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빠진 저우융캉 베이징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이미 사면초가에 빠졌으며 중공 내부에서 이미 비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Getty Images) 과거 10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 서기직을 겸임했던 저우융캉은 저지른 죄상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그에 대한 대중의 원성이 최고점에 달했다.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이미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고 한다. 먼저 친장쩌민파 언론은 연이어 저우융캉의 범죄행위를 보도했고 이와 함께 저우융캉을 교살해야 한다고 떠벌렸다. 그리고 중공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어떻게 저우융캉을 처리할 것인지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중국 정부가 아직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중공 내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반대파를 폭력으로 진압한 전 소련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 수장 베리야와 저우융캉을 비교하기도 한다. 베리야는 결국 비밀리에 총살됐는데 저우융캉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이다이허(北戴河) 해변은 요양지로 유명한 곳으로 절대 ‘호랑이(권력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비유함)’를 잡을 수 있는 밀림이 아니다. 그러나 중공의 비공식적인 회의가 베이다이허에서 비밀리에 열림에 따라 이곳은 호랑이를 잡는 전쟁터가 됐다. 본지는 지난 기사에서 2013년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이전보다 더욱 긴장감 넘치고 계파 간 논쟁이 더욱 격렬했으며 많은 해파리가 출현했다고 소개했다.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여름에 베이다이허 해변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사람이 천 명이 넘으며 이 때문에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베이다이허 병원은 8월 7일까지 해파리에 쏘인 환자 1053명을 치료했다고 한다. 또한, 그 지역 의료종사자의 폭로에 따르면 이는 작년의 여름 방학 기간보다 3~4배 늘어난 수치로 베이징 미윈(密雲)현에 사는 8세 남자아이는 급성 폐수종으로 사망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의 쟁점은 보시라이를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라고 한다. 신기원이 얻은 정보에 따르면 보시라이 사건은 이미 결과가 정해졌으며 현재 논쟁의 핵심은 리커창의 경제개혁이지만 저우융캉의 처리 문제를 추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문제는 하나이며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의 저우융캉 구속 관련 소문 2012년 8월, 신기원은 서적 ‘중난하이 정치 해일의 전 과정에 대한 비밀폭로(상)’에서 저우융캉은 나쁜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으며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할 수 없어서 저우융캉은 체포될 것이라고 분석 예측했다. 2013년 4월, 홍콩의 많은 잡지는 ‘저우융캉 체포’라는 제목으로 저우융캉의 부정부패 비리를 보도했다. 2013년 7월 말까지 과거 장쩌민을 따르던 일부 인터넷 사이트도 저우융캉의 죄상을 대량으로 보도했으며 심지어 저우융캉을 교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어떻게 저우융캉을 처리할 건지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토론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제기되는 방안은 저우융캉이 축적한 수백억 위안대의 자산을 몰수한 후에 그를 구속하는 방안이 있고 다른 방안은 저우융캉을 유기징역에 선고하고 친청(秦城)감옥에 수감하는 것이다.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의 정변계획에 직접 가담했기 때문에 중공 정치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더욱이 저우융캉은 무장경찰을 사적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저우융캉의 혐의는 비리, 횡령, 직권 남용 및 음란 퇴폐, 감독 소홀 등이다. 중공 18차 당대회 이후에 정법위는 등급이 강등됐으며 중공 고위층은 독립 왕국인 정법위 시스템을 정리했다. 전 중앙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에게 죄를 묻고 그를 처벌하려는 신호가 더욱 더 확실해졌다. 사람들은 저우융캉의 측근들이 최근 하나하나 제거되는 것을 보았다. 쓰촨성의 당부서기 리춘청은 조사를 받았고, 저우융캉의 측근 중의 측근이자 전 후베이성 정법위 서기였던 우융원도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에 체포됐다. 특히 2013년 6월 23일 저우융캉의 18년 심복인 전 쓰촨성 상무위원 궈융상(郭永祥)도 조사받았으며 7월에는 저우융캉 가족의 집사격인 우빙(吴兵)도 체포됐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사법의 창끝이 저우융캉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우빙은 소문을 듣고 베이징에서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베이징 서역에서 체포됐다. 그 후 우빙은 저우융캉의 많은 범죄 행위를 자백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만약 저우융캉을 체포하면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무위원을 처벌할 수 없다는 관례를 깼다고 보도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1976년 4인방에 대한 재판을 진행할 때 체포된 왕홍원(王洪文), 장춘챠오(张春桥)는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다. 당시의 공개재판은 중공이 법률의 형식을 이용해 당내 정치 분쟁을 해결한 선례이다. 마오쩌둥은 비록 류샤오치(劉少奇)를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지만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과거 30여 년 동안 중공의 전 총서기 자오쯔양(赵紫陽)도 정치문제로 인해 15년 동안 연금됐다. 비록 형을 선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자유를 잃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셈이다. 