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아이도 장기이식용으로 거래돼요” 사진=전경림 기자 “(중국에서) 탈북자 아이들이 장기적출을 위해 팔려 갔어요. 하지만 그때는 사실을 알았어도 입 밖에도 못 냈죠. 말하면 죽으니까.”탈북자 김혜숙(52·사진) 씨가 2005년 탈북 후 중국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꺼낸 말이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김씨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차분하게 말했다. 김씨가 말하는 탈북자의 실상은 끔찍했다. “중국땅에서는 (중국인들이) 북한사람들을 아무리 죽여도 죄가 아니에요. 그저 죽여서 강에 버리든 산에 버리든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중국에서 북한사람들이 죽는 것을 자주 봤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죄인처럼 사는 거죠.”김 씨의 삶은 기구했다. 그녀는 2005년 8월 인신매매를 통해 탈북하게 됐다. 김씨가 처음 팔린 곳은 중국의 식당. 브로커는 그녀의 나이가 43세나 돼 잘 팔리지 않자 북·중 접경지역에 있는 식당 식모로 싸게 넘겼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중 접경 지역인 옌볜자치주는 그동안 북한 주민의 주요 탈북 루트로 이용됐다.김 씨가 식당에서 일한 건 2007년 11월까지 약 2년. 그동안 그녀는 브로커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준 밥을 먹고 팔려나간 탈북자들만 4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 아이들도 인신매매 대상이었다. 김 씨가 처음 아동 인신매매를 알게 된 건 ‘정송’이라는 세 살 된 아이 때문이었다. 북한 홍응에서 왔다는 그 아이는 영양실조 상태라 김씨는 18일간 그 아이에게 죽을 쒀 먹였다. 이후 김 씨가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아이는 단순한 인신매매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를 사가는 조선족 여자에게 “아기를 못 낳아서 그런가”하고 물었더니 자신은 딸만 셋이라고 했다. 조선족 여자는 “아이를 1만 위안(약 170만 원)에 사가는 데 아버지가 심장이 좋지 않아 20년간 이 아이를 키워 그 심장을 아버지에게 이식해 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식’이란 말이 뭔지 몰라 재차 물어보았다고 한다.“정송이의 심장을 꺼내 자기 아버지에게 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럼 아버지의 심장을 정송이에게 주고 정송이 심장을 아버지에게 주는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여자 말이 정송이 심장은 꺼내서 아버지에게 주고, 정송은 그저 죽든지 말든지 시체로 처리한다고 했어요. 그때 그 끔찍한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인지 정송이는 한사코 그 여자한테 안 가려고 했어요. 우리 아이들도 잡혀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 정말 참담했어요.”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인신매매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북한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28살 여성은 김씨가 일하는 식당으로 아이들을 팔아넘겼는데, 넘긴 북한 아이들만 230명이라고 했다. 끝내는 북한 공안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리고 이런 브로커가 굉장히 많다고 덧붙였다.김 씨가 탈북하게 된 것도 인신매매단을 통해서였다. 북한에 있으면 어떤 아주머니들이 중국에 가지 않겠느냐며 몰래 접근한다고 한다. 김씨에게도 어떤 여자가 다가와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탈북을 제안했다. 당시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살다가 관리해제 되면서 사회로 갓 나왔던 김 씨는 그 이야기에 솔깃했다. 결국, 탈북을 결심하고 그 여자와 몰래 여러 번 차를 갈아탄 후 중국땅을 밟았다. 중국으로 들어올 때는 나이가 많고 적고에 관계없이 가격이 같다고 한다. 하지만 팔릴 때는 젊은 여성이 비싸고 김씨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싸게 팔린다. 20대 탈북자 여성은 흥정 없이 3만 위안(약 520만 원)에 거래된다. 두만강을 건너면서 3000위안(약 52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중국에서 10배로 파는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처음 5000위안(약 85만 원)에 흥정이 됐지만 잘 안 팔려 결국 2500위안까지 깎여서 팔렸다고 했다.얼마 전 중국에서 북한여성들이 공공연하게 거래된다는 사실이 중국 공안 당국의 수사로 밝혀진 바 있다. 인신매매된 북한여성들은 합숙소에 감금된 채 음란 화상채팅을 강요받거나 농촌 등지에 팔려나간다. 김 씨는 중국 농촌으로 팔려나간 한 탈북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자 애가 23살인가 되는데 아들이 4명인 홀아비한테 팔려갔어요. 그 집에서 숱한 성폭행을 당했는데 오늘은 큰아들이 들어오고, 다음날은 둘째 아들이 들어오고 이렇게 순서대로 들어온대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 둘째 아들이 마음에 드는데 차라리 결혼을 시켜달라고 애걸했대요. 그랬더니 홀아비가 1년 농사지어 버는 돈이 7000위안인데 널 사오는데 3만 위안이 들었다며 우리가 돈을 합쳐서 사왔기 때문에 너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고 그랬대요.” “그런데 어느 날은 피를 그렇게 많이 뽑더래요. 3년 동안 피도 많이 뽑히고 성 노리개가 돼 살다가 누구 아이인지 모를 딸도 하나 낳았어요. 아이를 낳자 더는 가둬두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 간다고 하고선 도망쳐 나왔대요. 딸도 못 데려오고 혼자 나왔는데 너무 불쌍해요.” 탈북자들은 중국으로 인신매매돼 팔려오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탈출하기 어렵다. 김씨 역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도망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뒤늦게 인신매매란 걸 알고 그 여자를 따라나선 걸 많이 후회했다고 한다. 김 씨는 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1975년 13살 때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2001년 석방됐고, 2005년 탈북했다. 2008년 북송됐다가 다시 탈북해 2009년 한국으로 왔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아기 둘을 낳았는데 잃어버렸고 동생들은 아직도 수용소에 있다고 한다.

