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수길 “삶의 모습 가득한 장터사진, 文化에 관한 기록이죠” 파프리카 상자 모자를 쓴 할머니. 장터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 구미에 맞게 일본에서 건너온 파프리카를 준비했다. 채소를 다듬는 동안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자 파프리카 상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눌러 썼다. 이 주의 포토상 감이다!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새벽 4시. 모두가 한참 단잠에 빠져있는 시간. 할머니가 부산스레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한다. 밭에서 직접 키운 상추, 파, 마늘이며 뒷산에서 틈틈이 캐어 말린 산나물 들이 보자기에 싸여 할머니 등에 얹힌다. 오늘은 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걸어서 몇 십 리를 오가던 시절. 그때는 외지에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살림살이 중 남는 것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옛날 장터의 시작이었다. 왕래하는 사람이 많은 장터는 5일마다 장이 열렸는데 이를 오일장이라고 부른다. 정감어린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장터 사진작가 이수길 씨. 이수길 제공 사진작가 이수길(51) 씨는 4년간 한국 시골 장터 163곳을 찾아다니며 오일장의 살아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 중 230여 점을 선별해 ‘장터 1 모정의 세월’이란 사진집을 탄생시켰다. “장터에는 대한민국의 정서가 아직 살아있어요. 장터를 찍는 작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문화에 관한 기록입니다.” 한결같이 이어지는 진한 삶의 모습 ‘장터’ 보통 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6시이나 7시쯤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탄다. 이수길 작가는 첫 번째 사람이 장터에 오는 순간부터 마음에 담기 위해 새벽 2, 3시면 장터에 나갔다. “사람들은 6시부터 장터에 모이기 시작해요. 장터 앞 정류장에는 어김없이 버스가 섭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꾸러미를 바리바리 챙긴 할머니들이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장터로 향해요. 전 그 순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두근두근하는 감동이 전해지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가 아침 8시가 되면 사진 촬영이 끝납니다. 그다음엔 뜨끈한 국밥을 먹으러 가요. 그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다음에는 할머니들 틈에 끼어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요. 노인네들은 모두 자식 자랑이 제일입니다. (웃음)” 이 작가가 장터 바닥에서 나눈 일상은 그의 가슴에 진한 잔상을 남겼다. “가슴 뭉클했던 때요? 장터에 있던 매 순간이 그랬어요. 가치를 찾았던 순간들입니다. 장터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할머니들인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분이 대다수에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부터 이고, 지고, 끌고 피난을 가셨던 분들이죠. 할머니들은 여전히 꾸러미를 이고, 지고 삶을 살아가고 계세요. 어려움을 견디며 희생하고 또 함께 정을 나눠요. 장터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한국의 잊혀가는 정서를 다시 느끼는 순간들이었어요.” 장터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정’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일장은 열린다. 그리고 오일장을 찾는 발걸음도 멈춘 적이 없다. “장터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에요. 5일장에 꼭 한번 가보세요. 정겹게 물건 값 깎고 흥정을 하죠. 할머니들은 괜찮다고 해도 덤으로 더 줍니다. 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손 맞잡고 어깨 쓸어주며 반가움을 나눠요. 그뿐인가요? 옆에 앉아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수다 떨고 한잔하고 큰소리도 쳐볼 수 있어요. 배속까지 뜨뜻해지는 국밥 맛은 참 구수하죠. 그 옆에선 생선 파는 어머니가 목청 높여 소리를 질러요. 그때 엿장수 아저씨와 아줌마가 등장해서 춤추면서 엿을 팔면 흥이 절로 납니다. 장터는 정말 살아있어요.” 뻥이요~ 쌀에 열을 가해 튀겨내는 것은 시골 장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뻥튀기 아저씨가 곧 기계가 뻥 하며 튀어 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간식거리를 마련하러 온 할머니들이 일제히 뻥 하는 소리에 대비해 귀를 손으로 막는다. 아이처럼 순수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멸치 풍년. 풍성하게 잔뜩 쌓아올린 멸치. 멸치를 넘칠 만큼 담아내 1되로 친다. 주인아주머니 인심이 넘친다. .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행락객 같던 4년간의 장터사진 작업 그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 다녀 본 데가 없다. 장터만 163곳. 잠자는 곳도 일정치 않았고 새벽부터 장터에 제일 먼저 나갔다. “장터를 찍는 일은 나를 희생시키는 일이고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당신 뭐야? 어디서 왔어?’ 하며 삿대질을 당하고 욕을 먹을 때면 속이 뜨끔뜨끔했어요. 상대방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그럴 때면 얼른 자리를 피했죠. 한 1년간을 무척 고생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한 일이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3년 정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사진 촬영도, 사람을 대하는 것도 아주 당당해졌죠.(웃음)” 작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쫄망쫄망 장터를 누비고 다녔어요. 저는 재롱 많지만, 말썽꾸러기 막내였는데 어머니는 저를 등에 업기도 하고 보자기로 싸 등짐처럼 지시고는 온 장터를 휘도셨죠. 어머니는 장이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서 달력에도 꼭 장서는 날이 적혀있었어요.” 시골에는 이제 장터가 없어져 가는 추세다. 농촌에 사람도 없는데다 대형 할인점이 생겨나면서 장터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면 단위의 시골 장터는 거의 없어졌고 이제 군 단위나 시 단위의 장터가 겨우 열리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마지막에 우리의 장터가 발전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전통적인 멋을 살려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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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수길 “삶의 모습 가득한 장터사진, 文化에 관한 기록이죠”
  • [ 기사입력   2012-12-13 11:03:00 ]