본지는 8월 12일에 중국 사회의 거대한 압력과 민중의 분노 때문에 중공은 어쩔 수 없이 저우융캉을 조사한다고 보도했다. 시진핑과 현임 상무위원은 모두 이에 동의했으며 내부에서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저우융캉이 사면초가에 빠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2권력 중앙의 피비린내 영국의 데일리 포스트지는 저우융캉을 중국의 10대 악덕 지도자 중의 하나로 평가했다. 저우융캉은 정법위 계통에서 10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법위 서기를 겸직했다. 이 기간에 그는 경찰 시스템을 장악함과 동시에 무장경찰부대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했다. 장쩌민 시대부터 정법위 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설립한 임시 권력 부서인 ‘610’은 정법위를 통해 중공의 공안, 법원, 검찰원, 국안, 무장경찰 체계를 통제했으며 중공의 외교, 교육, 사법, 국무원, 군대, 위생 등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정법위는 중공의 재정, 군사, 외교면을 통제했으며 ‘610’이 제2중공 중앙이 되게 했다. 제2권력 중앙인 저우융캉의 정법위는 중공 체제 안팎에서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사에 따르면 저우융캉 임기 내에 민중 항쟁 사건이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해마다 몇만 건에서 몇십만 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중공 체제 내에서도 저우융캉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중앙정법위 서기 차오스(乔石)는 후진타오와 시진핑에게 편지로 정법위와 저우융캉을 통렬히 비난했고 아울러 그 권력을 규제할 것을 요구했다. 2012년 5월에는 윈난성의 원로 당원 16명이 중앙에 저우융캉의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법위 서기 직무를 박탈하고 중기위가 그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잡지 ‘염황춘추(炎黃春秋)’는 18차 당대회 전에 정법위 폐지를 제기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저우융캉의 제2중앙이 파룬궁 탄압을 직접 지휘했으며 특히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범죄를 주도한 범행을 알지 못한다. 명혜망(明慧網)의 자료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공안부장을 맡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탄압으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 수가 700명에서 2940명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비정부조직인 파룬궁 박해 청산 국제조직은 중앙정법위가 생체장기적출에 참여한 죄상에 대해 특별조사를 진행했다. 그들이 보고한 많은 증거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은 저우융캉과 뤄간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진행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2006년 4월 1일에 발표한 이 국제조직의 한 보고서에서 선양에 거대한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저장고가 존재한다고 확인했으며 아울러 몇 명의 중국 이식 의사의 녹취록을 발표했다. 일부 병원은 그들이 이식하는 데 사용한 장기가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의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런 병원 중에는 동방장기이식센터, 상하이 중산병원, 허난성의 정저우 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후베이성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등이 포함된다. 같은 해 4월 8일에 본지는 파룬궁 수련자 장기를 훔친 내막이 줄곧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에 있었다고 폭로했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300여 곳의 노교소에서 수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강제로 구금했고 많은 노교소에서 강제적으로 파룬궁 수련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이로써 생체 장기저장고를 만들어 만약 어떤 환자가 어떤 종류의 장기가 필요하다면 이를 대조해 보고 적합한 수련자를 죽여 장기를 적출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적어도 4만 개의 장기 출처가 불분명하며 그 장기들은 죽임을 당한 파룬궁 수련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진바 있다. 저우융캉의 집사 우빙, 비밀 폭로 홍콩 언론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집사라 불리는 우빙은 체포된 후에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집단의 핵심적인 내막 중의 하나인 정변 계획을 폭로했다고 한다. 우빙의 말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중국 최대의 인터넷 관련 일당을 매수하여 이를 통해 정적을 공격했고, 그들 일당의 인사가 보직을 맡을 수 있게 도왔다. 과거 수년 동안 중국 인터넷상의 소동 80%는 모두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집단이 저지른 것이다. 이 보도는 1년 전에 본지가 독점으로 폭로한 내용을 증명했다. 2012년 4월 본지는 2010년 3월에 보시라이, 저우융캉이 연이어 바이두 (百度)의 총수 리옌홍(李彦宏)을 만났으며, 중기위의 관련 자백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고 한다. 중국 누리꾼은 당시 후진타오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과 원자바오의 아들 원윈송(温雲松)의 비리 관련 소식, 그리고 시진핑의 딸 시밍저(習明澤)의 성 스캔들 혐의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 바이두를 통해 이런 스캔들을 대량으로 퍼뜨려 중국 국내 누리꾼들 앞에서 그들의 체면을 구기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저우융캉은 바이두를 전력 지원키로 했고 결국 구글을 중국에서 내쫓아 바이두가 중국 시장을 독점하게 했다. 2012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원자바오 가족이 거액의 자산을 축적했다는 소식을 내보냈다. 사실 이는 보시라이-저우융캉 체제가 해외에서 공작한 결과이다. 