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밍저의 귀국종용과 중난하이 막후의 정치 공포 딸바보로 유명한 시진핑. (인터넷 이미지) 홍콩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직 확인 된 사실은 아니지만 중국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美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중인 딸 시밍저(習明澤)를 귀국을 종용 한것으로 전했다. 현재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이후에 고위층이 와해되며 각 파벌 간의 싸움이 격렬해졌으며 심지어 암살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분명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시진핑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며 그이유로 시밍저의 해외 안전문제에 대해 외부에서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정치문제 한 분석가는 "지금 중공 고위층의 현실적인 정치싸움은 어떤 영화보다 스릴있다"고 말했다.홍콩 핑궈일보(苹果日報)는 중국의 한 웨이보글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며칠 전 “인민통신사(人民通迅社)”라는 유명한 네티즌이 시나 웨이보에 “중대한 소식이다! 시 총서기의 딸이 본국으로 돌아와 공부한다! 밍저(시진핑의 딸)는 이미 국내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인들이 우리 영애를 인질로 삼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우리는 자녀가 미국인들에게 잠식당하는 것을 피하게 됐다.”라는 글을 남겼다. 더불어, 이 웨이보는 “최고지도자가 좋은 선례를 남겼으니 더욱 많은 지도자가 이를 따라 배워야 한다!” 등의 관련 내용도 함께 게재됐다"고 한다. 이 같은 소식으로 홍콩과 해외 각 언론사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게시물은 이미 금요일에 삭제됐다. 홍콩의 핑궈일보 기자는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과 인터뷰를 시도해 시밍저가 귀국해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게 됐는지 등등을 물어 봤다. 하지만 이 네티즌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또한 이 소식 때문에 알려져 사장에게 욕을 먹었다고 했다. 유명 네티즌 '인민통신사' 네티즌 “인민통신사”는 시나 웨이보 자기 소개란에 자신은 국가통신사(신화사)기자며 10여 년 동안 전국 양회와 16대부터 18대까지의 보도에 참가했으며 국가, 성(省), 시(市)에서 수여하는 보도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또한, 웨이보에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의 장모인 류(劉)씨가 신화사 잡지인 <반월담(半月談)>의 직원이라고 폭로한 글은 아직도 웨이보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녀의 신분을 증명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21세의 시밍저는 2010년 5월부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했다. 시밍저는 하버드에서 매우 소박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가명을 사용한다고 전해졌다. 확인되지 않은 이런 인터넷 정보들은 비록 소문이긴 하지만 중공 최고위층 지도자 자녀와 관련됐기 때문에 시밍저의 안위는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지난 2012년 2월 6일 왕리쥔(王立軍) 사건으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정변 모반계획이 드러난 후 중공 정계는 줄곧 불안정했다. 이런 와중에 고위층 계파간의 권력투쟁은 최고조에 달했으며 심지어 이런 다툼은 중난하이의 고위층 지도자 가족의 잔혹한 살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이는 중공 고위층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권력 투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중 제일 참혹한 살인사건은 링지화(令計劃)의 아들인 링구(令谷, 대외적으로는 왕즈윈(王子雲)이라는 가명.)살해 된 사건이다. 링지화 아들이 정치적인 희생이 됐다. (사진= 대기원 그래픽)링지화 아들 사망, 제일 참혹한 정치 살인 주간 신지웬(新紀元)과 본지 인터넷 사이트는 2012년 12원 15일에 “베이징 고위층 인사의 폭로에 따르면 3월 18일 페라리 교통사고사건은 실질적으로는 링지화의 아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쩡칭홍(曾慶紅), 저우융캉은 이를 빌미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다른 고위층의 인사들이 보시라이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위협했다” 는 내용을 독점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 등의 인사들은 그 후에 해외에 링징화를 위협하는 일련의 음해성 자료를 뿌려, 보시라이 사건을 담당하는 링지화에 대한 보복이 주된 목적이었다.2012년 12월 9일 한 해외 언론은 후진타오 측근으로 17년 동안 일해온 링지화가 첫째 심복이라는 내용의 정보를 돌연 공개했다. 