의 엔지니어부터 시작해 4년간 정계에 몸을 담은 때를 제외하고 37년 동안 석유 업종에 종사했다. 80년대에 저우융캉은 승리유전 당 서기 등을 역임하면서 ‘승리계의 대부’라 여겨졌다. 또, 이미 체포된 궈융샹(郭永祥)은 당시 승리유전 당 위원회 사무실 비서로 근무했다.

       

      장제민,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조사


      중공 당국은 9월 1일 국자위 주임을 맡은 지반 년이 채 되지 않은 장제민이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중기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18차 당 대회 이후 첫 번째로 낙마한 중앙 위원이다.

      보시라이가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8월 26일에 중기위와 국자위는 잇따라 페트로차이나 4명의 고위간부가 조사를 받았다는 정보를 공개했으며, 이틀 간격으로 4명의 고위간부는 모두 낙마해 여론의 관심거리가 됐다.


      페트로차이나의 고위 간부가 낙마했을 때 장제민은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9월 1일 자 중국 재신망(財新網)의 보도에 따르면 8월 27일에 리화린(李華林) 등 세 명의 고위 간부가 조사를 받았다고 발표했을 때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국자위 당 위원회 서기인 장이(張毅)와 장제민은 퇴임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된 8월 26일에 중기위는 페트로차이나의 왕융춘이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바로 공개했다. 왕융춘은 장제민의 심복으로 한때 18차 당 대회 후에 장제민의 후임으로 거론됐었다.


      중국경영보(中國經營報)에 따르면 페트로차이나 4명의 고위간부가 조사받기 전 2013년 상반기부터 시작해 페트로차이나의 쿤룬(昆仑)천연가스이용유한공사 전 사장인 타오위춘(陶玉春)은 이미 관련 부서의 조사에 협조했으며 업계에서는 타오위춘이 관련 조사를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여긴다고 했다. 


      타오위춘과 그다음 조사를 받은 쓰촨성의 인민대표대회 전 부주임 궈융샹과 리화린은 모두 페트로차이나의 승리 유전에서 근무했다. 페트로차이나에 대한 부정부패 척결이 전개됨에 따라 석유화학 계통에서만 잘 알려진 승리 유전이 조금씩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페트로차이나는 줄곧 저우융캉 세력들이 장악해왔다. 타오위춘에서 궈융샹까지 다시 3명의 고위간부부터 현재 저우융캉의 페트로차이나의 제일 핵심 심복인 장제민까지 조사받았다. 이 때문에 페트로차이나 내의 저우융캉 심복들은 거의 체포됐다. 

       

      페트로차이나 숙청 작업에 언론 관심 집중


      중국 석유업계에서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국제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8월 28일 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석유업종은 지금까지 실세들의 세력 범위에 있었다. 이 때문에 어떤 조사도 할 수 없는 불가침 영역이었다.


      이에 대해 조지아주립대학의 와이드만 정치학 교수는 “이는 하나의 도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의 수중에는 두려울 정도로 많은 권력이 집중돼 있고 이러한 집중된 권력은 이들로 하여금 비리를 저지를 수 있게 해주고 권력을 이용해 부정부패 행위를 은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중공은 11월에 회의를 개최해 향후 10년 동안의 경제개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BBC의 분석가 덩컨 씨는 9월 1일, 정부가 개혁 측면에서 국유기업의 방해를 받기 때문에 기율부서가 이때부터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베테랑 분석가는 “페트로차이나 그룹은 중국에서 제일 큰 독점기업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줄곧 숙정의 목표가 됐다. 하지만 페트로차이나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부패해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저우융캉, 입막음을 위해 부하 살해


      저우융캉은 석유업종에서 38년간 종사했다. 그가 과거 장쩌민의 측근인 청칭홍(曾慶紅)과 석유부에서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 석유업의 대표적인 독점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시노펙 그룹은 청칭홍과 저우융캉 계열에서 장악해왔다.


      본지의 이전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장악했던 공안계통은 파룬궁 탄압 외에도 부하를 위협하며 입막음을 위해 살해까지 했다. 또, 장제민은 비리와 여러 건의 살인사건에도 연루돼있다. 특히 중기위는 페트로차이나의 장부에서 거액이 저우융캉에 흘러들어 갔으며 파룬궁 탄압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다른 소식에 따르면 2012년 3월 18일 베이징에서 발생한 페라리 차 사고는  저우융캉이 보시라이 낙마를 추진한 사람에 대한 정치적인 암살이라고 한다. 당시 사망한 사람은 전 중앙반공청 주임인 링지화(令計劃)의 아들이었다. BBC 등의 여러 언론에서는 장제민이 이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았다고 보도했다.


      작년 9월 5일, 중국 국내외 언론은 당시 장제민의 실종 사실을 보도했다. BBC의 중문 사이트는 홍콩 언론을 인용해 장제민은 연초 베이징에서 발생한 페라리 차 사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기위의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본지는 과거 페트로차이나 내부인사 폭로를 인용해 정보보호를 책임지고 있는 직원이 컴퓨터에서 상부의 뇌물 수수와 횡령 등과 관련한 부정부패 증거를 발견했고, 이 때문에 그는 결국 회사 건물 내에서 실수로 떨어진 것처럼 위장돼 살해됐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저우융캉 관련자들 줄줄이 낙마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8월 30일과 31일, 이틀 연속으로 1면에 중공 최고위층은 최근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저우융캉의 쓰촨성과 페트로차이나 재임 시절 문제를 중심으로 조사를 전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2012년 12월 쓰촨성 당 부서기였던 리춘청(李春城)이 면직된 후 쓰촨의 관계와 재계에 그 여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공식 통계로는 10명의 쓰촨성 재계 인사가 잇따라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중 18차 당 대회 후에 중국의 정계에서 낙마한 최고위층 간부는 리춘청, 우융원과 궈융샹이다. 이들은 모두 저우융캉과 관련이 있다.


      8월 26일 보시라이의 마지막 재판에서 변론 내용 가운데 보시라이의 윗선과 관련된 내용이 삭제됐는데 미국의 월스트리트지는 삭제된 부분은 저우융캉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도했다. 보도는 또 당내 정보를 인용해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보시라이를 가장 옹호한 자는 당시 정법위를 장악하고 있던 저우융캉이었다고 한다.
      본지의 이전 보도에 따르면 작년 보시라이-왕리쥔 사건이 터진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당이 정한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정변을 모의하기 위해 두 사람은 많은 언론과 인사들을 통제했다.


      보시라이가 낙마한 주요 원인은 정변을 모의했기 때문이며 그의 가장 큰 범죄행위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이다. 저우융캉은 이 사건들의 배후 주모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공은 몰락을 피하고자 이러한 진상을 계속 덮어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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