타이완 언론은 논평에서 “이는 진동탄과 같이 상당한 살상력을 지녔다. 이 폭탄이 일으킬 효과나 의도는 적의 후방을 공격하여 적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거나 마지막에 보시라이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당시 보시라이가 인민대표대회의 자격을 박탈당했을 때 원자바오가 보시라이의 주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빈과일보(苹果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우빙은 쓰촨의 사업가이자 저우융캉 아들 저우빈(周斌)의 절친한 친구이고 저우(周)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데 일조한 주요인물 중의 하나이다. 우빙은 저우융캉 가족을 위해 수백억 위안의 국유자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국유자산 중에는 9000만 위안으로 매년 27억 위안의 이윤을 내는 중국 석유 천연가스 그룹(CNPC)의 산시성 위린시의 유전과 4000만 위안으로 우량예(五粮液)같은 80억 위안 가치의 기업의 주식이 포함된다. 저우융캉은 석유업계에서 30여 년 동안 일했고 CNPC의 사장을 역임했다. 본지는 일전에 전 중공 공안부 부부장 정샤오둥(鄭少東)이 쌍규(雙規)처분 받은 후에 저우빈이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저우융캉이 재직했었던 석유부문 및 지방에서 뇌물을 받거나, 사기를 치거나 협박을 해서 재물을 강탈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쓰촨의 대형프로젝트, CNPC의 석유화학사업에 손을 댔으며 국토자원부를 통해 마음대로 토지를 팔고 매관매직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CNPC의 쓰촨 석유화학사업은 유사 이래로 가장 부패한 사업으로 투자금 380억 위안에서 적어도 300억 위안이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한다. 모든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실했다. 그러나 CNPC와 관련 공급업자는 대부분 최고위층과 직접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해 감히 물어보는 사람도 조사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한 무더기의 폐철만 남았을 뿐이다. 저우융캉 젊은 후처의 자산 축적 내막 전 중국 공안대학 법률과 베테랑 법학전문가이자 중국 문제 연구전문가 자오위안밍(趙遠明)은 저우융캉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쓰촨성 당서기를 맡았을 때 그가 부녀자를 강제로 성폭행했다는 많은 사람의 고발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그와 아내는 사이가 멀어져 별거상태였다. 이 기간에 청칭홍(曾慶红)은 저우융캉을 장쩌민의 처조카 구샤오예(賈曉燁)에게 소개했다. 그 후에 저우융캉은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그의 전처를 살해했고 그 후에 구샤오예와 결혼했다. 저우융캉은 이렇게 하여 처조카사위가 되어 장씨 집안에 발을 들였고 이 때문에 스스로 장쩌민의 사람이라고 과시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구샤오예는 관영언론인 CCTV2의 편집자였으며 저우융캉보다 28살 어리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승진을 도와 거액의 자산을 축적했다. 이미 체포된 전 공안부장 비서 정샤오둥이 광둥에 있을 때, 그는 승진을 위해 황광위(黃光裕) 등을 통해 구샤오예에게 수억 위안을 뇌물로 주었고 그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자백했다. 보시라이와 왕리쥔도 구샤오예의 생일이나 명절 등에 선물로 현금과 보석을 보냈다. 홍콩 언론의 폭로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오랫동안 보시라이에게 여자를 제공받았다. 그 중 가수, 여배우, 여대생 등을 포함한 28명은 확인됐다. 저우융캉은 음란한 생활을 위해 베이징에만 6곳의 별장을 만들었다.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석유업계에서 일하던 초기에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백계왕(百鷄王)’으로 불리며 조롱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정부가 “중국 유행가요의 여신”이라고 치켜세운 탕찬(汤灿)도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두 사람의 ‘공동정부(情婦)’라고 폭로됐다. 소식에 따르면 왕리쥔이 청두 미국영사관에 제출한 기록물에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성생활에 관한 내용도 있으며 이러한 여성들은 쉬밍(徐明)이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저우융캉 아들 수백억 위안 챙겨 여러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아들 저우빈은 18차 당대회가 열리기 전, 2013년 중공 양회가 폐막한 후, 자신에 대한 감시가 가장 심할 때 처를 데리고 장기간 국외로 피신했다. 그들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사이를 전전했으며 현재는 행방이 불분명하다. 다년간 저우빈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석유와 정법위 계통에서 뇌물을 받거나, 사기를 치거나 협박을 해서 재물을 강탈했고 매관매직했으며 거액의 보호금을 챙겼다. 이를 통해 그는 적어도 200억 위안을 축적했다. 보시라이가 면직된 후 빈과일보는 저우융캉이 장기간 동안 보시라이와 이익교환관계에 있었다고 보도했으며 저우빈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저우빈은 충칭에서만 400억 위안대의 프로젝트를 따냈으며 그 중 100억 위안이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 저우빈은 베이징 한 곳에만 18개의 주택을 소유했으며 그 중 한 곳의 호화 주택은 아직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상태지만 가격이 2억 위안이다. 저우빈도 CNPC와 충칭, 쓰촨의 많은 관리의 승진에 나서면서 뇌물을 받았다. 많은 논평가는 저우융캉의 역할이 구소련의 KGB 수장 베리야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스탈린 시대에 베리야는 반대파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후루시초프가 스탈린 다음에 정권을 잡은 후인 1953년 12월 24일에 베리야는 비밀리에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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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초가에 빠진 저우융캉
    • [ 기사입력   2013-09-02 15:18:43 ]