그 전에는 후진타오의 내부 총책임관이자 전 중공 중앙위원회 사무처 주임, 중앙서기처 서기였으며, 현 중공 통일전선부 부장인 링지화은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중앙경위국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기율검사의 규제를 받았다.이전에 같은 언론사에서는 지난 4일에 링지화 부인 구리핑(谷麗苹)이 부정부패와 아들의 교통사고에 대한 위법처리로 인해 2012년 12월 3일에 체포됐었다고 보도했다. 중공 잉공익기금회(瀛公益基金會)는 12월 5일에 구리핑이 썅규(雙規) 처분됐음을 부인했다. 또한, 연합조보(聯合朝報)도 중국 잉공익기금회의 부 비서장 까오융휘(高永回)의 말을 인용해 구리핑이 5일 오후 사무실에서 그와 함께 회의했다고 보도했다. 한 평론가는 “링지화가 겪은 것 중 가장 참혹한 정치적 살인이다. 자신의 외아들이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카섹스’와 같은 오명이 달렸다. 이번 일은 일반 중국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비난과 저주를 받아 사후에도 평안히 잠들 수 없는 오명이다”고 지적했다.중공 정계 관례는 쌍방간의 자리다툼이 치열해도 일반적으로는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 특히 후손은 연루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문화혁명 후에 중공 원로가 규정한 관례로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문화혁명시기에 겪은 비참한 말로로 인해 더는 마오쩌둥처럼 지독하게 악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링지화는 자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에 섹스스캔들이며 모반죄 등으로 전례 없는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내, 처제, 형제자매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고, 공격 을 당했으며 전 방위적으로 갖은 저주를 받았다. 이것은 유례 없는 가장 참혹한 정치적 살인이다. 시진핑, 허리부장 회복 후 보시라이 실각 주장 18대 전 시진핑은 허리부상이 회복된 후에 보시라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사법과정을 통해 보시라이 사건을 처리할 것을 언급하며 정치개혁 여론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저우융캉과 쩡칭홍 등은 당시 후진타오와 시진핑이 보시라이 사건으로 저우융캉을 체포하려 하자 후진타오를 위협하기 위해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작전을 개시했다. 해외 언론은 10월 26일 이전 원자바오에 관한 음해성 자료를 받을 것이라고 예고한 적이 있다. 이와 동시에 저우융캉은 7월 해외에서 중난하이를 위협해 동반몰락하려는 신호를 보냈다. 블룸버그 통신(Bloomberg)은 2012년 6월 시진핑 가족의 음해성 자료를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러한 자료의 출처는 저우융캉 등과 관련 있는 보과과(薄瓜瓜)라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링지화가 공격당하고 있는 10월 26일에 원자바오 가족의 27억 달러 횡령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에서 원자바오 가족은 1990년대 8000만 위안을 출자해 내부 주식을 사들였다고 했다. 당시 중국 최고 갑부가 겨우 1억여 위안을 소유했는데 원자바오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8000만 위안까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사건이 지난 후 사람들은 이 내용을 제보한 서양인 장 데이비드는 보시라이의 친구였고, 뉴욕타임즈의 고위층도 보시라이와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블룸버그 통신, 시진핑 가족의 음해성 자료 공개 2012년 6월 29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홈페이지에 '시진핑의 백만장자 친척이 세도가 계층의 친척을 폭로하다'란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공 국가 부주석 시진핑 가족의 재산이 대략 3억7600 달러라고 했다. 또한 그들은 1000여장에 이르는 시진핑 가족의 자료를 확보해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시진핑 친척의 회사 보고서 전부가 포함돼 있었고 심지어 친척의 개인신분증 복사본과 주소 가족사진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보도에서 다방면으로 조사를 했지만 시진핑과 부인 그리고 딸과 관련된 어떤 자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또한 소문으로 언급됐던 자산과 그들 세 가족이 연루됐다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으며 시진핑의 직무와 자산축적에 어떤 관련성도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해외언론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시진핑의 결백을 증명하게 됐다. 