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과 중국에서 재연되는 프랑스 대혁명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중앙정치국 신임 상무위원인 왕치산(王岐山)이 최근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책 ‘구체제와 대혁명’을 간부들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이는 중공 지도자들도 중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혁명’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해외 친중 언론들도 이 책 내용과 현재 중국 상황이 매우 큰 관련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국민들은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 국민들처럼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독재, 특권과 부패 문제에 거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프랑스 혁명, 번영 시기에 일어나 18세기에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의 특권은 자유주의 정치 단체와 대중들에 의해 크게 흔들렸고 신분을 나누는 전통 관념은 3권분립 등 민주주주의 사상으로 대체됐다. 프랑스 대혁명은 20세기에 발생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달리, 내란이나 외세의 침입이 없고 사회가 궁핍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루이16세가 지배했던 프랑스는 부르봉 봉건 왕조에서 가장 번영했던 시대였다. 다만 당시 프랑스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했는데 이는 현재의 중국과 흡사하다. 지혜로운 고대 중국인들은 ‘적은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균등하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는데 이는 현실에서도 잘 증명이 된 셈이다. 루이16세 왕조는 작은 비판이라도 매우 불안해하고 초조했는데, 이것도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며 민감한 시기에 식칼마저 팔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중국 사회와 비슷한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전야의 경제 상황은 지금의 중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루이16세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는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었다. 루이16세의 경제위기 1788년, 프랑스에는 가뭄, 우박, 혹한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흉년이 들었다. 이 때문에 빵 가격이 50%나 급등했다.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악화돼 소비력이 갈수록 떨어진 상황이었다. 한 대내외적인 각종 규제는 경제발전을 가로 막았다. 당시 프랑스 하층민들은 가게 소득의 절반 이상을 모두 빵을 사는데 소비했는데 대혁명 시기에는 그 비율이 80%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상품이 쌓여가도 농민들은 궁지에 몰리게 됐고 대거 도시로 밀려들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은 매우 높았고 사회 불안도 고조됐다. 프랑스는 루이15세 때부터 군비 지출이 급증했다. 당시 프랑스는 7년 동안 해외 전쟁에 참여했고 미국의 독립전쟁도 지원하면서 국가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여기다 불합리한 세수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기한 내에 부채와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부득이 또 새로운 빚을 냈는데,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악순환에 들어가며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 상층부에서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는데 귀족들의 작위는 사고 팔 수 있었다. 1700년~1789년 사이 프랑스에는 5만 명의 귀족이 새로 생겨났는데 이들 신귀족들은 몰락한 기존 귀족과 이권을 놓고 큰 갈등을 빚었다. 프랑스 신귀족들은 상업, 부동산과 광산에 투자하고 이를 독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서민과 귀족들 사이의 대립도 갈수록 심각했다. 프랑스의 세제는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많은 감면 혜택을 주는 불공평한 제도였다. 당시 세수를 늘리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토지세를 징수하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세제를 출범하려다 사회 갈등을 격화시켰다. 중국의 경제위기와 비교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후 농민들이 대량으로 도시에 유입되면서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 지속됐다. 관영 언론들은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해마다 18만-20만 건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과거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중공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루이15세 때와 비슷하다. 만약 댜오위다오(釣漁島)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전쟁으로 번진다면 프랑스의 상황과 더욱 비슷하게 될 것이다. 루이15세는 귀족들의 작위를 돈을 받고 팔았는데 현재 중국 관리들 사이에서도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다. 중공 고위층 간부 약 200명의 가족들은 과거 프랑스 귀족들처럼 중국의 상업, 부동산, 광산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에너지, 교통, 통신 등 산업도 독점하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의 신분제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국민은 3가지 신분으로 나뉘었다. 제1 신분은 왕실과 가톨릭 성직자들이었고, 제2 신분은 귀족이었는데 이 두 가지 신분은 통치계급으로서 특권층이었다. 통치를 받는 위치에 있는 제3 신분은 신흥 자산계급, 농민과 도시 서민들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은 어떨까? 당연히 중국 공산당과 이익집단이 제1 신분이 되었는데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앙으로 내세운다. 중국의 제2 신분은 신흥 자본가들과 중공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이다. 농민과 농민공 등은 통치를 받는 제3 신분에 속한다. 프랑스는 과거 제1, 제2 신분이 총인구의 2-3%를 차지, 20만명 정도였다. 오늘날 중국에서 중공 통치 집단도 이 같은 비율이라면 2천만-4천만 명 정도일 것인데 전체 당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1789년 5월, 루이16세는 제3 신분 서민들을 상대로 세수를 늘리려했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2개월 후인 7월 파리 시내 중심부에 있는 바스티유감옥을 습격,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중국의 바스티유감옥은 전국 각지에 있는 노동교양소와 세뇌반이다. 중공 지도자들의 애탄 현재 중국에서는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는 대혁명을 앞둔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와 같다.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구체제와 대혁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 영화관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이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늘 우연이라 여기지만 하늘의 배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의미심장에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죄수번호는 24601이었다. 그만큼 억울한 옥살이에 시달리는 하층민이 많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프랑스인들이 “그날은 반드시 온다”, “하루만 더 기다리자”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중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길거리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중국과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닮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참한 세계(레미제라블)는 반드시 종식되는 날이 온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영원한 도둑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장발장은 새롭게 태어났고 원한을 복수로 갚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베르는 장발장은 놓아주고 자책감 때문에 자살한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선(善)의 승리’이다. ‘선’은 ‘증오’를 바꿔 놓고 비참한 세계도 바꿔놓는다. 장발장 본인도 계속하여 참회하다가 나중에 신에게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나는 하루에 3번 자신을 돌아본다(吾日三省吾身)’고 말한 중국의 증자(曾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새는 죽음을 앞두면 울음이 슬프고(鳥之將死 其鳴也哀), 사람은 죽음을 앞두면 말이 착해진다(人之將死 其言也善)’ 중국의 붉은 왕조가 현재 운명에 애탄하고 있는 것은 진심일까? 그렇길 바란다. 글/ 셰텐(謝田)美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대학교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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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중국에서 재연되는 프랑스 대혁명
  • [ 기사입력   2013-02-13 02:57:17 ]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중앙정치국 신임 상무위원인 왕치산(王岐山)이 최근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책 ‘구체제와 대혁명’을 간부들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이는 중공 지도자들도 중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혁명’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해외 친중 언론들도 이 책 내용과 현재 중국 상황이 매우 큰 관련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국민들은 대혁명 전야의 프랑스 국민들처럼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독재, 특권과 부패 문제에 거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프랑스 혁명, 번영 시기에 일어나
     
