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하나 되고픈 옛사람의 꿈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향원정(香遠亭). 궁궐의 정자는 대부분 연못과 함께 있다. ‘하늘은 둥글고(天圓)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옛사람들의 우주관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자연을 존중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옛 건축의 운치를 탄생시켰다. (사진제공=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등산로를 가다 만나는 정자는 한숨 쉬어가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에게 정자는 자연과 합일을 꿈꾸는 이상향의 장소였다. 산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곳에는 꼭 정자가 있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등 옛 서울(한양)을 둘러싼 산은 물론 경관이 현대화되기 이전 한강 곳곳에 정자가 수두룩했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기둥 위로 마룻바닥을 한 층 높여 지은 누각도 탁 트인 경관을 즐기며 휴식하는 곳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곳에서 모여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고 교류했다.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는 서울에 현존하는 40개가량 누정(누각과 정자)과 기록으로 확인되는 곳 등 총 88개 누정에 얽힌 문화를 책으로 냈다. 서울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시리즈 도서 제8권 ‘서울의 누정’은 사진과 그림 300여장과 누정 분포지도 등 시각자료는 물론, 누정에서 일어난 역사 속 이야기와 그곳에서 지은 선비들의 한시를 실었다. 이 책을 집필한 이상배(李相培) 연구위원은 조선시대 누정이 선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축양식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인은 자연을 무시하다가 나중에 당하고 나서 ‘아차’ 하지요. 하지만 조선 선비들은 인간이 자연에서 배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우주를 생각하는 (유기적인) 자연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비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과 인간의 사고는 하나가 돼야 한다(合一)고 생각했다. 경복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향원정에도 선비들의 이상이 담겼다. 연못이 네모나고 가운데 섬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天圓)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당시의 우주관과 연관된다. 이 연구위원은 “조선의 정원은 대부분 이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며 “선비들은 그런 우주관으로 생활하고 사고했기 때문에 건물 기둥부터 시작해서 그 세계관이 반영돼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서 수신서(修身書)인 ‘소학(小學)’부터 배우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옛사람들은 현대인에 비하면 매우 “철학적”이라는 게 이 연구위원의 시각이다. 자연을 닮으려는 선비의 소망을 담은 정자는 그 목적만큼이나 이용이 개방적이었다. 정자는 대부분 개인 소유로, 지금으로 따지면 별장 개념이다. 그런데 정자 주변에는 담장도 없고, 정자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시스템도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연구위원은 “옛날에 정자는 식객이나 문인들이 와서 즐길 수 있게 한 교류 장소였다”며 “일부러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오가던 선비들이 한잔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덕 교과서’로 분류되는 책들만 평생 봤던 선비들의 생활을 보면 사실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내’ 정자가 훼손될까 걱정할 일도 없고, 지나가던 선비의 시 한 수가 오히려 주인에게는 큰 선물이었을지 모른다. 경복궁 경회루를 포함한 궁궐 누정 32개와 한강의 망원정 등 복원된 것을 포함한 5개 누정은 직접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외교사절들이 ‘가볼만한 곳’으로 꼭 찾곤 했다는 한남동의 ‘제천정(濟川亭)’ 등 옛 한강에도 누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터만 남거나 기록으로만 확인되는 게 대부분이다.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변은 정말 옛 그림 속 풍경처럼 신선이 노닐던 곳 같았을까? 아름답던 과거를 즐기려면 스토리가 관건이다. 들고 다니기에 두껍긴 하지만, 이 책의 풍부한 이야기를 즐기며 가볼 곳을 점찍어보는 것도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일 것이다. 왕과 신하들이 경회루에 올라 밖을 내다보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을 것이다. 공중에 들어올린 문짝을 내리면 공간이 분리돼 밤에 잠자는 방을 만들 수도 있었다. 조선 초기에 한 말단 관리가 경회루의 풍광을 보고 싶어 이곳에 올랐다가 들킨 적이 있다. 그러나 왕은 이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고 공자의 '춘추(春秋)'를 잘 공부한 것을 보고, 잘못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상을 줬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사진제공=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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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되고픈 옛사람의 꿈
  • [ 기사입력   2013-01-21 14:15:40 ]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향원정(香遠亭). 궁궐의 정자는 대부분 연못과 함께 있다. ‘하늘은 둥글고(天圓)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옛사람들의 우주관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자연을 존중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옛 건축의 운치를 탄생시켰다. (사진제공=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등산로를 가다 만나는 정자는 한숨 쉬어가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에게 정자는 자연과 합일을 꿈꾸는 이상향의 장소였다. 산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곳에는 꼭 정자가 있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등 옛 서울(한양)을 둘러싼 산은 물론 경관이 현대화되기 이전 한강 곳곳에 정자가 수두룩했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기둥 위로 마룻바닥을 한 층 높여 지은 누각도 탁 트인 경관을 즐기며 휴식하는 곳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곳에서 모여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고 교류했다.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는 서울에 현존하는 40개가량 누정(누각과 정자)과 기록으로 확인되는 곳 등 총 88개 누정에 얽힌 문화를 책으로 냈다. 서울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시리즈 도서 제8권 ‘서울의 누정’은 사진과 그림 300여장과 누정 분포지도 등 시각자료는 물론, 누정에서 일어난 역사 속 이야기와 그곳에서 지은 선비들의 한시를 실었다.