이번 시진핑 가족문제를 보도한 블룸버그 베이징특파원인 마이클 포시더(Michael Forsythe)기자의 과거 보도를 살펴보면 그는 장쩌민이 미국 스타벅스사의 총수를 접견한 사실을 독점 보도했으며 그런 뒤 자신의 트위터에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라왔다. 또한, 장쩌민이 국가 대극원에 모습을 드러낸 뉴스를 자기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뉴스들은 많은 의심을 받았고 외부검증에 의해 뉴스가 가짜임이 밝혀졌다. 포시더 기자가 개인 트위터에 게재한 장쩌민과 미국 스타벅스사 총수가 함께 찍은 사진도 포토샵으로 조작된 것이 드러났다. 시진핑과 원자바오를 공격하기 위한 음해성 자료를 블룸버그 통신과 뉴욕타임즈에 보도에 성공한 후 저우융캉 측의 다음 목표는 후진타오였다. 또한 리커창 가족도 18대 전에 명예 훼손을 당했으며 음해성 자료를 제공한 것은 역시 저우융캉 측이었다. 본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사건의 배후는 장쩌민 파인 저우융캉이다. 왕리쥔이 미 대사관에 제공한 기밀자료로 인해 장파는 어쩔 수 없이 18대 후 중난하이의 최고자리를 잃었다. 이에 명예를 훼손시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시진핑과 원자바오를 공격한 것은 보시라이 정변계획의 일부분이다. 본지는 2012년 4월에 독점 보도한 내용에 중국 인터넷 기업 “바이두(百度)”가 몇 년 동안 베이징 고위층의 내부 다툼에 깊이 개입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두는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와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의 지시 하에 인터넷에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그리고 시진핑 세 사람을 음해하는 활동을 암암리에 시작했다. 그 대가로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하게 됐고, 바이두가 시장을 독점하게 됐다. 바이두가 충칭 업무를 주관하게 된 후에 중앙기율위원회(이하 중기위)에 의해 규제 조사를 받았고 대량의 놀라운 내막이 공개됐다.중기위의 관련 구두자백 기록에 따르면 2010년 3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은 연이어 바이두 총수 리옌홍(李彦宏)을 접견했고 그들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그리고 시진핑을 공격할 인터넷 선전계획을 상당히 치밀하게 꾸몄다고 했다.원자바오와 링지화는 모두 보시라이를 실각하게 한 중요 인물이다. 원자바오는 정치국에서 보시라이 실각을 위해 애썼으며, 링지화는 실각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2012년 2월 왕리쥔이 미 영사관 도주 사건 후 미국 언론은 가장 먼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정변계획과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그리고 불법적인 시신 매매 등을 폭로했다. 그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가 3월 15일에 충칭시 당 서기직을 박탈 당하기 전까지 줄곧 공개적으로 보시라이를 지지해 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와 관련된 모든 내부문건의 사인 같은 핵심적인 일을 링지화가 모두 직접 처리했다고 한다. 중앙 반공청 주임이었던 링지화는 실권을 잡고 중앙경위국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자리는 역대 중공 당수의 심복이 역임해왔고 중앙경위국의 지휘는 중공 최고지도자의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장쩌민은 16대 이후 자신을 위해 차차기 후임자를 준비했다. 그 후임자는 상하이 당서기 천량위(陳良宇)로 그는 2007년 17대에서 후진타오를 누르고 천량위를 위해 준비했다. 당시에도 링지화는 중기위를 장악한 허융(何勇)과 연합해 17대 개막전에 후진타오를 대신해 필사적으로 반격해 단번에 장쩌민의 차차기 후임자였던 천량위를 완전히 제거했다. 이에 따라 장파 인사들도 세력이 약화돼 당시에 장파는 링지화에 대한 원한을 뼈에 새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저우융캉 중난하이 위협 장 파 측의 베이징 언론은 2012년 7월, 저우융캉이 중난하이의 고위층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가했다. 친 장파 베이징 매체는 “저우융캉은 중공 정보원과 특수요원의 수장이기 때문에 모든 상무위원과 그 가족들의 부정부패 관련 증거를 수집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증거가 공개된다면 누가 살고 누가 죽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몰락할 것이다.” 라고 보도했다. 