      베이징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이미 사면초가에 빠졌으며 중공 내부에서 이미 비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Getty Images)

       

      과거 10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 서기직을 겸임했던 저우융캉은 저지른 죄상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그에 대한 대중의 원성이 최고점에 달했다.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이미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고 한다. 

       

      먼저 친장쩌민파 언론은 연이어 저우융캉의 범죄행위를 보도했고 이와 함께 저우융캉을 교살해야 한다고 떠벌렸다. 그리고 중공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어떻게 저우융캉을 처리할 것인지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중국 정부가 아직 이러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중공 내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반대파를 폭력으로 진압한 전 소련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 수장 베리야와 저우융캉을 비교하기도 한다. 베리야는 결국 비밀리에 총살됐는데 저우융캉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이다이허(北戴河) 해변은 요양지로 유명한 곳으로 절대 ‘호랑이(권력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비유함)’를 잡을 수 있는 밀림이 아니다. 그러나 중공의 비공식적인 회의가 베이다이허에서 비밀리에 열림에 따라 이곳은 호랑이를 잡는 전쟁터가 됐다.

       

      본지는 지난 기사에서 2013년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이전보다 더욱 긴장감 넘치고 계파 간 논쟁이 더욱 격렬했으며 많은 해파리가 출현했다고 소개했다.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여름에 베이다이허 해변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사람이 천 명이 넘으며 이 때문에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베이다이허 병원은 8월 7일까지 해파리에 쏘인 환자 1053명을 치료했다고 한다. 또한, 그 지역 의료종사자의 폭로에 따르면 이는 작년의 여름 방학 기간보다 3~4배 늘어난 수치로 베이징 미윈(密雲)현에 사는 8세 남자아이는 급성 폐수종으로 사망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의 쟁점은 보시라이를 어떻게 재판할 것인지라고 한다. 신기원이 얻은 정보에 따르면 보시라이 사건은 이미 결과가 정해졌으며 현재 논쟁의 핵심은 리커창의 경제개혁이지만 저우융캉의 처리 문제를 추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문제는 하나이며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의 저우융캉 구속 관련 소문

       

      2012년 8월, 신기원은 서적 ‘중난하이 정치 해일의 전 과정에 대한 비밀폭로(상)’에서 저우융캉은 나쁜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으며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할 수 없어서 저우융캉은 체포될 것이라고 분석 예측했다.
       
