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산실 '로마'에서 興亡의 현장을 만나다 2000년 역사 동안 고대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 유산이 누적된 로마는 천의 얼굴을 지닌 도시다. 사진은 고대 로마제국의 도심부. 맨 왼쪽이 극장형 대중오락장소였던 원형경기장(콜로세움), 바로 오른쪽이 지금의 시민회관 격인 마센지오의 바실리카다. 로마는 너무나 많은 휘황함과 이야기가 담긴 ‘음미할 만한’ 도시다. 고대,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의 유산들. 베네치아광장,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벽화, 베르니니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로마의 명소들은 하늘의 별들 같다.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 석재 블록 하나, 시원한 분수 하나에서 모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세상에는 단체여행에 적합지 않은 도시들이 있는데, 로마가 그 중 하나다. 여행하는 시간은 곧 역사를 더듬고 사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유가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가려면 가이드나 동행자는 때론 방해가 된다. 스스로 루트를 계획해 ‘자유롭게’ 다니다 보면 도시와 충분히 교감하게 되고, 떠나기 아쉬운 곳도 생긴다. 수많은 자유여행자가 한동안 머물고 싶어하는 도시에 로마가 포함된다. 스토리 있는 古都, 신화의 옷 걸쳐 로마 사람들은 스스로를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Aeneas)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아이네아스는 미의 여신 비너스와 트로이 왕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일어나 트로이가 함락되자 그는 아버지를 업고 트로이를 빠져나왔고, 비너스의 가호 하에 끝내 이탈리아에 도착해 테베레 강변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몇 세기가 흘렀다. 아이네아스의 후손인 아물리우스는 형의 왕위를 빼앗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형의 아들은 모두 죽이고 딸 레아 실비아를 여신의 사제로 만들어 평생 결혼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레아 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만나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를 낳았다. 아물리우스가 테베레 강에 던진 이 쌍둥이 형제가 늑대 젖을 먹고 큰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 버려진 후 18년이 지나 아물리우스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쌍둥이, 그 중 형인 로물루스가 바로 BC 753년에 로마를 세웠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로마시대 황제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였던 팔라티노엔 무너진 담벼락이 널려있다. 폐허지만 흔적만으로도 영화롭던 옛 제국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고대 대중문화의 중심 ‘포룸’ 포룸 로마나(Forum Romana) 유적을 둘러보면 서구 시민문화의 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이 서거나 정치활동이 일어나던 광장, 그 주위의 신전, 극장, 경기장, 도서관, 목욕탕. 로마제국 때 도시 중심부의 이런 대중시설을 통칭하기도 한 포룸(forum)은 로마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생겨났다. 현대 도시의 ‘도심’ 계획과 일맥상통하지만, 정교한 대리석 조각과 공들여 세운 묵직한 기둥에 그 때의 문화는 오히려 지금보다 풍요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번영했던 제국이 어떻게 무너졌을지 의아하다. 그러나 잠시 후 들른 콜로세움에서 이내 제국의 영화롭지 못한 과거를 확인했다. 로마의 어두운 역사, 투기장 세계인에게 로마의 랜드마크처럼 알려진 콜로세움의 정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다. 검투사 시합, 맹수연기가 주로 열린 이곳에서 대중은 엄지로 투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냉혹함을 보였고, 제국 말기에는 황제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을 이곳에서 사자 먹이로 내몰기도 했다. 제국의 말로가 짐작되는 어두운 역사다. 제국 쇄신 기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투기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이번엔 로마의 새 역사를 기념한 건축물을 만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기독교 박해를 멈추고 모든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것으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가 서로마 제국을 통일하자 이를 기념해 원로원이 지은 것이다. 이후 로마 황제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됐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제국의 새로운 중심지를 세우는 등 여러 면모로 로마를 쇄신해 ‘대제’로 불린다. 미스터리 건축 ‘판테온’엔 고대인의 지혜가 고대 로마 건축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인 판테온. 데생용 석고상으로 잘 알려진 아그리파 장군이 지었다. 실내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최상부의 홀에서 빛이 쏟아진다. 그 신비스러움에 ‘이런 게 바로 신전이구나’ 싶다. 고대 로마 건축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이 판테온(Pantheon)이다. 로마의 모든 신들을 모신 신전으로, 데생용 석고상으로 잘 알려진 아그리파BC 62~BC 12 장군이 지어 AD1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개축했다. 실내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최상부의 홀에서 빛이 쏟아진다. 그 신비스러움에 ‘이런 게 바로 신전이구나’ 싶다. 어떻게 2000년 세월 동안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걸까. 일단 가서 보면 판테온의 돔은 하나의 돌도 형태를 이탈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짜였다는 걸 알게 된다. 직경 43.4m, 높이도 43.3m 돔. 돔의 꼭대기에 있는 직경 8.9m 원형 홀이 유일한 채광창이다. 판테온의 돔은 석재들이 서로를 지지해 완성하고 있다. 완벽한 역학적 원리와 콘크리트 사용법을 가지고 고대 로마 기술자들은 판테온을 지었다. 어느 하나 주먹구구식이 없이 전체가 한 몸인 것처럼 맞물린 석재를 보면 고대 기술자들의 실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첨단 기계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시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매 사람의 지혜와 세공술은 첨단이다. 판테온은 현대 기술자들의 입장에선 아직도 미스터리다. 독보적인 우수성 때문일까. 판테온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도 방치하지 않고 자기네 건물로 썼다. 다름 아닌 무덤. 라파엘로와 카라치 등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들은 물론, 이탈리아의 왕들도 몇 명 묻혔다. 현재는 천주교회가 성당으로 써, 미사가 집전된다.