장파는 통제 가능한 해외 언론을 통해 “저우융캉은 왕리쥔과 보시라이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 만약 그를 궁지로 몬다면 그는 왕리쥔이 미영사관으로 도주한 것 보다 결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상무위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라는 등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쏟아냈다.쟝웨이핑(姜維平), 보과과의 위협 두렵지 않아홍콩 문회보(文汇報)의 동북사무소 수석기자였던 쟝웨이핑은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를 폭로한 이유로 불법적으로 외국에 국가기밀을 누설한 죄와 국가정권 전복을 선동한 죄로 6년 동안 복역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10월 초에 그는 자유아시아 방송이 출간한 “누가 보과과의 위협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보시라이의 아들인 보과과가 지시한 위협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그 글 중에 그는 “10월 3일 아침 6시 34분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어설픈 선양(瀋陽)사투리로 내 신분을 확인한 후에 보시라이를 다시 공격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신분을 확인하려 하자 그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중국의 현실 정치 영화보다 더 스펙타클미국 워싱턴의 중국문제 전문가 지다(季達)는 “보과과는 해외에서 저우융캉과 쩡칭홍 등의 장파 와 함께 고위층을 저지할 계획을 도모했다. 그들은 해외의 블룸버그 통신과 뉴욕타임즈를 이용해 자료를 공개하고 사적으로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위협했으며 링지화 아들의 차 사고와 고위층 가족의 음해성 자료 공개 같은 정치적 맞수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위해 사용할 자본은 해외에 넘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현재 시밍저의 귀국 종용소식이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중난하이 내부 다툼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매우 격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시진핑이 해외에 있는 가족의 안전보장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또한, “현재 중국은 장쩌민의 제2권력중앙인 정법위가 해체 중이다. 많은 사건의 진상들이 은폐됐기 때문에 정법위 붕괴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이 미칠 것이다”라고 예상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중공의 정치적 다툼은 영화보다 더욱 스펙타클하다"고 표현했다. 장쩌민이 장악한 제2권력중앙 6•4톈안먼 사태 이후 장쩌민은 효과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중공 정법위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래서 정법위 기초 위에 610사무실을 두고 공안, 검찰, 법률, 사법부를 전면 관리함과 동시에 특수요원, 외교부, 재정부, 군대, 무장경찰, 의료기관, 통신 등 각 영역의 실권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그래서 610사무실이 전국의 거의 모든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특권기관이 됐고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다음의 제2권력중앙이 됐다.당시 제2권력중앙은 국무원의 첫 번째 부총리이자 장쩌민의 친구인 리란칭(李嵐淸)이 맡았고, 뤄간(羅干)이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감독했다. 그러나 장쩌민이 직접적으로 통제를 했다. 중공 17대 이후에 제2권력중앙을 장악한 사람은 현임 중공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이다. 18대 개막 전에 중난하이의 격렬한 권력다툼의 정변 계획에는 제2권력중앙의 후임자이자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보시라이를 먼저 중공 최고권력층에 올려 놓고 2014년 정변을 통해 보시라이로 시진핑을 대신하게 하는 모반 계획을 세웠다. 18대 후 정법위는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배제됐고 적지 않은 곳의 정법위 권리가 축소됐다. 또한, 중국 대륙의 31개 현임 성급 공안청(국)장 중에 7성 만이 성급 정법위 서기를 겸임하며 한층 축소됐다. 현재 시진핑은 끊임없이 군대역량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법위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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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밍저의 귀국종용과 중난하이 막후의 정치 공포
    • [ 기사입력   2013-02-21 01:37:25 ]

