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마지막 복식엔 지극한 정성이… (왼쪽)덕혜옹주가 12~14세인 소녀시절 입었던 당의와 금박치마(금박이 1줄인 것이 스란치마, 2줄인 것이 대란치마). 당의는 반가에서는 예장용으로만 입었고,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도 입었다. 금박이 1줄인 스란치마를 입고 그 위에 금박이 2줄인 대란치마를 입었다. 대란치마는 궁중에서도 대례복으로 주로 쓰였다. 당의의 색상이 고려청자의 빛깔과도 흡사하게 신비롭다. 오른쪽 사진은 유사한 당의를 착용한 덕혜옹주의 1924년 무렵 모습.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불운했던 삶은 유명하다. 일제(日帝)에 의해 망했던 나라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 역시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지금 경복궁 서쪽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의 유물이 최초로 공개돼, 한 많은 그의 일대기와 함께 너무도 아름다운 조선의 문물이 눈시울을 적신다. 덕혜옹주는 고종(高宗, 1852~1919)이 환갑의 나이에 얻은 유일한 딸이다. 일제(日帝)의 한일합방 뒤인 1912년 덕수궁에서 귀인양씨(貴人梁氏)에게서 태어나 14살에 일본에 강제 유학 가 20세에 일본인(대마도 번주(藩主)의 아들 소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일본에 간 뒤 정신병에 시달리다 병상에서 이혼을 당했지만 1945년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2년 환국했다.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채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 머물다 78세로 생을 마감한 덕혜옹주. 그러나 마지막 왕녀인 그는 국민에게 일종 희망으로 여겨져 그의 안부는 언제나 국민들에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덕을 널리 베풀라’는 뜻으로 부왕이 지어준 덕혜(德惠)라는 이름 그대로였다. 이번 전시는 덕혜옹주의 환국 50주년이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동경 문화학원복식박물관 소장품 53점과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 소장품 16점을 비롯한 덕혜옹주의 유품 100여 점을 전시했다. 아기 때 입은 옷부터 일본에 유학갈 때 가지고 간 한복들, 그리고 결혼 소식에 고국에서 보내온 혼수품들은 아름다운 조선의 문물을 여실히 드러낸다. 옹주의 옷을 짓던 사람들은 아마도 조선의 마지막 복식에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왕실 예복은 물론, 반가에서도 입은 처녀 복식인 노랑저고리와 진분홍치마도 우수한 품질과 섬세한 디테일로 한복의 모범을 보여준다. 뒤주와 솥을 축소해 만든 은장식품. 뒤주는 6x9x7.8cm, 솥은 지름6.2cmx높이9.5cm로 작은 장식품 크기다. 나무상자 안에 두 개의 칸으로 나뉘어 각각 들어있는데, 나무상자가 서랍식으로 돼서 칸을 잡아당기면 이 장식품을 볼 수 있게 돼있다.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九州國立博物館) 일본에 있는 옹주에게 보낸 뒤주와 솥 모양 미니어처 장식품도 인상적이다. 고향을 잊지 말라는 부왕(父王)의 세심한 정성이 깃든 듯하다. 아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덕혜옹주의 사진은 물론, 당시 국민들에게 옹주의 소식을 전했던 신문기사 자료도 풍부하다. 사진 속 옹주는 왕녀다운 기품과 영리한 면모를 갖춘 모습이지만, 슬픔을 꾹 참아야 했던 우울한 내면도 짐작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던 박물관 관계자들은 덕혜옹주의 유물을 하나하나 보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덕혜옹주가 5세 이전에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아용 까치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는 일반두루마기와 모양은 같지만 각 부분의 색을 다르게 해서 조화롭게 만든 것이다. 오방색은 물론 여러 색상이 조화를 이루는 까치두루마기는 원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송화색 반회장저고리와 진분홍색 치마. 시집가기 전 처녀의 대표적인 복장이다. 깃•끝동•겨드랑이•고름을 다른 색 천으로 대면 '삼회장(三回裝)'이고 깃•끝동•고름만 다른 색 천으로 하면 반회장(半回裝)이라고 한다. 이 옷은 여름용 옷감으로 만든 것으로, 바느질이 정교하고 저고리 밑단(도련)의 선이 자연스럽게 곡선이 져서 아름답다. 가슴 부분의 이 같은 처리는 저고리가 몸에 정확히 안착되도록 하기 때문에 한복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금도금한 호로병모양 삼작노리개. 맨 윗부분에 국화매듭을 짓고 산호 단추를 달았다. 덕혜옹주가 결혼할 때 고종의 계비로 간택됐던 金氏에게서 받은 예물이다. (사진제공=九州國立博物館)당의용 금박본(1837년): 당의에 문양을 찍기 위한 목판으로 '壽' '福'자와 석류 문양이 조각돼 있다. 이 금박본과 흡사한 문양이 덕혜옹주 당의의 어깨 부분에서 확인된다. (사진제공=국립고궁박물관) 中文: http://www.epochtimes.com/gb/12/12/27/n376261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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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마지막 복식엔 지극한 정성이…
  • [ 기사입력   2012-12-17 12:55:33 ]