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오늘날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영예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건물’이란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신을 향한 르네상스 예술, 바티칸에 모였네 로마의 예술 중에 가장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바티칸 시티 입구. 가로, 세로 각s 700m가 안 되는 면적이지만 천주교의 본산으로 16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본보기가 됐다. 로마의 예술 중에 가장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티칸 시티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면적보다 약간 작은 44만㎡. 가로, 세로 각 700m가 안 되는 면적이지만 천주교의 본산으로 16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본보기가 됐다. 순교자인 성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진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이 대표적인 명소. 베르니니가 설계해 1667년 완공한 너비 240m의 타원형 광장에 들어서면 284개의 원주와 88개의 각주가 형성하는 열주 회랑이 장엄하다.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40년경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원래 경기장에 세워놨었다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6세기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거장 줄줄이 거친 ‘산피에트로 대성당’ 6만 명을 수용하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본산다운 규모는 물론, 16~17세기 재건 과정에 미켈란젤로·라파엘로·폰타나 등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열정이 깃든 곳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아볼 법한 ‘피에타(Pieta)’,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바로 이곳에 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 성모 마리아가 수난당해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상을 지칭한다. 당시 25세였던 젊은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대리석 조각상인 피에타를 만들었다. 신성한 보물 창고 ‘바티칸 박물관’ 역대 로마 교황의 거주지였던 바티칸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바티칸 박물관'.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아테네 학당' 등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이 이곳에 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인간의 이성과 신의 세계를 완벽히 표현한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은 지금도 관람객에게 수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BC 25년경 그리스 헬레니즘시대 조각상인 ‘라오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라파엘로의 방 등, 바티칸 박물관은 인간을 초월한 신의 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높은 세계를 향했던 르네상스 사회의 기풍이 낳은 유산들은 확실히 신성함이 깃들었다. 그 중 인간이 창조되는 순간부터 타락 과정을 담은 33개 천장화 연작은 건축 공간을 정신적 승화로 이끈다. 미켈란젤로가 특별히 고안한 발판에 올라 몸을 기울인 상태로 4년(1508~1512)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당시 예술가가 수승한 예술적 지향점을 짐작케 한다. 그의 예술혼은 걸작을 낳아, 지금 사람들은 줄을 서서 이곳에 입장해 머리를 90도 각도로 젖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고대 경기장의 변신, ‘나보나 광장’서 커피 한 잔 한나절 돌아다녔다면 로마 광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취해봄직 하다. 로마 시내 여타 광장에 비해 가로세로 비율이 긴 이곳은 다름 아닌 고대 로마 경기장 트랙 공간이 그대로 광장이 됐다. 이탈리아 도시의 특허인 ‘유산을 물려받는 방법’을 확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길게 형성된 광장에 분수 3개가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유명한 베르니니의 4대 강 분수(Fontana dei Fiumi)는 고대 인류 4대강인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과 라플라타 강을 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 흐르는 물처럼 조각도 생동감 넘친다. 로마를 로맨틱한 곳으로, ‘스페인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1953)에 스페인 광장이 등장한 이래 이 광장은 로맨틱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도 가보면 영화 속 모습과 똑같다. 광장 위쪽의 계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으로 불린다. 계단에 앉아 로마 거리를 조망하는 것도 좋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패션쇼가 열리면 계단이 생화로 장식되고 다채로운 조명이 어른거려, 이곳 광장이 더욱 환상적으로 변모한다. (위)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이래 낭만적인 장소의 대명사가 된 ‘스페인 광장’. 지금도 가보면 영화 속 모습과 똑같다. (아래) 로마의 명소들은 하나하나가 ‘별’이다. 벽돌 하나, 기와 한 장, 분수 하나, 석재 하나가 완벽한 예술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기쁨과 경탄을 느끼게 한다. 사진은 그림처럼 펼쳐지는 회화적 조각으로 유명한 바로크 시대의 걸작 ‘트레비 분수’. 여행자들이 ‘동전을 던지러 가는’ 필수 코스다. 고대, 현대, 바로크, 르네상스. 하루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루에 다 볼 수도 없는, 로마는 다층적인 영혼을 가진 도시다. 동전에 소원을 담아, ‘트레비 분수’ 바다의 신 넵투스상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선 형상의 트레비 분수는 ‘동전 던지러 가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조각상까지 닿으면 다시 로마에 방문할 거라는 속설이 떠돌아서다. 이 분수는 조각 분야에서 회화적 상상력이 돋보인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이다. 건축가 니콜로 살비(Niccolo Salvi)가 ‘물의 전시(展示)’라는 콘셉트로 웅장한 장면이 펼쳐지듯 분수를 조각했다.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 베르니니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로마의 명소들은 하나하나가 ‘별’이다. 벽돌 하나, 기와 한 장, 분수 하나, 석재 하나가 완벽한 예술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기쁨과 경탄을 느끼게 한다. 고대, 현대, 바로크, 르네상스. 로마는 하루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루에 다 볼 수도 없는, 다층적인 영혼을 가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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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산실 '로마'에서 興亡의 현장을 만나다
  • [ 기사입력   2013-07-31 12:54:58 ]

