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상무위 인선 중공 멸망 재촉할 것 군사위 주석직까지 시진핑에게 물려준 후진타오의 ‘깨끗한 은퇴’는 그가 권력중추에서 철저히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이미지) 18기 1중전회(一中全會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선거 결과가 당초 예정된 시간을 50분가량 지나서 발표됐다. 이는 중공의 상무위원 명단 발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연된 경우에 해당한다. 과거 2002년 16차에서 장쩌민(江澤民)이 갑자기 군사위 주석직 연임을 발표하고 상무위원수를 7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등의 이유로 38분간 발표가 지체된 것이 가장 긴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이번 상무위원 인선을 둘러싼 막후의 잡음과 투쟁이 16차보다 더욱 격렬했음을 의미한다. 오전 11시 50분쯤 마침내 시진핑(習近平)을 포함해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의 상무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정법위를 관할하던 저우융캉(周永康)의 후임자는 없지만 장더장은 원저우(溫州) 열차사고 당시 차량을 매몰해 증거를 은폐하려 했던 전력이 있고, 장가오리는 톈진 대화재 당시 인명피해를 모른척 했고, 강경탄압을 동원한 바 있어 ‘치안유지’에 대해 저우융캉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들이다. 18차에서 가장 큰 이변은 리위안차오(李源潮)의 낙마다. 그는 본래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이하 후-원)가 총리감으로 염두에 둔 인물로 리커창과 함께 ‘쌍리(雙李)체제’를 운영을 원했으나 이번 상무위원 마저 낙선한 것이다. 그는 지난 5년간 중앙조직부 부장, 중앙서기처 서기로 있으면서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해왔고 또 보시라이에 대한 쌍규(雙規·공산당 당규를 심각하게 위반한 당원을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것)를 발표해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후원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했던 인물이다. 또 다른 의외의 인물을 꼽자면 왕양(汪洋)을 들 수 있다. 그는 대외적으로 후-원의 노선에 충실한 개혁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양과 리위안차오가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후-원이 이번 상무위원 인선에서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후진타오가 ‘깨끗이 은퇴’해 군사위 주석까지 시진핑에게 물려줬다는 것은 그가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영향력은 10년 전 은퇴했던 장쩌민보다도 오히려 더 미약할 것이다. 만약 그가 더 이상 ‘원로의 정치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장쩌민의 약속을 조건으로 했다면 이는 장쩌민에게 속은 것에 불과하다. 장쩌민은 이미 자신의 은퇴를 구실로 15차에 차오스(喬石)를 물러나게 했고, 16차에는 리루이환(李瑞環)을 물러나게 하는 기만술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후진타오는 지난 10년간 총서기 자리에 있으면서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은퇴 후에는 더욱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 10년간 그의 업적을 되돌아본다면 지나치게 소심하고 장쩌민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굽신거리는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상무위원 인선은 오히려 중공의 멸망을 더욱 재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내 개혁을 통해 공산당의 몰락을 완화하려던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장더장, 장가오리와 류윈산은 모두 장쩌민파 인사들로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자들이다. 이번 18차 인선은 중공이 나아질 것이란 민중들의 기대를 철저히 짓밟았기 때문에 중공 정권을 전복하거나 해체하려는 민중들의 결심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후-원은 ‘당을 지키기’위한 노력에서 장쩌민파에게 양보를 했겠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자신들의 기반을 붕괴시킬 뿐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통해 후-원 및 허궈창(賀國强)은 모두 장쩌민파의 미움을 샀고 최소한 혈채파(血債派-장쩌민 파 중에서 파룬궁 탄압에 적극 가담한 세력)이 가장 마음에 둔 후계자를 제거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장쩌민파의 반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치국에서 후-원의 인사는 약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두 사람의 전도마저 걱정스러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공 정권이 앞으로 5년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만약 중공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 전에 각 계파에서 당내의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며 후-원이 희생양이 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18차 상무위원 인선에서 중공이란 사악한 범죄집단은 개량(改良)을 가장한 ‘개혁(改革)’의 자세마저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본래 중공의 본질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던 많은 중국인들의 환상마저 철저히 파괴시켜 버렸다. 오직 중공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포기해야만 파룬궁 및 다른 종교단체,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끝낼 수 있으며, 중공의 죄악을 심판해야만 비로소 중국의 진정한 미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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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상무위 인선 중공 멸망 재촉할 것
  • [ 기사입력   2012-11-15 23:32:41 ]