  •   Section - | 뉴스 | 라이프 | 연재 | 엔터테인먼트 | 칼럼 | 오피니언
  •   Category - | 국제 | 경제 | 시사 | 중국 | 전국
  • 뉴스 Edition > 시사
     
    “중국에선 아이도 장기이식용으로 거래돼요”
    • [ 기사입력   2013-02-20 15:34:47 ]

      사진=전경림 기자

       

      “(중국에서) 탈북자 아이들이 장기적출을 위해 팔려 갔어요. 하지만 그때는 사실을 알았어도 입 밖에도 못 냈죠. 말하면 죽으니까.”


      탈북자 김혜숙(52·사진) 씨가 2005년 탈북 후 중국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꺼낸 말이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김씨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차분하게 말했다. 김씨가 말하는 탈북자의 실상은 끔찍했다.


      “중국땅에서는 (중국인들이) 북한사람들을 아무리 죽여도 죄가 아니에요. 그저 죽여서 강에 버리든 산에 버리든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어요. 중국에서 북한사람들이 죽는 것을 자주 봤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죄인처럼 사는 거죠.”


      김 씨의 삶은 기구했다. 그녀는 2005년 8월 인신매매를 통해 탈북하게 됐다. 김씨가 처음 팔린 곳은 중국의 식당. 브로커는 그녀의 나이가 43세나 돼 잘 팔리지 않자 북·중 접경지역에 있는 식당 식모로 싸게 넘겼다.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중 접경 지역인 옌볜자치주는 그동안 북한 주민의 주요 탈북 루트로 이용됐다.


      김 씨가 식당에서 일한 건 2007년 11월까지 약 2년. 그동안 그녀는 브로커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준 밥을 먹고 팔려나간 탈북자들만 4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 아이들도 인신매매 대상이었다.


      김 씨가 처음 아동 인신매매를 알게 된 건 ‘정송’이라는 세 살 된 아이 때문이었다. 북한 홍응에서 왔다는 그 아이는 영양실조 상태라 김씨는 18일간 그 아이에게 죽을 쒀 먹였다. 


