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전 영국총리 별세 “그녀의 경제 개혁, 이후 정부에 모델 돼” 反공산주의, 자유시장경제 의지로 경제 일으켜BBC "대처는 보수당은 물론 노동당에도 정치적 유산 남겼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일 오전(현지시각)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9년 10월 13일 대처의 모습. HUGO PHILPOTT/AFP ‘철의 여인’으로 불린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4월 8일(현지시각) 향년 87세로 서거했다. 대변인에 따르면 대처 전 총리는 당일 오전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캐머런 총리,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대처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매우 가슴 아팠다. 우리는 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총리였던 위대한 영국인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영국 버킹엄궁 대변인은 “여왕은 대처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매우 슬퍼했다. 여왕 폐하는 대처의 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위로 서한을 보낼 예정이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관저는 “대처 여사의 장례식은 국장은 아니지만 여왕의 어머니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와 같은 예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당일 다이닝가 10번지엔 조기가 게양됐다. 마드리드에서 회의에 참가중인 캐머런 총리는 파리에서 예정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의 회견 계획을 취소하고 귀국 예정이다. 영국의 유일한 여성 총리 대처 전 총리는 1979~1990년 영국 총리였다. 그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다. 1959년 영국 의회에 처음 진출한 그는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대처는 1975년 당시 보수당 지도자였던 히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보수당의 대표가 됐다. 1979년 보수당이 대선에서 이겼고 이후 대처는 1983년과 1987년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한다. 이로써 대처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됐다. 대처는 최근 줄곧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2002년 뇌졸중을 앓았고 그 후 단기기억 상실증을 보였다. 2003년 부군 데니스 대처가 타계했을 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쌍둥이인 두 자녀도 오랫동안 해외 체류 중이었다. 충성스런 집사가 오랜 기간 대처를 보살폈다. 대처가 영국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건은 ‘포클랜드 전쟁’과 ‘공공주택 민영화’이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대처는 원정군을 보내 3개월 후 포클랜드를 수복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의 사유권을 확대해 100만 명이 넘는 국민에게 판매해 민영화를 추진했다. ‘철의 여인’ 닉네임의 유래 대처 전 총리는 영국 정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정계를 떠난 지 오래인 그였지만 2011년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에게는 지난 30년 중 가장 유능한 총리로 뽑혔다. 그녀는 냉전시대 주요인물 중 하나였다. 총리 재임 전이던 1976년, 대처는 한 연설에서 당시 소련을 비난했다. 그 연설에 소련 신문 레드 스타는 대처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비난했다. 하지만 대처는 이 호칭이 자신의 성격과 맞는다며 흡족해했다. 이후로 그녀는 해외에서 영국의 ‘철의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영국 총리를 맡은 후, 외교에서 대처와 미국 전 대통령 레이건은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반감, 자유시장경제 사상에서 공통분모를 가지며 밀접한 정치적 관계를 맺는다. 대처는 레이건과 손잡고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구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BBC는 “대처 전 총리는 11년 반 동안 집정했고 그 기간 영국의 정치를 변화시켰다.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는 보수당에만 정치적 유산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노동당에도 남겼다.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뒤이은 정부는 여전히 그가 추진한 경제 개혁을 따라서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늘 최고가 되려 노력하던 소녀 ‘마거릿’ 1930년대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 마거릿이란 이름의 소녀가 있었다. 마거릿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녀에 대한 교육에 매우 엄격해 늘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하든지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늘 다른 사람 앞에 있어야지 다른 사람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 설사 버스를 타더라도 늘 첫 번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또, ‘못해요’ 혹은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은 마거릿을 적극적으로 전진하게 했다. 이후에 학업과 생활, 그리고 일에서 마거릿은 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그래서 늘 용감하게 전진하는 정신과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가 되려 했다. 마가릿은 대학 재학시절 학교가 요구한 라틴어 5년 과정을 강인한 의지로 1년 만에 마쳤다. 그뿐 아니라 체육, 음악, 연설 그리고 교내 다른 활동에서도 언제나 선두에 있었다. 40년 후 마거릿은 영국의 첫 번째 총리가 돼 영국과 유럽 정계에 반짝이는 별로 나타났다. 1970년 10월 8일의 대처 전 총리. (CENTRAL PRESS/AFP) 1975년 2월 11일의 대처 전 총리. (AFP) 1979년 4월의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85년 11월18일의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83년 1월 8일 포클랜드를 방문한 대처 전 총리. (AFP) 1987년 3월 29일 구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한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79년 5월 4일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대처 전 총리와 그의 남편(AFP) 1990년 11월 28일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총리직 사퇴를 선언하던 대처 전 총리(SEAN DEMPSEY/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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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처 전 영국총리 별세 “그녀의 경제 개혁, 이후 정부에 모델 돼”
    • [ 기사입력   2013-04-09 21:31:59 ]