    군사위 주석직까지 시진핑에게 물려준 후진타오의 ‘깨끗한 은퇴’는 그가 권력중추에서 철저히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이미지)

     

    18기 1중전회(一中全會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선거 결과가 당초 예정된 시간을 50분가량 지나서 발표됐다. 이는 중공의 상무위원 명단 발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연된 경우에 해당한다. 과거 2002년 16차에서 장쩌민(江澤民)이 갑자기 군사위 주석직 연임을 발표하고 상무위원수를 7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등의 이유로 38분간 발표가 지체된 것이 가장 긴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이번 상무위원 인선을 둘러싼 막후의 잡음과 투쟁이 16차보다 더욱 격렬했음을 의미한다.


    오전 11시 50분쯤 마침내 시진핑(習近平)을 포함해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의 상무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정법위를 관할하던 저우융캉(周永康)의 후임자는 없지만 장더장은 원저우(溫州) 열차사고 당시 차량을 매몰해 증거를 은폐하려 했던 전력이 있고, 장가오리는 톈진 대화재 당시 인명피해를 모른척 했고, 강경탄압을 동원한 바 있어 ‘치안유지’에 대해 저우융캉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들이다.


    18차에서 가장 큰 이변은 리위안차오(李源潮)의 낙마다. 그는 본래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이하 후-원)가 총리감으로 염두에 둔 인물로 리커창과 함께 ‘쌍리(雙李)체제’를 운영을 원했으나 이번 상무위원 마저 낙선한 것이다. 그는 지난 5년간 중앙조직부 부장, 중앙서기처 서기로 있으면서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해왔고 또 보시라이에 대한 쌍규(雙規·공산당 당규를 심각하게 위반한 당원을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것)를 발표해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후원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했던 인물이다.


    또 다른 의외의 인물을 꼽자면 왕양(汪洋)을 들 수 있다. 그는 대외적으로 후-원의 노선에 충실한 개혁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양과 리위안차오가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은 후-원이 이번 상무위원 인선에서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후진타오가 ‘깨끗이 은퇴’해 군사위 주석까지 시진핑에게 물려줬다는 것은 그가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영향력은 10년 전 은퇴했던 장쩌민보다도 오히려 더 미약할 것이다. 만약 그가 더 이상 ‘원로의 정치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장쩌민의 약속을 조건으로 했다면 이는 장쩌민에게 속은 것에 불과하다. 장쩌민은 이미 자신의 은퇴를 구실로 15차에 차오스(喬石)를 물러나게 했고, 16차에는 리루이환(李瑞環)을 물러나게 하는 기만술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후진타오는 지난 10년간 총서기 자리에 있으면서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은퇴 후에는 더욱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 10년간 그의 업적을 되돌아본다면 지나치게 소심하고 장쩌민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굽신거리는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상무위원 인선은 오히려 중공의 멸망을 더욱 재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내 개혁을 통해 공산당의 몰락을 완화하려던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장더장, 장가오리와 류윈산은 모두 장쩌민파 인사들로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자들이다. 이번 18차 인선은 중공이 나아질 것이란 민중들의 기대를 철저히 짓밟았기 때문에 중공 정권을 전복하거나 해체하려는 민중들의 결심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후-원은 ‘당을 지키기’위한 노력에서 장쩌민파에게 양보를 했겠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자신들의 기반을 붕괴시킬 뿐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통해 후-원 및 허궈창(賀國强)은 모두 장쩌민파의 미움을 샀고 최소한 혈채파(血債派-장쩌민 파 중에서 파룬궁 탄압에 적극 가담한 세력)이 가장 마음에 둔 후계자를 제거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장쩌민파의 반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치국에서 후-원의 인사는 약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두 사람의 전도마저 걱정스러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공 정권이 앞으로 5년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만약 중공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 전에 각 계파에서 당내의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며 후-원이 희생양이 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18차 상무위원 인선에서 중공이란 사악한 범죄집단은 개량(改良)을 가장한 ‘개혁(改革)’의 자세마저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본래 중공의 본질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던 많은 중국인들의 환상마저 철저히 파괴시켜 버렸다. 오직 중공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포기해야만 파룬궁 및 다른 종교단체,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끝낼 수 있으며, 중공의 죄악을 심판해야만 비로소 중국의 진정한 미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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