      딸바보로 유명한 시진핑. (인터넷 이미지)

       

      홍콩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직 확인 된 사실은 아니지만 중국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美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중인 딸 시밍저(習明澤)를 귀국을 종용 한것으로 전했다.


      현재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이후에 고위층이 와해되며 각 파벌 간의 싸움이 격렬해졌으며 심지어 암살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분명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시진핑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며 그이유로 시밍저의 해외 안전문제에 대해 외부에서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정치문제 한 분석가는 "지금 중공 고위층의 현실적인 정치싸움은 어떤 영화보다 스릴있다"고 말했다.


      홍콩 핑궈일보(苹果日報)는 중국의 한 웨이보글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며칠 전 “인민통신사(人民通迅社)”라는 유명한 네티즌이 시나 웨이보에 “중대한 소식이다! 시 총서기의 딸이 본국으로 돌아와 공부한다! 밍저(시진핑의 딸)는 이미 국내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인들이 우리 영애를 인질로 삼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우리는 자녀가 미국인들에게 잠식당하는 것을 피하게 됐다.”라는 글을 남겼다.


      더불어, 이 웨이보는 “최고지도자가 좋은 선례를 남겼으니 더욱 많은 지도자가 이를 따라 배워야 한다!” 등의 관련 내용도 함께 게재됐다"고 한다. 이 같은 소식으로 홍콩과 해외 각 언론사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게시물은 이미 금요일에 삭제됐다.
       
      홍콩의 핑궈일보 기자는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과 인터뷰를 시도해 시밍저가 귀국해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게 됐는지 등등을 물어 봤다. 하지만 이 네티즌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또한 이 소식 때문에 알려져 사장에게 욕을 먹었다고 했다.


      유명 네티즌 '인민통신사'


      네티즌 “인민통신사”는 시나 웨이보 자기 소개란에 자신은 국가통신사(신화사)기자며 10여 년 동안 전국 양회와 16대부터 18대까지의 보도에 참가했으며 국가, 성(省), 시(市)에서 수여하는 보도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또한, 웨이보에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의 장모인 류(劉)씨가 신화사 잡지인 <반월담(半月談)>의 직원이라고 폭로한 글은 아직도 웨이보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녀의 신분을 증명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21세의 시밍저는 2010년 5월부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했다.
      시밍저는 하버드에서 매우 소박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가명을 사용한다고 전해졌다. 

      확인되지 않은 이런 인터넷 정보들은 비록 소문이긴 하지만 중공 최고위층 지도자 자녀와 관련됐기 때문에 시밍저의 안위는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지난 2012년 2월 6일 왕리쥔(王立軍) 사건으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정변 모반계획이 드러난 후 중공 정계는 줄곧 불안정했다.


      이런 와중에 고위층 계파간의 권력투쟁은 최고조에 달했으며 심지어 이런 다툼은 중난하이의 고위층 지도자 가족의 잔혹한 살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이는 중공 고위층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권력 투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중 제일 참혹한 살인사건은 링지화(令計劃)의 아들인 링구(令谷, 대외적으로는 왕즈윈(王子雲)이라는 가명.)살해 된 사건이다.

      링지화 아들이 정치적인 희생이 됐다. (사진= 대기원 그래픽)


      링지화 아들 사망, 제일 참혹한 정치 살인 


      주간 신지웬(新紀元)과 본지 인터넷 사이트는 2012년 12원 15일에 “베이징 고위층 인사의 폭로에 따르면 3월 18일 페라리 교통사고사건은 실질적으로는 링지화의 아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쩡칭홍(曾慶紅), 저우융캉은 이를 빌미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다른 고위층의 인사들이 보시라이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위협했다” 는 내용을 독점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저우융캉 등의 인사들은 그 후에 해외에 링징화를 위협하는 일련의 음해성 자료를 뿌려, 보시라이 사건을 담당하는 링지화에 대한 보복이 주된 목적이었다.


