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130년 만에 전성기 再現 130년만의 화려한 귀환. 인천 차이나타운이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전경림 기자) 중국색 짙은 볼거리한국화 중국음식 ‘일품’130년 전 근대 건축물과거로 돌아간 듯 1호선 인천행 열차의 종착역. 인천역은 조금은 한적하고 소탈한, 평범한 기차역이다. 멀리서 바다향을 머금고 온 공기가 여느 역과는 다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붉고 화려하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선린동, 항동 일원 11만 4000㎡에 달하는 차이나타운에는 화교 605명(2011년 기준)이 중국문화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가 펄럭이는 이곳은 중국음식점 29개 곳, 기념품점 33개 곳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성된 차이나타운이자 가장 많은 화교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으로 선정된 차이나타운은 한국인에게는 독특함을, 중국인에게는 향수를 나아내게 하는 대표 관광지다. 변방촌이 관광지로 재탄생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130년 전 이곳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도 지리적 접근성이 주된 이유였다. 산둥과 인천은 비행기로 1시간, 배로 18시간 걸리고, 항에서 차로 30분,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883년 1월, 인천이 개항되면서 이곳에 석 달 뒤 5000평 규모의 청국조계지가 설치됐다. 중국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은 1900년대 청요리집, 잡화상, 이발소 등 중국 상권이 활성화됐었다. 그러나 5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차이나타운이란 명칭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던 변방촌이자, 변방으로 몰린 화교들의 쓸쓸한 주거지였다. 1950~60년대 정부의 화교 차별 정책에 따라 많은 수의 화교가 미국과 대만 등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국의 면모가 되살아난 것은 차이나타운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다. 이후 2007년 4월 ‘지역발전특구’가 되면서 차이나타운은 연 관광객 224만 명을 흡수하는 효자 관광 상품이 됐다. 2000년 당시 2~3군데였던 중국음식점만 해도 13년 사이 32개 곳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기념품점만 33개 곳이 됐다.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명맥을 이어온 화교들의 문화에 지방정부의 관광정책이 힘을 더해 오늘의 차이나타운이 된 것이다. (위)2012년 4월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명물 옛 공화춘 건물(중구 선린동 소재·등록문화재 제246호). 공화춘은 1912년 자장면을 최초로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한 화교 음식점이다. 지금 이곳은 한국 자장면의 역사를 유물과 모형으로 알리고 있다.(중간)인천 차이나타운에 남아있는 중국식 전통 주택. 길가에 위치한 건물은 개방적 형태로 회랑이 딸려 독특하다. 길을 걷다가 적지 않은 옛 건물을 만날 수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세월의 흔적을 버무린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가 사랑하는 관광지가 됐다. (아래)화교들의 정신적 힘의 원천인 의선당.(사진=인천광역시 중구청) 자장면 하나로 관광객 몰이인천차이나타운이 주목받게 된 데는 ‘자장면’ 덕이 크다. 지난 5월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열린 ‘인천 중국 문화관광 페스티벌’에는 중국인 관광객 9100명을 포함해 총 20만 명 이상 관광객이 몰렸다. 자장면을 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100m씩 줄을 섰고, 재료가 일찍 동이 나서 음식을 못 만드는가 하면,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 음식점에서는 하루 4000그릇을 파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산둥지방의 토속면장에 고기를 볶아 수타면에 얹어 만들기 시작한 자장면은 1950년대 화교들이 캐러멜을 첨가한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면서 현재의 자장면이 됐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자장면은 어디서든 뛰어난 적응력으로 정착한 중국인의 작품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역사는 자장면 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장면으로 배를 채워도 볼거리는 중요한 법. 160개 그림으로 구성된 삼국지 벽화거리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모두에게 친근하다. ‘삼국지’ 등장인물 유비, 관우, 장비, 조조가 금방이라도 호통을 치는 듯하다.과거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근대 건축물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중국에서도 보기 어려워진 중국식 전통주택도 이곳에선 130여 년 세월을 거쳐 꿋꿋하게 남아있다. 처마가 있는 긴 회랑과 아치형 대문, 붉은 벽돌이 독특한 이곳은 화교 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차이나타운의 진정한 위용을 보여주는 중국인들의 교화기관 ‘의선당(義善堂)’도 볼 수 있다. ‘의(義)를 지키고 착하게 살자’는 뜻의 의선당은 과거 중국 무술을 연마했던 심신단련의 공간이자 화교들의 정신적 중심이었다. 인터뷰-김홍섭 인천광역시 중구청장“중국인 투자 늘려 차이나타운 확장할 것” 김홍섭(사진·64) 인천광역시 중구청장은 차이나타운 전문가다. 첫 부임한 이듬해 2001년 차이나타운 조성을 본격화했고, 2006년까지 임기를 마치고 2012년 재부임한 이후 차이나타운 확장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김 구청장은 차이나타운을 처음 조성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 차이나타운은) 화교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화교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인천시청마저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내국인도 떠나고, 항만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소음 공해로 남아있던 사람마저 떠났던 지역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하다 나온 대책이 차이나타운 활성화 사업이었던 것이다. 차이나타운이 월미도, 자유항만, 역사문화와 접목돼 관광지로 살아나자 화교들도 떠날 마음을 접고 사업을 키웠다.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매출도 오르고 10여 년 사이 땅값은 10배나 올랐다. 현재 차이나타운의 30여 개 음식점 중 80%가 대만 국적을 가진 화교가, 나머지 15%는 한국인, 5%는 중국 대륙에서 투자한 중국인이 소유하고 있다.마음 모으고 설득하는 과정차이나타운 조성에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김 구청장은 “차이나타운 조성사업은 주민들 하나하나를 설득해나간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노후한 집을 신축하자고 설득시키는 한편, “그렇게 한다고 장사가 되겠냐”는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했다. “중국도 재개발로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가옥 형태를 살려내자고 했을 때 반대가 많았죠.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건물 리모델링에 투자하는 데 인센티브를 줬습니다. 건축규제를 완화시켜주고, 500만원 씩 무상융자로 지원해서 대문이라도 고칠 수 있게 했습니다. 디자인은 중국풍으로 하게 해서 통일감을 줬고요.” 김 구청장은 “이제는 사람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며 “살린 불씨를 연쇄반응식으로 확대하려고 한다”며 “벌써 보이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중국인 투자 유치 적극 나설 것중국인 투자 유치에 곳곳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김 구청장 역시 “중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지역인데다 항로를 개설해 수시로 왕래할 수 있다면 음식점, 숙박법, 쇼핑업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청장은 “인천 내항을 물류가 아닌 여객항로로 바꾸고 노선이 늘어나면 제주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중국인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 큰 빌딩이나 호텔을 짓는 등 장기적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통장 회장도 중국인이고, 이전과는 달리 중국인이 한국에서 부를 축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며 “인천시 중구는 한중교류의 거점이 될 지역이어서 이곳에 투자하면 실수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구청장은 차이나타운 특구를 올해 말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북성동 2가, 송월동 3가 일원까지 현재 차이나타운 길에서 더 나아가 약 6만 9450㎡를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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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130년 만에 전성기 再現
  • [ 기사입력   2013-07-07 14:38:55 ]