    (왼쪽)덕혜옹주가 12~14세인 소녀시절 입었던 당의와 금박치마(금박이 1줄인 것이 스란치마, 2줄인 것이 대란치마). 당의는 반가에서는 예장용으로만 입었고,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도 입었다. 금박이 1줄인 스란치마를 입고 그 위에 금박이 2줄인 대란치마를 입었다. 대란치마는 궁중에서도 대례복으로 주로 쓰였다. 당의의 색상이 고려청자의 빛깔과도 흡사하게 신비롭다. 오른쪽 사진은 유사한 당의를 착용한 덕혜옹주의 1924년 무렵 모습.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불운했던 삶은 유명하다. 일제(日帝)에 의해 망했던 나라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 역시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지금 경복궁 서쪽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의 유물이 최초로 공개돼, 한 많은 그의 일대기와 함께 너무도 아름다운 조선의 문물이 눈시울을 적신다.

     

    덕혜옹주는 고종(高宗, 1852~1919)이 환갑의 나이에 얻은 유일한 딸이다. 일제(日帝)의 한일합방 뒤인 1912년 덕수궁에서 귀인양씨(貴人梁氏)에게서 태어나 14살에 일본에 강제 유학 가 20세에 일본인(대마도 번주(藩主)의 아들 소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일본에 간 뒤 정신병에 시달리다 병상에서 이혼을 당했지만 1945년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62년 환국했다.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채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 머물다 78세로 생을 마감한 덕혜옹주. 그러나 마지막 왕녀인 그는 국민에게 일종 희망으로 여겨져 그의 안부는 언제나 국민들에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덕을 널리 베풀라’는 뜻으로 부왕이 지어준 덕혜(德惠)라는 이름 그대로였다.

     

    이번 전시는 덕혜옹주의 환국 50주년이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동경 문화학원복식박물관 소장품 53점과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 소장품 16점을 비롯한 덕혜옹주의 유품 100여 점을 전시했다. 아기 때 입은 옷부터 일본에 유학갈 때 가지고 간 한복들, 그리고 결혼 소식에 고국에서 보내온 혼수품들은 아름다운 조선의 문물을 여실히 드러낸다. 옹주의 옷을 짓던 사람들은 아마도 조선의 마지막 복식에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왕실 예복은 물론, 반가에서도 입은 처녀 복식인 노랑저고리와 진분홍치마도 우수한 품질과 섬세한 디테일로 한복의 모범을 보여준다.

     

    뒤주와 솥을 축소해 만든 은장식품. 뒤주는 6x9x7.8cm, 솥은 지름6.2cmx높이9.5cm로 작은 장식품 크기다. 나무상자 안에 두 개의 칸으로 나뉘어 각각 들어있는데, 나무상자가 서랍식으로 돼서 칸을 잡아당기면 이 장식품을 볼 수 있게 돼있다.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九州國立博物館)

     

    일본에 있는 옹주에게 보낸 뒤주와 솥 모양 미니어처 장식품도 인상적이다. 고향을 잊지 말라는 부왕(父王)의 세심한 정성이 깃든 듯하다. 아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덕혜옹주의 사진은 물론, 당시 국민들에게 옹주의 소식을 전했던 신문기사 자료도 풍부하다. 사진 속 옹주는 왕녀다운 기품과 영리한 면모를 갖춘 모습이지만, 슬픔을 꾹 참아야 했던 우울한 내면도 짐작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던 박물관 관계자들은 덕혜옹주의 유물을 하나하나 보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덕혜옹주가 5세 이전에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아용 까치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는 일반두루마기와 모양은 같지만 각 부분의 색을 다르게 해서 조화롭게 만든 것이다. 오방색은 물론 여러 색상이 조화를 이루는 까치두루마기는 원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송화색 반회장저고리와 진분홍색 치마. 시집가기 전 처녀의 대표적인 복장이다. 깃•끝동•겨드랑이•고름을 다른 색 천으로 대면 '삼회장(三回裝)'이고 깃•끝동•고름만 다른 색 천으로 하면 반회장(半回裝)이라고 한다. 이 옷은 여름용 옷감으로 만든 것으로, 바느질이 정교하고 저고리 밑단(도련)의 선이 자연스럽게 곡선이 져서 아름답다. 가슴 부분의 이 같은 처리는 저고리가 몸에 정확히 안착되도록 하기 때문에 한복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제공=文化學園服飾博物館)

     

    금도금한 호로병모양 삼작노리개. 맨 윗부분에 국화매듭을 짓고 산호 단추를 달았다. 덕혜옹주가 결혼할 때 고종의 계비로 간택됐던 金氏에게서 받은 예물이다. (사진제공=九州國立博物館)

    당의용 금박본(1837년): 당의에 문양을 찍기 위한 목판으로 '壽' '福'자와 석류 문양이 조각돼 있다. 이 금박본과 흡사한 문양이 덕혜옹주 당의의 어깨 부분에서 확인된다. (사진제공=국립고궁박물관)

     

     

    中文: http://www.epochtimes.com/gb/12/12/27/n376261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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