      이후 김 씨가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아이는 단순한 인신매매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를 사가는 조선족 여자에게 “아기를 못 낳아서 그런가”하고 물었더니 자신은 딸만 셋이라고 했다. 조선족 여자는 “아이를 1만 위안(약 170만 원)에 사가는 데 아버지가 심장이 좋지 않아 20년간 이 아이를 키워 그 심장을 아버지에게 이식해 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식’이란 말이 뭔지 몰라 재차 물어보았다고 한다.


      “정송이의 심장을 꺼내 자기 아버지에게 준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럼 아버지의 심장을 정송이에게 주고 정송이 심장을 아버지에게 주는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여자 말이 정송이 심장은 꺼내서 아버지에게 주고, 정송은 그저 죽든지 말든지 시체로 처리한다고 했어요. 그때 그 끔찍한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인지 정송이는 한사코 그 여자한테 안 가려고 했어요. 우리 아이들도 잡혀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 정말 참담했어요.”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인신매매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북한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28살 여성은 김씨가 일하는 식당으로 아이들을 팔아넘겼는데, 넘긴 북한 아이들만 230명이라고 했다. 끝내는 북한 공안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리고 이런 브로커가 굉장히 많다고 덧붙였다.


      김 씨가 탈북하게 된 것도 인신매매단을 통해서였다. 북한에 있으면 어떤 아주머니들이 중국에 가지 않겠느냐며 몰래 접근한다고 한다. 김씨에게도 어떤 여자가 다가와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탈북을 제안했다. 당시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살다가 관리해제 되면서 사회로 갓 나왔던 김 씨는 그 이야기에 솔깃했다. 결국, 탈북을 결심하고 그 여자와 몰래 여러 번 차를 갈아탄 후 중국땅을 밟았다.


      중국으로 들어올 때는 나이가 많고 적고에 관계없이 가격이 같다고 한다. 하지만 팔릴 때는 젊은 여성이 비싸고 김씨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싸게 팔린다. 20대 탈북자 여성은 흥정 없이 3만 위안(약 520만 원)에 거래된다. 두만강을 건너면서 3000위안(약 52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중국에서 10배로 파는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처음 5000위안(약 85만 원)에 흥정이 됐지만 잘 안 팔려 결국 2500위안까지 깎여서 팔렸다고 했다.


      얼마 전 중국에서 북한여성들이 공공연하게 거래된다는 사실이 중국 공안 당국의 수사로 밝혀진 바 있다. 인신매매된 북한여성들은 합숙소에 감금된 채 음란 화상채팅을 강요받거나 농촌 등지에 팔려나간다.


      김 씨는 중국 농촌으로 팔려나간 한 탈북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자 애가 23살인가 되는데 아들이 4명인 홀아비한테 팔려갔어요. 그 집에서 숱한 성폭행을 당했는데 오늘은 큰아들이 들어오고, 다음날은 둘째 아들이 들어오고 이렇게 순서대로 들어온대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 둘째 아들이 마음에 드는데 차라리 결혼을 시켜달라고 애걸했대요. 그랬더니 홀아비가 1년 농사지어 버는 돈이 7000위안인데 널 사오는데 3만 위안이 들었다며 우리가 돈을 합쳐서 사왔기 때문에 너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고 그랬대요.”


      “그런데 어느 날은 피를 그렇게 많이 뽑더래요. 3년 동안 피도 많이 뽑히고 성 노리개가 돼 살다가 누구 아이인지 모를 딸도 하나 낳았어요. 아이를 낳자 더는 가둬두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 간다고 하고선 도망쳐 나왔대요. 딸도 못 데려오고 혼자 나왔는데 너무 불쌍해요.”

       

      탈북자들은 중국으로 인신매매돼 팔려오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탈출하기 어렵다. 김씨 역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도망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뒤늦게 인신매매란 걸 알고 그 여자를 따라나선 걸 많이 후회했다고 한다.


      김 씨는 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1975년 13살 때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2001년 석방됐고, 2005년 탈북했다. 2008년 북송됐다가 다시 탈북해 2009년 한국으로 왔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아기 둘을 낳았는데 잃어버렸고 동생들은 아직도 수용소에 있다고 한다.


    Tweeter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