    130년만의 화려한 귀환. 인천 차이나타운이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전경림 기자)

     

     

    중국색 짙은 볼거리
    한국화 중국음식 ‘일품’
    130년 전 근대 건축물
    과거로 돌아간 듯

     

    1호선 인천행 열차의 종착역. 인천역은 조금은 한적하고 소탈한, 평범한 기차역이다. 멀리서 바다향을 머금고 온 공기가 여느 역과는 다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붉고 화려하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선린동, 항동 일원 11만 4000㎡에 달하는 차이나타운에는  화교 605명(2011년 기준)이 중국문화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가 펄럭이는 이곳은 중국음식점 29개 곳, 기념품점 33개 곳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성된 차이나타운이자 가장 많은 화교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으로 선정된 차이나타운은 한국인에게는 독특함을, 중국인에게는 향수를 나아내게 하는 대표 관광지다.

     

    변방촌이 관광지로 재탄생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130년 전 이곳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도 지리적 접근성이 주된 이유였다. 산둥과 인천은 비행기로 1시간, 배로 18시간 걸리고, 항에서 차로 30분,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883년 1월, 인천이 개항되면서 이곳에 석 달 뒤 5000평 규모의 청국조계지가 설치됐다. 중국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은 1900년대 청요리집, 잡화상, 이발소 등 중국 상권이 활성화됐었다.


    그러나 5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차이나타운이란 명칭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던 변방촌이자, 변방으로 몰린 화교들의 쓸쓸한 주거지였다. 1950~60년대 정부의 화교 차별 정책에 따라 많은 수의 화교가 미국과 대만 등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국의 면모가 되살아난 것은 차이나타운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다.


    이후 2007년 4월 ‘지역발전특구’가 되면서 차이나타운은 연 관광객 224만 명을 흡수하는 효자 관광 상품이 됐다.
    2000년 당시 2~3군데였던 중국음식점만 해도 13년 사이 32개 곳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기념품점만 33개 곳이 됐다.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명맥을 이어온 화교들의 문화에 지방정부의 관광정책이 힘을 더해 오늘의 차이나타운이 된 것이다.

     

    (위)2012년 4월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명물 옛 공화춘 건물(중구 선린동 소재·등록문화재 제246호). 공화춘은 1912년 자장면을 최초로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한 화교 음식점이다. 지금 이곳은 한국 자장면의 역사를 유물과 모형으로 알리고 있다.