    18세기에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의 특권은 자유주의 정치 단체와 대중들에 의해 크게 흔들렸고 신분을 나누는 전통 관념은 3권분립 등 민주주주의 사상으로 대체됐다. 프랑스 대혁명은 20세기에 발생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달리, 내란이나 외세의 침입이 없고 사회가 궁핍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루이16세가 지배했던 프랑스는 부르봉 봉건 왕조에서 가장 번영했던 시대였다. 다만 당시 프랑스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했는데 이는 현재의 중국과 흡사하다. 지혜로운 고대 중국인들은 ‘적은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균등하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는데 이는 현실에서도 잘 증명이 된 셈이다.
     
    루이16세 왕조는 작은 비판이라도 매우 불안해하고 초조했는데, 이것도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며 민감한 시기에 식칼마저 팔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중국 사회와 비슷한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전야의 경제 상황은 지금의 중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루이16세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는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었다.
     
    루이16세의 경제위기
     
    1788년, 프랑스에는 가뭄, 우박, 혹한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흉년이 들었다. 이 때문에 빵 가격이 50%나 급등했다.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악화돼 소비력이 갈수록 떨어진 상황이었다.
     
    한 대내외적인 각종 규제는 경제발전을 가로 막았다. 당시 프랑스 하층민들은 가게 소득의 절반 이상을 모두 빵을 사는데 소비했는데 대혁명 시기에는 그 비율이 80%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상품이 쌓여가도 농민들은 궁지에 몰리게 됐고 대거 도시로 밀려들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은 매우 높았고 사회 불안도 고조됐다. 
     