    2000년 역사 동안 고대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 유산이 누적된 로마는 천의 얼굴을 지닌 도시다. 사진은 고대 로마제국의 도심부. 맨 왼쪽이 극장형 대중오락장소였던 원형경기장(콜로세움), 바로 오른쪽이 지금의 시민회관 격인 마센지오의 바실리카다.

     

    로마는 너무나 많은 휘황함과 이야기가 담긴 ‘음미할 만한’ 도시다. 고대,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의 유산들. 베네치아광장,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벽화, 베르니니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로마의 명소들은 하늘의 별들 같다. 벽돌 한 장, 기와 한 장, 석재 블록 하나, 시원한 분수 하나에서 모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세상에는 단체여행에 적합지 않은 도시들이 있는데, 로마가 그 중 하나다. 여행하는 시간은 곧 역사를 더듬고 사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유가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가려면 가이드나 동행자는 때론 방해가 된다. 스스로 루트를 계획해 ‘자유롭게’ 다니다 보면 도시와 충분히 교감하게 되고, 떠나기 아쉬운 곳도 생긴다. 수많은 자유여행자가 한동안 머물고 싶어하는 도시에 로마가 포함된다.

     

    스토리 있는 古都, 신화의 옷 걸쳐

     

    로마 사람들은 스스로를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Aeneas)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아이네아스는 미의 여신 비너스와 트로이 왕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일어나 트로이가 함락되자 그는 아버지를 업고 트로이를 빠져나왔고, 비너스의 가호 하에 끝내 이탈리아에 도착해 테베레 강변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몇 세기가 흘렀다. 아이네아스의 후손인 아물리우스는 형의 왕위를 빼앗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형의 아들은 모두 죽이고 딸 레아 실비아를 여신의 사제로 만들어 평생 결혼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레아 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만나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를 낳았다. 아물리우스가 테베레 강에 던진 이 쌍둥이 형제가 늑대 젖을 먹고 큰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 버려진 후 18년이 지나 아물리우스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쌍둥이, 그 중 형인 로물루스가 바로 BC 753년에 로마를 세웠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로마시대 황제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였던 팔라티노엔 무너진 담벼락이 널려있다. 폐허지만 흔적만으로도 영화롭던 옛 제국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고대 대중문화의 중심 ‘포룸’