      2013년 4월, 홍콩의 많은 잡지는 ‘저우융캉 체포’라는 제목으로 저우융캉의 부정부패 비리를 보도했다. 2013년 7월 말까지 과거 장쩌민을 따르던 일부 인터넷 사이트도 저우융캉의 죄상을 대량으로 보도했으며 심지어 저우융캉을 교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어떻게 저우융캉을 처리할 건지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토론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제기되는 방안은 저우융캉이 축적한 수백억 위안대의 자산을 몰수한 후에 그를 구속하는 방안이 있고 다른 방안은 저우융캉을 유기징역에 선고하고 친청(秦城)감옥에 수감하는 것이다.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의 정변계획에 직접 가담했기 때문에 중공 정치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더욱이 저우융캉은 무장경찰을 사적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저우융캉의 혐의는 비리, 횡령, 직권 남용 및 음란 퇴폐, 감독 소홀 등이다.

       

      중공 18차 당대회 이후에 정법위는 등급이 강등됐으며 중공 고위층은 독립 왕국인 정법위 시스템을 정리했다. 전 중앙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에게 죄를 묻고 그를 처벌하려는 신호가 더욱 더 확실해졌다. 사람들은 저우융캉의 측근들이 최근 하나하나 제거되는 것을 보았다. 쓰촨성의 당부서기 리춘청은 조사를 받았고, 저우융캉의 측근 중의 측근이자 전 후베이성 정법위 서기였던 우융원도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중기위)에 체포됐다. 특히 2013년 6월 23일 저우융캉의 18년 심복인 전 쓰촨성 상무위원 궈융상(郭永祥)도 조사받았으며 7월에는 저우융캉 가족의 집사격인 우빙(吴兵)도 체포됐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사법의 창끝이 저우융캉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우빙은 소문을 듣고 베이징에서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베이징 서역에서 체포됐다. 그 후 우빙은 저우융캉의 많은 범죄 행위를 자백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만약 저우융캉을 체포하면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무위원을 처벌할 수 없다는 관례를 깼다고 보도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1976년 4인방에 대한 재판을 진행할 때 체포된 왕홍원(王洪文), 장춘챠오(张春桥)는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다. 당시의 공개재판은 중공이 법률의 형식을 이용해 당내 정치 분쟁을 해결한 선례이다. 마오쩌둥은 비록 류샤오치(劉少奇)를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지만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과거 30여 년 동안 중공의 전 총서기 자오쯔양(赵紫陽)도 정치문제로 인해 15년 동안 연금됐다. 비록 형을 선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자유를 잃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셈이다.

       

      본지는 8월 12일에 중국 사회의 거대한 압력과 민중의 분노 때문에 중공은 어쩔 수 없이 저우융캉을 조사한다고 보도했다. 시진핑과 현임 상무위원은 모두 이에 동의했으며 내부에서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저우융캉이 사면초가에 빠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2권력 중앙의 피비린내

       

      영국의 데일리 포스트지는 저우융캉을 중국의 10대 악덕 지도자 중의 하나로 평가했다. 저우융캉은 정법위 계통에서 10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법위 서기를 겸직했다. 이 기간에 그는 경찰 시스템을 장악함과 동시에 무장경찰부대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했다. 장쩌민 시대부터 정법위 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설립한 임시 권력 부서인 ‘610’은 정법위를 통해 중공의 공안, 법원, 검찰원, 국안, 무장경찰 체계를 통제했으며 중공의 외교, 교육, 사법, 국무원, 군대, 위생 등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정법위는 중공의 재정, 군사, 외교면을 통제했으며 ‘610’이 제2중공 중앙이 되게 했다.

       

      제2권력 중앙인 저우융캉의 정법위는 중공 체제 안팎에서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사에 따르면 저우융캉 임기 내에 민중 항쟁 사건이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해마다 몇만 건에서 몇십만 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중공 체제 내에서도 저우융캉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중앙정법위 서기 차오스(乔石)는 후진타오와 시진핑에게 편지로 정법위와 저우융캉을 통렬히 비난했고 아울러 그 권력을 규제할 것을 요구했다. 2012년 5월에는 윈난성의 원로 당원 16명이 중앙에 저우융캉의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법위 서기 직무를 박탈하고 중기위가 그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잡지 ‘염황춘추(炎黃春秋)’는 18차 당대회 전에 정법위 폐지를 제기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저우융캉의 제2중앙이 파룬궁 탄압을 직접 지휘했으며 특히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범죄를 주도한 범행을 알지 못한다.

