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의 시조 '오장경'을 기리며 지난 7월 1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한성화교중학교 본관 뒷동산에 위치한 ‘오무장공사(吳武壯公祠)’ 사당에서는 화교의 시조인 오장경 제독의 공덕을 기리는 제사가 열렸다. 이날 제사에는 대만 대사, 부대사, 화교학교장, 한성화교협회 수석부회장 등 국내 화교사회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오무장공사는 청나라 오장경(吳長慶) 제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사당을 지난 1978년 한성화교중학교 뒷동산으로 옮겨왔다. 국내 화교들은 매년 철마다 이곳을 찾아 제사를 지내는데, 오장경 제독을 우리나라 근대 화교의 시조(始祖)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거주 화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곳이 바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셈이다. 이날 제사에 참가한 화교 출신 작가 우매령 씨는 “오장경 제독이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왔는데 그때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라고 40여 명의 중국상인들을 데려왔다”며 “이후 주둔기간이 길어져 조선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했고, 소문이 나자 많은 중국 상인들이 장기거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오장경 제독이 중국 상인들이 장사를 잘 할 수 있게끔 돌봐줬는데, 그때부터 화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고 한다. 오장경은 청말의 실권자인 북양대신 이홍장 막하의 광동수사제독(해군사령관)이었다. 오장경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자신의 사병인 경군(慶軍)을 이끌고 마건충·정여창·원세개 등과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한국 화교의 역사가 시작 됐다. 오장경 제독의 공덕을 기리는 그들의 숙연한 모습에서 화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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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교의 시조 '오장경'을 기리며
    • [ 기사입력   2013-07-18 09:49:28 ]

       

       

      지난 7월 1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한성화교중학교 본관 뒷동산에 위치한 ‘오무장공사(吳武壯公祠)’ 사당에서는 화교의 시조인 오장경 제독의 공덕을 기리는 제사가 열렸다. 이날 제사에는 대만 대사, 부대사, 화교학교장, 한성화교협회 수석부회장 등 국내 화교사회를 이끌고 있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오무장공사는 청나라 오장경(吳長慶) 제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사당을 지난 1978년 한성화교중학교 뒷동산으로 옮겨왔다. 국내 화교들은 매년 철마다 이곳을 찾아 제사를 지내는데, 오장경 제독을 우리나라 근대 화교의 시조(始祖)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거주 화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곳이 바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셈이다.

       

      이날 제사에 참가한 화교 출신 작가 우매령 씨는 “오장경 제독이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왔는데 그때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라고 40여 명의 중국상인들을 데려왔다”며 “이후 주둔기간이 길어져 조선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했고, 소문이 나자 많은 중국 상인들이 장기거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오장경 제독이 중국 상인들이 장사를 잘 할 수 있게끔 돌봐줬는데, 그때부터 화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고 한다.

       

      오장경은 청말의 실권자인 북양대신 이홍장 막하의 광동수사제독(해군사령관)이었다. 오장경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자신의 사병인 경군(慶軍)을 이끌고 마건충·정여창·원세개 등과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한국 화교의 역사가 시작 됐다.

      오장경 제독의 공덕을 기리는 그들의 숙연한 모습에서 화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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