      2012년 12월 9일 한 해외 언론은 후진타오 측근으로 17년 동안 일해온 링지화가 첫째 심복이라는 내용의 정보를 돌연 공개했다. 그 전에는 후진타오의 내부 총책임관이자 전 중공 중앙위원회 사무처 주임, 중앙서기처 서기였으며, 현 중공 통일전선부 부장인 링지화은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중앙경위국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기율검사의 규제를 받았다.


      이전에 같은 언론사에서는 지난 4일에 링지화 부인 구리핑(谷麗苹)이 부정부패와 아들의 교통사고에 대한 위법처리로 인해 2012년 12월 3일에 체포됐었다고 보도했다.
      중공 잉공익기금회(瀛公益基金會)는 12월 5일에 구리핑이 썅규(雙規) 처분됐음을 부인했다. 또한, 연합조보(聯合朝報)도 중국 잉공익기금회의 부 비서장 까오융휘(高永回)의 말을 인용해 구리핑이 5일 오후 사무실에서 그와 함께 회의했다고 보도했다.


      한 평론가는 “링지화가 겪은 것 중 가장 참혹한 정치적 살인이다. 자신의 외아들이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카섹스’와 같은 오명이 달렸다. 이번 일은 일반 중국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비난과 저주를 받아 사후에도 평안히 잠들 수 없는 오명이다”고 지적했다.


      중공 정계 관례는 쌍방간의 자리다툼이 치열해도 일반적으로는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 특히 후손은 연루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문화혁명 후에 중공 원로가 규정한 관례로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문화혁명시기에 겪은 비참한 말로로 인해 더는 마오쩌둥처럼 지독하게 악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링지화는 자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에 섹스스캔들이며 모반죄 등으로 전례 없는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내, 처제, 형제자매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고, 공격 을 당했으며 전 방위적으로 갖은 저주를 받았다. 이것은 유례 없는 가장 참혹한 정치적 살인이다. 


      시진핑, 허리부장 회복 후 보시라이 실각 주장


      18대 전 시진핑은 허리부상이 회복된 후에 보시라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사법과정을 통해 보시라이 사건을 처리할 것을 언급하며 정치개혁 여론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저우융캉과 쩡칭홍 등은 당시 후진타오와 시진핑이 보시라이 사건으로 저우융캉을 체포하려 하자 후진타오를 위협하기 위해 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작전을 개시했다. 


      해외 언론은 10월 26일 이전 원자바오에 관한 음해성 자료를 받을 것이라고 예고한 적이 있다. 이와 동시에 저우융캉은 7월 해외에서 중난하이를 위협해 동반몰락하려는 신호를 보냈다. 블룸버그 통신(Bloomberg)은 2012년 6월 시진핑 가족의 음해성 자료를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러한 자료의 출처는 저우융캉 등과 관련 있는 보과과(薄瓜瓜)라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링지화가 공격당하고 있는 10월 26일에 원자바오 가족의 27억 달러 횡령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에서 원자바오 가족은 1990년대 8000만 위안을 출자해 내부 주식을 사들였다고 했다. 당시 중국 최고 갑부가 겨우 1억여 위안을 소유했는데 원자바오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8000만 위안까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사건이 지난 후 사람들은 이 내용을 제보한 서양인 장 데이비드는 보시라이의 친구였고, 뉴욕타임즈의 고위층도 보시라이와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블룸버그 통신, 시진핑 가족의 음해성 자료 공개


      2012년 6월 29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홈페이지에 '시진핑의 백만장자 친척이 세도가 계층의 친척을 폭로하다'란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공 국가 부주석 시진핑 가족의 재산이 대략 3억7600 달러라고 했다. 또한 그들은 1000여장에 이르는 시진핑 가족의 자료를 확보해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시진핑 친척의 회사 보고서 전부가 포함돼 있었고 심지어 친척의 개인신분증 복사본과 주소 가족사진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보도에서 다방면으로 조사를 했지만 시진핑과 부인 그리고 딸과 관련된 어떤 자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또한 소문으로 언급됐던 자산과 그들 세 가족이 연루됐다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으며 시진핑의 직무와 자산축적에 어떤 관련성도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해외언론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시진핑의 결백을 증명하게 됐다. 