       

      명혜망(明慧網)의 자료에 따르면 저우융캉이 공안부장을 맡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탄압으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 수가 700명에서 2940명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비정부조직인 파룬궁 박해 청산 국제조직은 중앙정법위가 생체장기적출에 참여한 죄상에 대해 특별조사를 진행했다. 그들이 보고한 많은 증거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은 저우융캉과 뤄간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진행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2006년 4월 1일에 발표한 이 국제조직의 한 보고서에서 선양에 거대한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저장고가 존재한다고 확인했으며 아울러 몇 명의 중국 이식 의사의 녹취록을 발표했다.

       

      일부 병원은 그들이 이식하는 데 사용한 장기가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의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런 병원 중에는 동방장기이식센터, 상하이 중산병원, 허난성의 정저우 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후베이성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등이 포함된다.

       

      같은 해 4월 8일에 본지는 파룬궁 수련자 장기를 훔친 내막이 줄곧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에 있었다고 폭로했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300여 곳의 노교소에서 수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강제로 구금했고 많은 노교소에서 강제적으로 파룬궁 수련자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이로써 생체 장기저장고를 만들어 만약 어떤 환자가 어떤 종류의 장기가 필요하다면 이를 대조해 보고 적합한 수련자를 죽여 장기를 적출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적어도 4만 개의 장기 출처가 불분명하며 그 장기들은 죽임을 당한 파룬궁 수련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진바 있다.
          
      저우융캉의 집사 우빙, 비밀 폭로

       

      홍콩 언론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집사라 불리는 우빙은 체포된 후에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집단의 핵심적인 내막 중의 하나인 정변 계획을 폭로했다고 한다. 우빙의 말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중국 최대의 인터넷 관련 일당을 매수하여 이를 통해 정적을 공격했고, 그들 일당의 인사가 보직을 맡을 수 있게 도왔다. 과거 수년 동안 중국 인터넷상의 소동 80%는 모두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집단이 저지른 것이다.

       

      이 보도는 1년 전에 본지가 독점으로 폭로한 내용을 증명했다. 2012년 4월 본지는 2010년 3월에 보시라이, 저우융캉이 연이어 바이두 (百度)의 총수 리옌홍(李彦宏)을 만났으며, 중기위의 관련 자백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고 한다.

       

      중국 누리꾼은 당시 후진타오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과 원자바오의 아들 원윈송(温雲松)의 비리 관련 소식, 그리고 시진핑의 딸 시밍저(習明澤)의 성 스캔들 혐의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 바이두를 통해 이런 스캔들을 대량으로 퍼뜨려 중국 국내 누리꾼들 앞에서 그들의 체면을 구기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저우융캉은 바이두를 전력 지원키로 했고 결국 구글을 중국에서 내쫓아 바이두가 중국 시장을 독점하게 했다.

       

      2012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원자바오 가족이 거액의 자산을 축적했다는 소식을 내보냈다. 사실 이는 보시라이-저우융캉 체제가 해외에서 공작한 결과이다. 타이완 언론은 논평에서 “이는 진동탄과 같이 상당한 살상력을 지녔다. 이 폭탄이 일으킬 효과나 의도는 적의 후방을 공격하여 적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거나 마지막에 보시라이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당시 보시라이가 인민대표대회의 자격을 박탈당했을 때 원자바오가 보시라이의 주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빈과일보(苹果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우빙은 쓰촨의 사업가이자 저우융캉 아들 저우빈(周斌)의 절친한 친구이고 저우(周)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데 일조한 주요인물 중의 하나이다. 우빙은 저우융캉 가족을 위해 수백억 위안의 국유자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국유자산 중에는 9000만 위안으로 매년 27억 위안의 이윤을 내는 중국 석유 천연가스 그룹(CNPC)의 산시성 위린시의 유전과 4000만 위안으로 우량예(五粮液)같은 80억 위안 가치의 기업의 주식이 포함된다.
       