      反공산주의, 자유시장경제 의지로 경제 일으켜
      BBC "대처는 보수당은 물론 노동당에도 정치적 유산 남겼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일 오전(현지시각)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9년 10월 13일 대처의 모습. HUGO PHILPOTT/AFP

       

      ‘철의 여인’으로 불린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4월 8일(현지시각) 향년 87세로 서거했다. 대변인에 따르면 대처 전 총리는 당일 오전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캐머런 총리,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대처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매우 가슴 아팠다. 우리는 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총리였던 위대한 영국인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영국 버킹엄궁 대변인은 “여왕은 대처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매우 슬퍼했다. 여왕 폐하는 대처의 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위로 서한을 보낼 예정이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관저는 “대처 여사의 장례식은 국장은 아니지만 여왕의 어머니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와 같은 예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8일 당일 다이닝가 10번지엔 조기가 게양됐다. 마드리드에서 회의에 참가중인 캐머런 총리는 파리에서 예정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의 회견 계획을 취소하고 귀국 예정이다.

       

      영국의 유일한 여성 총리

       

      대처 전 총리는 1979~1990년 영국 총리였다. 그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다. 1959년 영국 의회에 처음 진출한 그는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대처는 1975년 당시 보수당 지도자였던 히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보수당의 대표가 됐다. 1979년 보수당이 대선에서 이겼고 이후 대처는 1983년과 1987년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한다. 이로써 대처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됐다.

       

      대처는 최근 줄곧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2002년 뇌졸중을 앓았고 그 후 단기기억 상실증을 보였다. 2003년 부군 데니스 대처가 타계했을 때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쌍둥이인 두 자녀도 오랫동안 해외 체류 중이었다. 충성스런 집사가 오랜 기간 대처를 보살폈다.

       

      대처가 영국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건은 ‘포클랜드 전쟁’과 ‘공공주택 민영화’이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대처는 원정군을 보내 3개월 후 포클랜드를 수복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의 사유권을 확대해 100만 명이 넘는 국민에게 판매해 민영화를 추진했다.

       

      ‘철의 여인’ 닉네임의 유래

       

      대처 전 총리는 영국 정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정계를 떠난 지 오래인 그였지만 2011년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에게는 지난 30년 중 가장 유능한 총리로 뽑혔다.

       

      그녀는 냉전시대 주요인물 중 하나였다. 총리 재임 전이던 1976년, 대처는 한 연설에서 당시 소련을 비난했다. 그 연설에 소련 신문 레드 스타는 대처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비난했다. 하지만 대처는 이 호칭이 자신의 성격과 맞는다며 흡족해했다. 이후로 그녀는 해외에서 영국의 ‘철의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영국 총리를 맡은 후, 외교에서 대처와 미국 전 대통령 레이건은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반감, 자유시장경제 사상에서 공통분모를 가지며 밀접한 정치적 관계를 맺는다. 대처는 레이건과 손잡고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구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BBC는 “대처 전 총리는 11년 반 동안 집정했고 그 기간 영국의 정치를 변화시켰다. 그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는 보수당에만 정치적 유산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노동당에도 남겼다.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뒤이은 정부는 여전히 그가 추진한 경제 개혁을 따라서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늘 최고가 되려 노력하던 소녀 ‘마거릿’

       

      1930년대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 마거릿이란 이름의 소녀가 있었다. 마거릿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녀에 대한 교육에 매우 엄격해 늘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하든지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늘 다른 사람 앞에 있어야지 다른 사람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 설사 버스를 타더라도 늘 첫 번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또, ‘못해요’ 혹은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은 마거릿을 적극적으로 전진하게 했다. 이후에 학업과 생활, 그리고 일에서 마거릿은 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그래서 늘 용감하게 전진하는 정신과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가 되려 했다.

       

      마가릿은 대학 재학시절 학교가 요구한 라틴어 5년 과정을 강인한 의지로 1년 만에 마쳤다.  그뿐 아니라 체육, 음악, 연설 그리고 교내 다른 활동에서도 언제나 선두에 있었다.

       

      40년 후 마거릿은 영국의 첫 번째 총리가 돼 영국과 유럽 정계에 반짝이는 별로 나타났다.

       

      1970년 10월 8일의 대처 전 총리. (CENTRAL PRESS/AFP)

       

      1975년 2월 11일의 대처 전 총리. (AFP)

       

      1979년 4월의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85년 11월18일의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83년 1월 8일 포클랜드를 방문한 대처 전 총리. (AFP)

       

      1987년 3월 29일 구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한 대처 전 총리. (DANIEL JANIN/AFP)

       

      1979년 5월 4일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대처 전 총리와 그의 남편(AFP)

       

      1990년 11월 28일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총리직 사퇴를 선언하던 대처 전 총리(SEAN DEMPSEY/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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