      이번 시진핑 가족문제를 보도한 블룸버그 베이징특파원인 마이클 포시더(Michael Forsythe)기자의 과거 보도를 살펴보면 그는 장쩌민이 미국 스타벅스사의 총수를 접견한 사실을 독점 보도했으며 그런 뒤 자신의 트위터에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라왔다. 또한, 장쩌민이 국가 대극원에 모습을 드러낸 뉴스를 자기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뉴스들은 많은 의심을 받았고 외부검증에 의해 뉴스가 가짜임이 밝혀졌다. 포시더 기자가 개인 트위터에 게재한 장쩌민과 미국 스타벅스사 총수가 함께 찍은 사진도 포토샵으로 조작된 것이 드러났다.  


      시진핑과 원자바오를 공격하기 위한 음해성 자료를 블룸버그 통신과 뉴욕타임즈에 보도에 성공한 후 저우융캉 측의 다음 목표는 후진타오였다. 또한 리커창 가족도 18대 전에 명예 훼손을 당했으며 음해성 자료를 제공한 것은 역시 저우융캉 측이었다.


      본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사건의 배후는 장쩌민 파인 저우융캉이다. 왕리쥔이 미 대사관에 제공한 기밀자료로 인해 장파는 어쩔 수 없이 18대 후 중난하이의 최고자리를 잃었다. 이에 명예를 훼손시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시진핑과 원자바오를 공격한 것은 보시라이 정변계획의 일부분이다.


      본지는 2012년 4월에 독점 보도한 내용에 중국 인터넷 기업 “바이두(百度)”가 몇 년 동안 베이징 고위층의 내부 다툼에 깊이 개입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두는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와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의 지시 하에 인터넷에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그리고 시진핑 세 사람을 음해하는 활동을 암암리에 시작했다. 그 대가로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하게 됐고, 바이두가 시장을 독점하게 됐다. 바이두가 충칭 업무를 주관하게 된 후에 중앙기율위원회(이하 중기위)에 의해 규제 조사를 받았고 대량의 놀라운 내막이 공개됐다.


      중기위의 관련 구두자백 기록에 따르면 2010년 3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은 연이어 바이두 총수 리옌홍(李彦宏)을 접견했고 그들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그리고 시진핑을 공격할 인터넷 선전계획을 상당히 치밀하게 꾸몄다고 했다.


      원자바오와 링지화는 모두 보시라이를 실각하게 한 중요 인물이다. 원자바오는 정치국에서 보시라이 실각을 위해 애썼으며, 링지화는 실각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2012년 2월 왕리쥔이 미 영사관 도주 사건 후 미국 언론은 가장 먼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정변계획과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그리고 불법적인 시신 매매 등을 폭로했다. 그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가 3월 15일에 충칭시 당 서기직을 박탈 당하기 전까지 줄곧 공개적으로 보시라이를 지지해 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와 관련된 모든 내부문건의 사인 같은 핵심적인 일을 링지화가 모두 직접 처리했다고 한다.


      중앙 반공청 주임이었던 링지화는 실권을 잡고 중앙경위국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자리는 역대 중공 당수의 심복이 역임해왔고 중앙경위국의 지휘는 중공 최고지도자의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16대 이후 자신을 위해 차차기 후임자를 준비했다. 그 후임자는 상하이 당서기 천량위(陳良宇)로 그는 2007년 17대에서 후진타오를 누르고 천량위를 위해 준비했다. 당시에도 링지화는 중기위를 장악한 허융(何勇)과 연합해 17대 개막전에 후진타오를 대신해 필사적으로 반격해 단번에 장쩌민의 차차기 후임자였던 천량위를 완전히 제거했다. 이에 따라 장파 인사들도 세력이 약화돼 당시에 장파는 링지화에 대한 원한을 뼈에 새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저우융캉 중난하이 위협


      장 파 측의 베이징 언론은 2012년 7월, 저우융캉이 중난하이의 고위층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가했다. 친 장파 베이징 매체는 “저우융캉은 중공 정보원과 특수요원의 수장이기 때문에 모든 상무위원과 그 가족들의 부정부패 관련 증거를 수집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증거가 공개된다면 누가 살고 누가 죽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몰락할 것이다.” 라고 보도했다.


