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傳문화] 창힐의 한자 창제, 천지 놀라고 鬼神 통곡해 고대로부터 중국은 ‘천조(天朝)’로 불렸습니다. 이 명칭은 단순히 동아시아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힘과 위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바로 신(神)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여러 왕조에서 피어난 풍성한 문화는 바로 신이 전해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라 불리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5000년간 지속적으로 전승돼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모든 민족의 역사는 모두 신화와 전설로부터 시작하는데, 중국인도 풍부한 신화와 민간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서와 문학작품 속에 남아 중국 전통문화의 사상적 배경이 된 이야기를 천지가 개벽하던 인류의 첫 시작부터 들려드립니다. ―편집부 거북 등딱지새의 깃털 산의 능선과 냇물 흐름만물 의미 연구해 기호로 황제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역시 ‘사황(史皇)’의 칭호를 갖고 있는 창힐(蒼頡)이다. 황제의 신하로 알려진 창힐을 혹자는 황제 이전의 또 다른 제왕이었다고 도 한다. 또 창힐사황이 한 인물이라고 하는 설과 창힐과 사황은 다른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후자의 주장에 따르면 창힐은 문자를 발명했고, 사황은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학설이 있지만 최초의 문자가 그림의 형태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창힐과 사황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이다. 그 밖에 창힐이 황제 이전의 제왕이었다거나 황제의 신하였다고 하는 설은 모두 신화전설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황’의 칭호를 지닌 창힐은 탄생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넓적한 얼굴의 창힐은 눈이 네 개였고,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어린 아이 때부터 붓을 들고 여기저기 휘갈겼는데 가만히 보면 그것이 모두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선들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무늬에 내재된 의미를 발견했다. 성장하며 그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곤 했다. 창힐에게 천지만물의 변화는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연구 대상이었다. 그는 늘 하늘의 별과 땅위의 모든 것들을 살폈다. 거북 껍질의 무늬, 새들의 깃털에 그려진 문양, 산의 능선과 시냇물의 완만한 흐름, 대자연의 모습들을 늘 자신의 손바닥에 그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 기호들을 이용해서 표현하려 했고 사람들이 그 기호들을 보고 그가 말하려 했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창힐은 이러한 기호들을 문자로 만들었는데 이로써 한자가 탄생했다. 창힐이 문자를 발명한 것은 하늘과 땅을 놀라게 했다. 하늘에서는 좁쌀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고, 귀신도 놀라 한밤중에 흐느껴 울었다.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본분인 농사일은 소홀히 여기고 송곳 따위로 글자를 새기는 데만 몰두할 것이니 먹을 양식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선 좁쌀비를 내리게 해 앞으로 일어날 기근에 대비하려 함이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또 문자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를 사용해 귀신들을 탄핵할 것이니 귀신들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자의 발명이 그야말로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들까지 겁먹게 하는’ 굉장한 사건이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창힐이 만든 문자 하나하나에는 그것 자체의 의미가 있다. 소리를 기호로 나타내 의미를 전달하는 한글, 일본어, 러시아어, 영어와는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기호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표의적인 의미를 간직한 한자는 매 획마다 중국 선조들의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다. 한자를 공부하면 중화 문화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자는 단순한 언어나 인류 문명의 기호가 아니다. 한자에는 인간의 경험이 스며있다. 이러한 문자들로 우리의 문화적 역사는 기록될 수 있고 또 세대를 넘어 보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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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傳문화] 창힐의 한자 창제, 천지 놀라고 鬼神 통곡해
  • [ 기사입력   2013-07-31 15:21:34 ]

    고대로부터 중국은 ‘천조(天朝)’로 불렸습니다. 이 명칭은 단순히 동아시아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힘과 위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바로 신(神)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여러 왕조에서 피어난 풍성한 문화는 바로 신이 전해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라 불리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5000년간 지속적으로 전승돼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모든 민족의 역사는 모두 신화와 전설로부터 시작하는데, 중국인도 풍부한 신화와 민간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서와 문학작품 속에 남아 중국 전통문화의 사상적 배경이 된 이야기를 천지가 개벽하던 인류의 첫 시작부터 들려드립니다. ―편집부

     

     

    거북 등딱지
    새의 깃털
    산의 능선과 냇물 흐름
    만물 의미 연구해 기호로

     

    황제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역시 ‘사황(史皇)’의 칭호를 갖고 있는 창힐(蒼頡)이다. 황제의 신하로 알려진 창힐을 혹자는 황제 이전의 또 다른 제왕이었다고 도 한다. 또 창힐사황이 한 인물이라고 하는 설과 창힐과 사황은 다른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후자의 주장에 따르면 창힐은 문자를 발명했고, 사황은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학설이 있지만 최초의 문자가 그림의 형태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창힐과 사황을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이다. 그 밖에 창힐이 황제 이전의 제왕이었다거나  황제의 신하였다고 하는 설은 모두 신화전설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황’의 칭호를 지닌 창힐은 탄생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넓적한 얼굴의 창힐은 눈이 네 개였고,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어린 아이 때부터 붓을 들고 여기저기 휘갈겼는데 가만히 보면 그것이 모두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선들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무늬에 내재된 의미를 발견했다.

     

    성장하며 그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곤 했다. 창힐에게 천지만물의 변화는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연구 대상이었다. 그는 늘 하늘의 별과 땅위의 모든 것들을 살폈다. 거북 껍질의 무늬, 새들의 깃털에 그려진 문양, 산의 능선과 시냇물의 완만한 흐름, 대자연의 모습들을 늘 자신의 손바닥에 그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 기호들을 이용해서 표현하려 했고 사람들이 그 기호들을 보고 그가 말하려 했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창힐은 이러한 기호들을 문자로 만들었는데 이로써 한자가 탄생했다.

     

    창힐이 문자를 발명한 것은 하늘과 땅을 놀라게 했다. 하늘에서는 좁쌀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고, 귀신도 놀라 한밤중에 흐느껴 울었다.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본분인 농사일은 소홀히 여기고 송곳 따위로 글자를 새기는 데만 몰두할 것이니 먹을 양식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선 좁쌀비를 내리게 해 앞으로 일어날 기근에 대비하려 함이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되는 것이었다.

     

    또 문자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를 사용해 귀신들을 탄핵할 것이니 귀신들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자의 발명이 그야말로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들까지 겁먹게 하는’ 굉장한 사건이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창힐이 만든 문자 하나하나에는 그것 자체의 의미가 있다. 소리를 기호로 나타내 의미를 전달하는 한글, 일본어, 러시아어, 영어와는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기호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표의적인 의미를 간직한 한자는 매 획마다 중국 선조들의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다. 한자를 공부하면 중화 문화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자는 단순한 언어나 인류 문명의 기호가 아니다. 한자에는 인간의 경험이 스며있다. 이러한 문자들로 우리의 문화적 역사는 기록될 수 있고 또 세대를 넘어 보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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