     

    포룸 로마나(Forum Romana) 유적을 둘러보면 서구 시민문화의 원류를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이 서거나 정치활동이 일어나던 광장, 그 주위의 신전, 극장, 경기장, 도서관, 목욕탕. 로마제국 때 도시 중심부의 이런 대중시설을 통칭하기도 한 포룸(forum)은 로마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생겨났다. 현대 도시의 ‘도심’ 계획과 일맥상통하지만, 정교한 대리석 조각과 공들여 세운 묵직한 기둥에 그 때의 문화는 오히려 지금보다 풍요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번영했던 제국이 어떻게 무너졌을지 의아하다. 그러나 잠시 후 들른 콜로세움에서 이내 제국의 영화롭지 못한 과거를 확인했다.

     

    로마의 어두운 역사, 투기장

     

    세계인에게 로마의 랜드마크처럼 알려진 콜로세움의 정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다. 검투사 시합, 맹수연기가 주로 열린 이곳에서 대중은 엄지로 투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냉혹함을 보였고, 제국 말기에는 황제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을 이곳에서 사자 먹이로 내몰기도 했다. 제국의 말로가 짐작되는 어두운 역사다.

     

    제국 쇄신 기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투기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이번엔 로마의 새 역사를 기념한 건축물을 만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기독교 박해를 멈추고 모든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것으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가 서로마 제국을 통일하자 이를 기념해 원로원이 지은 것이다. 이후 로마 황제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됐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제국의 새로운 중심지를 세우는 등 여러 면모로 로마를 쇄신해 ‘대제’로 불린다.

     

    미스터리 건축 ‘판테온’엔 고대인의 지혜가

     

    고대 로마 건축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인 판테온. 데생용 석고상으로 잘 알려진 아그리파 장군이 지었다. 실내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최상부의 홀에서 빛이 쏟아진다. 그 신비스러움에 ‘이런 게 바로 신전이구나’ 싶다.

     

    고대 로마 건축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물이 판테온(Pantheon)이다. 로마의 모든 신들을 모신 신전으로, 데생용 석고상으로 잘 알려진 아그리파BC 62~BC 12 장군이 지어 AD1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개축했다. 실내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최상부의 홀에서 빛이 쏟아진다. 그 신비스러움에 ‘이런 게 바로 신전이구나’ 싶다.

     

    어떻게 2000년 세월 동안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걸까. 일단 가서 보면 판테온의 돔은 하나의 돌도 형태를 이탈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짜였다는 걸 알게 된다. 직경 43.4m, 높이도 43.3m 돔. 돔의 꼭대기에 있는 직경 8.9m 원형 홀이 유일한 채광창이다. 판테온의 돔은 석재들이 서로를 지지해 완성하고 있다. 완벽한 역학적 원리와 콘크리트 사용법을 가지고 고대 로마 기술자들은 판테온을 지었다. 어느 하나 주먹구구식이 없이 전체가 한 몸인 것처럼 맞물린 석재를 보면 고대 기술자들의 실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첨단 기계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시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매 사람의 지혜와 세공술은 첨단이다. 판테온은 현대 기술자들의 입장에선 아직도 미스터리다.

     

    독보적인 우수성 때문일까. 판테온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도 방치하지 않고 자기네 건물로 썼다. 다름 아닌 무덤. 라파엘로와 카라치 등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들은 물론, 이탈리아의 왕들도 몇 명 묻혔다. 현재는 천주교회가 성당으로 써, 미사가 집전된다.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오늘날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영예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건물’이란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신을 향한 르네상스 예술, 바티칸에 모였네

     

    로마의 예술 중에 가장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바티칸 시티 입구. 가로, 세로 각s 700m가 안 되는 면적이지만 천주교의 본산으로 16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본보기가 됐다.

     

    로마의 예술 중에 가장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티칸 시티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면적보다 약간 작은 44만㎡. 가로, 세로 각 700m가 안 되는 면적이지만 천주교의 본산으로 16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본보기가 됐다. 순교자인 성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진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이 대표적인 명소. 베르니니가 설계해 1667년 완공한 너비 240m의 타원형 광장에 들어서면 284개의 원주와 88개의 각주가 형성하는 열주 회랑이 장엄하다.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40년경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원래 경기장에 세워놨었다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6세기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거장 줄줄이 거친 ‘산피에트로 대성당’

     

    6만 명을 수용하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본산다운 규모는 물론, 16~17세기 재건  과정에 미켈란젤로·라파엘로·폰타나 등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열정이 깃든 곳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아볼 법한 ‘피에타(Pieta)’,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바로 이곳에 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 성모 마리아가 수난당해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상을 지칭한다. 당시 25세였던 젊은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대리석 조각상인 피에타를 만들었다.