      장파는 통제 가능한 해외 언론을 통해 “저우융캉은 왕리쥔과 보시라이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 만약 그를 궁지로 몬다면 그는 왕리쥔이 미영사관으로 도주한 것 보다 결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상무위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라는 등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쏟아냈다.


      쟝웨이핑(姜維平), 보과과의 위협 두렵지 않아


      홍콩 문회보(文汇報)의 동북사무소 수석기자였던 쟝웨이핑은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를 폭로한 이유로 불법적으로 외국에 국가기밀을 누설한 죄와 국가정권 전복을 선동한 죄로 6년 동안 복역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2012년 10월 초에 그는 자유아시아 방송이 출간한 “누가 보과과의 위협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보시라이의 아들인 보과과가 지시한 위협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 글 중에 그는 “10월 3일 아침 6시 34분에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어설픈 선양(瀋陽)사투리로 내 신분을 확인한 후에 보시라이를 다시 공격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신분을 확인하려 하자 그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중국의 현실 정치 영화보다 더 스펙타클


      미국 워싱턴의 중국문제 전문가 지다(季達)는 “보과과는 해외에서 저우융캉과 쩡칭홍 등의 장파 와 함께 고위층을 저지할 계획을 도모했다. 그들은 해외의 블룸버그 통신과 뉴욕타임즈를 이용해 자료를 공개하고 사적으로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위협했으며 링지화 아들의 차 사고와 고위층 가족의 음해성 자료 공개 같은 정치적 맞수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위해 사용할 자본은 해외에 넘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현재 시밍저의 귀국 종용소식이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중난하이 내부 다툼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매우 격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시진핑이 해외에 있는 가족의 안전보장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중국은 장쩌민의 제2권력중앙인 정법위가 해체 중이다. 많은 사건의 진상들이 은폐됐기 때문에 정법위 붕괴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이 미칠 것이다”라고 예상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중공의 정치적 다툼은 영화보다 더욱 스펙타클하다"고 표현했다.

        
      장쩌민이 장악한 제2권력중앙


      6•4톈안먼 사태 이후 장쩌민은 효과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중공 정법위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래서 정법위 기초 위에 610사무실을 두고 공안, 검찰, 법률, 사법부를 전면 관리함과 동시에 특수요원, 외교부, 재정부, 군대, 무장경찰, 의료기관, 통신 등 각 영역의 실권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그래서 610사무실이 전국의 거의 모든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특권기관이 됐고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다음의 제2권력중앙이 됐다.


      당시 제2권력중앙은 국무원의 첫 번째 부총리이자 장쩌민의 친구인 리란칭(李嵐淸)이 맡았고, 뤄간(羅干)이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감독했다. 그러나 장쩌민이 직접적으로 통제를 했다.


      중공 17대 이후에 제2권력중앙을 장악한 사람은 현임 중공 정법위 서기인 저우융캉이다.


      18대 개막 전에 중난하이의 격렬한 권력다툼의 정변 계획에는 제2권력중앙의 후임자이자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보시라이를 먼저 중공 최고권력층에 올려 놓고 2014년 정변을 통해 보시라이로 시진핑을 대신하게 하는 모반 계획을 세웠다.   


      18대 후 정법위는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배제됐고 적지 않은 곳의 정법위 권리가 축소됐다. 또한, 중국 대륙의 31개 현임 성급 공안청(국)장 중에 7성 만이 성급 정법위 서기를 겸임하며 한층 축소됐다. 현재 시진핑은 끊임없이 군대역량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법위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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