      저우융캉은 석유업계에서 30여 년 동안 일했고 CNPC의 사장을 역임했다. 본지는 일전에 전 중공 공안부 부부장 정샤오둥(鄭少東)이 쌍규(雙規)처분 받은 후에 저우빈이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저우융캉이 재직했었던 석유부문 및 지방에서 뇌물을 받거나, 사기를 치거나 협박을 해서 재물을 강탈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쓰촨의 대형프로젝트, CNPC의 석유화학사업에 손을 댔으며 국토자원부를 통해 마음대로 토지를 팔고 매관매직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CNPC의 쓰촨 석유화학사업은 유사 이래로 가장 부패한 사업으로 투자금 380억 위안에서 적어도 300억 위안이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한다. 모든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실했다. 그러나 CNPC와 관련 공급업자는 대부분 최고위층과 직접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해 감히 물어보는 사람도 조사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한 무더기의 폐철만 남았을 뿐이다.

       

      저우융캉 젊은 후처의 자산 축적 내막
       
      전 중국 공안대학 법률과 베테랑 법학전문가이자 중국 문제 연구전문가 자오위안밍(趙遠明)은 저우융캉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쓰촨성 당서기를 맡았을 때 그가 부녀자를 강제로 성폭행했다는 많은 사람의 고발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그와 아내는 사이가 멀어져 별거상태였다. 이 기간에 청칭홍(曾慶红)은 저우융캉을 장쩌민의 처조카 구샤오예(賈曉燁)에게 소개했다. 그 후에 저우융캉은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그의 전처를 살해했고 그 후에 구샤오예와 결혼했다. 저우융캉은 이렇게 하여 처조카사위가 되어 장씨 집안에 발을 들였고 이 때문에 스스로 장쩌민의 사람이라고 과시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구샤오예는 관영언론인 CCTV2의 편집자였으며 저우융캉보다 28살 어리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승진을 도와 거액의 자산을 축적했다. 이미 체포된 전 공안부장 비서 정샤오둥이 광둥에 있을 때, 그는 승진을 위해 황광위(黃光裕) 등을 통해 구샤오예에게 수억 위안을 뇌물로 주었고 그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자백했다. 보시라이와 왕리쥔도 구샤오예의 생일이나 명절 등에 선물로 현금과 보석을 보냈다.

       

      홍콩 언론의 폭로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오랫동안 보시라이에게 여자를 제공받았다. 그 중 가수, 여배우, 여대생 등을 포함한 28명은 확인됐다. 저우융캉은 음란한 생활을 위해 베이징에만 6곳의 별장을 만들었다.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석유업계에서 일하던 초기에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백계왕(百鷄王)’으로 불리며 조롱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정부가 “중국 유행가요의 여신”이라고 치켜세운 탕찬(汤灿)도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두 사람의 ‘공동정부(情婦)’라고 폭로됐다. 소식에 따르면 왕리쥔이 청두 미국영사관에 제출한 기록물에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성생활에 관한 내용도 있으며 이러한 여성들은 쉬밍(徐明)이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저우융캉 아들 수백억 위안 챙겨

       

      여러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아들 저우빈은 18차 당대회가 열리기 전, 2013년 중공 양회가 폐막한 후, 자신에 대한 감시가 가장 심할 때 처를 데리고 장기간 국외로 피신했다. 그들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사이를 전전했으며 현재는 행방이 불분명하다.

       

      다년간 저우빈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석유와 정법위 계통에서 뇌물을 받거나, 사기를 치거나 협박을 해서 재물을 강탈했고 매관매직했으며 거액의 보호금을 챙겼다. 이를 통해 그는 적어도 200억 위안을 축적했다.

      보시라이가 면직된 후 빈과일보는 저우융캉이 장기간 동안 보시라이와 이익교환관계에 있었다고 보도했으며 저우빈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저우빈은 충칭에서만 400억 위안대의 프로젝트를 따냈으며 그 중 100억 위안이 그의 수중에 들어갔다.

       

      저우빈은 베이징 한 곳에만 18개의 주택을 소유했으며 그 중 한 곳의 호화 주택은 아직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상태지만 가격이 2억 위안이다. 저우빈도 CNPC와 충칭, 쓰촨의 많은 관리의 승진에 나서면서 뇌물을 받았다.

      많은 논평가는 저우융캉의 역할이 구소련의 KGB 수장 베리야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스탈린 시대에 베리야는 반대파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후루시초프가 스탈린 다음에 정권을 잡은 후인 1953년 12월 24일에 베리야는 비밀리에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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