     

    신성한 보물 창고 ‘바티칸 박물관’

     

    역대 로마 교황의 거주지였던 바티칸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바티칸 박물관'.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아테네 학당' 등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이 이곳에 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인간의 이성과 신의 세계를 완벽히 표현한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은 지금도 관람객에게 수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BC 25년경 그리스 헬레니즘시대 조각상인 ‘라오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라파엘로의 방 등, 바티칸 박물관은 인간을 초월한 신의 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높은 세계를 향했던 르네상스 사회의 기풍이 낳은 유산들은 확실히 신성함이 깃들었다.

     

    그 중 인간이 창조되는 순간부터 타락 과정을 담은 33개 천장화 연작은 건축 공간을 정신적 승화로 이끈다. 미켈란젤로가 특별히 고안한 발판에 올라 몸을 기울인 상태로 4년(1508~1512)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당시 예술가가 수승한 예술적 지향점을 짐작케 한다. 그의 예술혼은 걸작을 낳아, 지금 사람들은 줄을 서서 이곳에 입장해 머리를 90도 각도로 젖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고대 경기장의 변신, ‘나보나 광장’서 커피 한 잔

     

    한나절 돌아다녔다면 로마 광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취해봄직 하다. 로마 시내 여타 광장에 비해 가로세로 비율이 긴 이곳은 다름 아닌 고대 로마 경기장 트랙 공간이 그대로 광장이 됐다. 이탈리아 도시의 특허인 ‘유산을 물려받는 방법’을 확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길게 형성된 광장에 분수 3개가 같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유명한 베르니니의 4대 강 분수(Fontana dei Fiumi)는 고대 인류 4대강인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과 라플라타 강을 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 흐르는 물처럼 조각도 생동감 넘친다.

     

    로마를 로맨틱한 곳으로, ‘스페인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1953)에 스페인 광장이 등장한 이래 이 광장은 로맨틱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도 가보면 영화 속 모습과 똑같다.

     

    광장 위쪽의 계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으로 불린다. 계단에 앉아 로마 거리를 조망하는 것도 좋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패션쇼가 열리면 계단이 생화로 장식되고 다채로운 조명이 어른거려, 이곳 광장이 더욱 환상적으로 변모한다.

     

    (위)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이래 낭만적인 장소의 대명사가 된 ‘스페인 광장’.  지금도 가보면 영화 속 모습과 똑같다.

    (아래) 로마의 명소들은 하나하나가 ‘별’이다. 벽돌 하나, 기와 한 장, 분수 하나, 석재 하나가 완벽한 예술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기쁨과 경탄을 느끼게 한다. 사진은 그림처럼 펼쳐지는 회화적 조각으로 유명한 바로크 시대의 걸작 ‘트레비 분수’. 여행자들이 ‘동전을 던지러 가는’ 필수 코스다. 고대, 현대, 바로크, 르네상스. 하루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루에 다 볼 수도 없는, 로마는 다층적인 영혼을 가진 도시다.

     

    동전에 소원을 담아, ‘트레비 분수’

     

    바다의 신 넵투스상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선 형상의 트레비 분수는 ‘동전 던지러 가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조각상까지 닿으면 다시 로마에 방문할 거라는 속설이 떠돌아서다. 이 분수는 조각 분야에서 회화적 상상력이 돋보인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이다. 건축가 니콜로 살비(Niccolo Salvi)가 ‘물의 전시(展示)’라는 콘셉트로 웅장한 장면이 펼쳐지듯 분수를 조각했다.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 베르니니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로마의 명소들은 하나하나가 ‘별’이다. 벽돌 하나, 기와 한 장, 분수 하나, 석재 하나가 완벽한 예술인 동시에 인류 역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기쁨과 경탄을 느끼게 한다. 고대, 현대, 바로크, 르네상스. 로마는 하루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루에 다 볼 수도 없는, 다층적인 영혼을 가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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