     

    이 책을 집필한 이상배(李相培) 연구위원은 조선시대 누정이 선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축양식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인은 자연을 무시하다가 나중에 당하고 나서 ‘아차’ 하지요. 하지만 조선 선비들은 인간이 자연에서 배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우주를 생각하는 (유기적인) 자연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비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과 인간의 사고는 하나가 돼야 한다(合一)고 생각했다.

     

    경복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향원정에도 선비들의 이상이 담겼다. 연못이 네모나고 가운데 섬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天圓)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당시의 우주관과 연관된다. 이 연구위원은 “조선의 정원은 대부분 이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며 “선비들은 그런 우주관으로 생활하고 사고했기 때문에 건물 기둥부터 시작해서 그 세계관이 반영돼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서 수신서(修身書)인 ‘소학(小學)’부터 배우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옛사람들은 현대인에 비하면 매우 “철학적”이라는 게 이 연구위원의 시각이다.

     

    자연을 닮으려는 선비의 소망을 담은 정자는 그 목적만큼이나 이용이 개방적이었다. 정자는 대부분 개인 소유로, 지금으로 따지면 별장 개념이다. 그런데 정자 주변에는 담장도 없고, 정자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시스템도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연구위원은 “옛날에 정자는 식객이나 문인들이 와서 즐길 수 있게 한 교류 장소였다”며 “일부러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오가던 선비들이 한잔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덕 교과서’로 분류되는 책들만 평생 봤던 선비들의 생활을 보면 사실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내’ 정자가 훼손될까 걱정할 일도 없고, 지나가던 선비의 시 한 수가 오히려 주인에게는 큰 선물이었을지 모른다.

     

    경복궁 경회루를 포함한 궁궐 누정 32개와 한강의 망원정 등 복원된 것을 포함한 5개 누정은 직접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외교사절들이 ‘가볼만한 곳’으로 꼭 찾곤 했다는 한남동의 ‘제천정(濟川亭)’ 등 옛 한강에도 누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터만 남거나 기록으로만 확인되는 게 대부분이다.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변은 정말 옛 그림 속 풍경처럼 신선이 노닐던 곳 같았을까? 아름답던 과거를 즐기려면 스토리가 관건이다. 들고 다니기에 두껍긴 하지만, 이 책의 풍부한 이야기를 즐기며 가볼 곳을 점찍어보는 것도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일 것이다.

     

    왕과 신하들이 경회루에 올라 밖을 내다보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을 것이다. 공중에 들어올린 문짝을 내리면 공간이 분리돼 밤에 잠자는 방을 만들 수도 있었다. 조선 초기에 한 말단 관리가 경회루의 풍광을 보고 싶어 이곳에 올랐다가 들킨 적이 있다. 그러나 왕은 이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고 공자의 '춘추(春秋)'를 잘 공부한 것을 보고, 잘못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상을 줬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사진제공=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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