    프랑스는 루이15세 때부터 군비 지출이 급증했다. 당시 프랑스는 7년 동안 해외 전쟁에 참여했고 미국의 독립전쟁도 지원하면서 국가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여기다 불합리한 세수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켰다. 기한 내에 부채와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부득이 또 새로운 빚을 냈는데,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악순환에 들어가며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와 동시에 프랑스 상층부에서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는데 귀족들의 작위는 사고 팔 수 있었다. 1700년~1789년 사이 프랑스에는 5만 명의 귀족이 새로 생겨났는데 이들 신귀족들은 몰락한 기존 귀족과 이권을 놓고 큰 갈등을 빚었다. 프랑스 신귀족들은 상업, 부동산과 광산에 투자하고 이를 독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서민과 귀족들 사이의 대립도 갈수록 심각했다.
     
    프랑스의 세제는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많은 감면 혜택을 주는 불공평한 제도였다. 당시 세수를 늘리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토지세를 징수하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세제를 출범하려다 사회 갈등을 격화시켰다.
     
    중국의 경제위기와 비교
     
    중국에서도 개혁개방 후 농민들이 대량으로 도시에 유입되면서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 지속됐다. 관영 언론들은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해마다 18만-20만 건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과거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중공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루이15세 때와 비슷하다. 만약 댜오위다오(釣漁島)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전쟁으로 번진다면 프랑스의 상황과 더욱 비슷하게 될 것이다. 루이15세는 귀족들의 작위를 돈을 받고 팔았는데 현재 중국 관리들 사이에서도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다.
     
    중공 고위층 간부 약 200명의 가족들은 과거 프랑스 귀족들처럼 중국의 상업, 부동산, 광산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에너지, 교통, 통신 등 산업도 독점하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의 신분제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국민은 3가지 신분으로 나뉘었다. 제1 신분은 왕실과 가톨릭 성직자들이었고, 제2 신분은 귀족이었는데 이 두 가지 신분은 통치계급으로서 특권층이었다. 통치를 받는 위치에 있는 제3 신분은 신흥 자산계급, 농민과 도시 서민들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은 어떨까? 당연히 중국 공산당과 이익집단이 제1 신분이 되었는데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앙으로 내세운다. 중국의 제2 신분은 신흥 자본가들과 중공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이다. 농민과 농민공 등은 통치를 받는 제3 신분에 속한다.
     
    프랑스는 과거 제1, 제2 신분이 총인구의 2-3%를 차지, 20만명 정도였다. 오늘날 중국에서 중공 통치 집단도 이 같은 비율이라면 2천만-4천만 명 정도일 것인데 전체 당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1789년 5월, 루이16세는 제3 신분 서민들을 상대로 세수를 늘리려했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2개월 후인 7월 파리 시내 중심부에 있는 바스티유감옥을 습격,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중국의 바스티유감옥은 전국 각지에 있는 노동교양소와 세뇌반이다.
     
    중공 지도자들의 애탄
     
    현재 중국에서는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는 대혁명을 앞둔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와 같다.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구체제와 대혁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 영화관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이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늘 우연이라 여기지만 하늘의 배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의미심장에 머리를 끄덕이고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죄수번호는 24601이었다. 그만큼 억울한 옥살이에 시달리는 하층민이 많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프랑스인들이 “그날은 반드시 온다”, “하루만 더 기다리자”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중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길거리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중국과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닮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참한 세계(레미제라블)는 반드시 종식되는 날이 온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영원한 도둑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장발장은 새롭게 태어났고 원한을 복수로 갚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베르는 장발장은 놓아주고 자책감 때문에 자살한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선(善)의 승리’이다. ‘선’은 ‘증오’를 바꿔 놓고 비참한 세계도 바꿔놓는다. 장발장 본인도 계속하여 참회하다가 나중에 신에게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나는 하루에 3번 자신을 돌아본다(吾日三省吾身)’고 말한 중국의 증자(曾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새는 죽음을 앞두면 울음이 슬프고(鳥之將死 其鳴也哀), 사람은 죽음을 앞두면 말이 착해진다(人之將死 其言也善)’ 중국의 붉은 왕조가 현재 운명에 애탄하고 있는 것은 진심일까? 그렇길 바란다.

     


    글/ 셰텐(謝田)
    美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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