    (중간)인천 차이나타운에 남아있는 중국식 전통 주택. 길가에 위치한 건물은 개방적 형태로 회랑이 딸려 독특하다. 길을 걷다가 적지 않은 옛 건물을 만날 수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세월의 흔적을 버무린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가 사랑하는 관광지가 됐다.

    (아래)화교들의 정신적 힘의 원천인 의선당.

    (사진=인천광역시 중구청)


     

    자장면 하나로 관광객 몰이


    인천차이나타운이 주목받게 된 데는 ‘자장면’ 덕이 크다. 지난 5월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열린 ‘인천 중국 문화관광 페스티벌’에는 중국인 관광객 9100명을 포함해 총 20만 명 이상 관광객이 몰렸다. 자장면을 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100m씩 줄을 섰고, 재료가 일찍 동이 나서 음식을 못 만드는가 하면,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 음식점에서는 하루 4000그릇을 파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산둥지방의 토속면장에 고기를 볶아 수타면에 얹어 만들기 시작한 자장면은 1950년대 화교들이 캐러멜을 첨가한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면서 현재의 자장면이 됐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자장면은 어디서든 뛰어난 적응력으로 정착한 중국인의 작품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역사는 자장면 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장면으로 배를 채워도 볼거리는 중요한 법. 160개 그림으로 구성된 삼국지 벽화거리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모두에게 친근하다. ‘삼국지’ 등장인물 유비, 관우, 장비, 조조가 금방이라도 호통을 치는 듯하다.


    과거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근대 건축물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중국에서도 보기 어려워진 중국식 전통주택도 이곳에선 130여 년 세월을 거쳐 꿋꿋하게 남아있다. 처마가 있는 긴 회랑과 아치형 대문, 붉은 벽돌이 독특한 이곳은 화교 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진정한 위용을 보여주는 중국인들의 교화기관 ‘의선당(義善堂)’도 볼 수 있다. ‘의(義)를 지키고 착하게 살자’는 뜻의 의선당은 과거 중국 무술을 연마했던 심신단련의 공간이자 화교들의 정신적 중심이었다.

     

     

     

    인터뷰-김홍섭 인천광역시 중구청장

    “중국인 투자 늘려 차이나타운 확장할 것”

     

     

    김홍섭(사진·64) 인천광역시 중구청장은 차이나타운 전문가다. 첫 부임한 이듬해 2001년 차이나타운 조성을 본격화했고, 2006년까지 임기를 마치고 2012년 재부임한 이후 차이나타운 확장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김 구청장은 차이나타운을 처음 조성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 차이나타운은) 화교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화교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인천시청마저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내국인도 떠나고, 항만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소음 공해로 남아있던 사람마저 떠났던 지역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하다 나온 대책이 차이나타운 활성화 사업이었던 것이다. 차이나타운이 월미도, 자유항만, 역사문화와 접목돼 관광지로 살아나자 화교들도 떠날 마음을 접고 사업을 키웠다.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매출도 오르고 10여 년 사이 땅값은 10배나 올랐다. 현재 차이나타운의 30여 개 음식점 중 80%가 대만 국적을 가진 화교가, 나머지 15%는 한국인, 5%는 중국 대륙에서 투자한 중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마음 모으고 설득하는 과정


    차이나타운 조성에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김 구청장은 “차이나타운 조성사업은 주민들 하나하나를 설득해나간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노후한 집을 신축하자고 설득시키는 한편, “그렇게 한다고 장사가 되겠냐”는 의구심을 불식시켜야 했다.

    “중국도 재개발로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가옥 형태를 살려내자고 했을 때 반대가 많았죠.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건물 리모델링에 투자하는 데 인센티브를 줬습니다. 건축규제를 완화시켜주고, 500만원 씩 무상융자로 지원해서 대문이라도 고칠 수 있게 했습니다. 디자인은 중국풍으로 하게 해서 통일감을 줬고요.”


    김 구청장은 “이제는 사람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며 “살린 불씨를 연쇄반응식으로 확대하려고 한다”며 “벌써 보이지 않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중국인 투자 유치 적극 나설 것


    중국인 투자 유치에 곳곳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김 구청장 역시 “중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지역인데다 항로를 개설해 수시로 왕래할 수 있다면 음식점, 숙박법, 쇼핑업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청장은 “인천 내항을 물류가 아닌 여객항로로 바꾸고 노선이 늘어나면 제주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중국인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 큰 빌딩이나 호텔을 짓는 등 장기적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통장 회장도 중국인이고, 이전과는 달리 중국인이 한국에서 부를 축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며 “인천시 중구는 한중교류의 거점이 될 지역이어서 이곳에 투자하면 실수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구청장은 차이나타운 특구를 올해 말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북성동 2가, 송월동 3가 일원까지 현재 차이나타운 길에서 더 나아가 약 6만 9450㎡를 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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