    파프리카 상자 모자를 쓴 할머니. 장터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 구미에 맞게 일본에서 건너온 파프리카를 준비했다. 채소를 다듬는 동안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자 파프리카 상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눌러 썼다. 이 주의 포토상 감이다!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새벽 4시. 모두가 한참 단잠에 빠져있는 시간. 할머니가 부산스레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한다. 밭에서 직접 키운 상추, 파, 마늘이며 뒷산에서 틈틈이 캐어 말린 산나물 들이 보자기에 싸여 할머니 등에 얹힌다. 오늘은 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걸어서 몇 십 리를 오가던 시절. 그때는 외지에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살림살이 중 남는 것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옛날 장터의 시작이었다. 왕래하는 사람이 많은 장터는 5일마다 장이 열렸는데 이를 오일장이라고 부른다.

     

          정감어린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장터 사진작가 이수길 씨. 이수길 제공

     

    사진작가 이수길(51) 씨는 4년간 한국 시골 장터 163곳을 찾아다니며 오일장의 살아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 중 230여 점을 선별해 ‘장터 1 모정의 세월’이란 사진집을 탄생시켰다.

     

    “장터에는 대한민국의 정서가 아직 살아있어요. 장터를 찍는 작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문화에 관한 기록입니다.”

     

    한결같이 이어지는 진한 삶의 모습 ‘장터’

     

    보통 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6시이나 7시쯤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탄다. 이수길 작가는 첫 번째 사람이 장터에 오는 순간부터 마음에 담기 위해 새벽 2, 3시면 장터에 나갔다.

     

    “사람들은 6시부터 장터에 모이기 시작해요. 장터 앞 정류장에는 어김없이 버스가 섭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꾸러미를 바리바리 챙긴 할머니들이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장터로 향해요. 전 그 순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두근두근하는 감동이 전해지죠.”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가 아침 8시가 되면 사진 촬영이 끝납니다. 그다음엔 뜨끈한 국밥을 먹으러 가요. 그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다음에는 할머니들 틈에 끼어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요. 노인네들은 모두 자식 자랑이 제일입니다. (웃음)”

     

    이 작가가 장터 바닥에서 나눈 일상은 그의 가슴에 진한 잔상을 남겼다.

     

    “가슴 뭉클했던 때요? 장터에 있던 매 순간이 그랬어요. 가치를 찾았던 순간들입니다. 장터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할머니들인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분이 대다수에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부터 이고, 지고, 끌고 피난을 가셨던 분들이죠. 할머니들은 여전히 꾸러미를 이고, 지고 삶을 살아가고 계세요. 어려움을 견디며 희생하고 또 함께 정을 나눠요. 장터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한국의 잊혀가는 정서를 다시 느끼는 순간들이었어요.”

     

    장터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정’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일장은 열린다. 그리고 오일장을 찾는 발걸음도 멈춘 적이 없다.
    “장터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에요. 5일장에 꼭 한번 가보세요. 정겹게 물건 값 깎고 흥정을 하죠. 할머니들은 괜찮다고 해도 덤으로 더 줍니다. 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손 맞잡고 어깨 쓸어주며 반가움을 나눠요. 그뿐인가요? 옆에 앉아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수다 떨고 한잔하고 큰소리도 쳐볼 수 있어요. 배속까지 뜨뜻해지는 국밥 맛은 참 구수하죠. 그 옆에선 생선 파는 어머니가 목청 높여 소리를 질러요. 그때 엿장수 아저씨와 아줌마가 등장해서 춤추면서 엿을 팔면 흥이 절로 납니다. 장터는 정말 살아있어요.”

     

    뻥이요~ 쌀에 열을 가해 튀겨내는 것은 시골 장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뻥튀기 아저씨가 곧 기계가 뻥 하며 튀어 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간식거리를 마련하러 온 할머니들이 일제히 뻥 하는 소리에 대비해 귀를 손으로 막는다. 아이처럼 순수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멸치 풍년. 풍성하게 잔뜩 쌓아올린 멸치. 멸치를 넘칠 만큼 담아내 1되로 친다. 주인아주머니 인심이 넘친다. . ⓒ장터사진작가 이수길

     

    행락객 같던 4년간의 장터사진 작업

     

    그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안 다녀 본 데가 없다. 장터만 163곳. 잠자는 곳도 일정치 않았고 새벽부터 장터에 제일 먼저 나갔다.

     

    “장터를 찍는 일은 나를 희생시키는 일이고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당신 뭐야? 어디서 왔어?’ 하며 삿대질을 당하고 욕을 먹을 때면 속이 뜨끔뜨끔했어요. 상대방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그럴 때면 얼른 자리를 피했죠. 한 1년간을 무척 고생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한 일이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3년 정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사진 촬영도, 사람을 대하는 것도 아주 당당해졌죠.(웃음)”

     

    작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쫄망쫄망 장터를 누비고 다녔어요. 저는 재롱 많지만, 말썽꾸러기 막내였는데 어머니는 저를 등에 업기도 하고 보자기로 싸 등짐처럼 지시고는 온 장터를 휘도셨죠. 어머니는 장이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서 달력에도 꼭 장서는 날이 적혀있었어요.”

     

    시골에는 이제 장터가 없어져 가는 추세다. 농촌에 사람도 없는데다 대형 할인점이 생겨나면서 장터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면 단위의 시골 장터는 거의 없어졌고 이제 군 단위나 시 단위의 장터가 겨우 열리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마지막에 우리의 장터가 발전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전통적인 멋을 살려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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