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원로들, 왜 잇따라 등장하나 최근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며 후진타오-원자바오-시진핑의 개혁을 지지하고 나선 중공 원로들. 상단 좌측부터 주룽지, 차오스, 시진핑, 예쉬안닝 하단 좌측이 리루이환과 우이, 우측은 장쩌민파 세력을 대표하는 저우융캉과 쩡칭훙.(대기원 DB) 올해 3월 보시라이(薄熙來)가 해임된 후 특히 9월 28일 보시라이가 쌍개(雙開 당적과 공직 박탈)처분을 받고 사법기관에 이송됐다는 발표가 있은 후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예쉬안닝(葉選寧 태자당의 영수), 리루이환(李瑞環 전 정협주석), 차오스(喬石 전 인민대 상무위원장), 우이(吳儀 전 부총리) 등 중공 원로와 중량급 인사들이 잇따라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혁적인 성향에 파룬궁 박해를 반대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대외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03년 3월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주룽지 전 총리가 근년에 잇따라 책을 출간하고 있다. 2009년 9월 ‘주룽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다’라는 책을 출간한데 이어 2011년 9월에는 ‘주룽지 담화실록’을 출간했다. 또한 대표적인 공청단파 인사이자 후난성 서기 저우창(周強)이 올해 9월 주룽지의 새 책을 크게 선전하고 나섰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시진핑이 ‘잠적’한 9월 12일 주룽지가 시진핑, 후진타오와 함께 원로 군인들의 묘지에 헌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는 대외적으로 이들 세 사람이 강한 연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평소 ‘태자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예젠잉(葉劍英 4인방 타도에 앞장섰던 군부 원로)의 아들 예쉬안닝이 국외 친중공매체인 홍콩 봉황위성TV를 장악했다고 전해졌다. 시진핑 가문과 줄곧 깊은 정분을 나눠온 예쉬안닝은 보시라이가 쌍개 처분을 받은 후 홍콩 봉황TV를 통해 시진핑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보시라이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9월 30일 봉황위성TV 군사프로그램 사회자이자 홍콩의 군사평론가 마딩성(馬鼎盛)이 블로그에 발표한 ‘반부패로 보시라이를 끌어내리고 반드시 정치적인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문장이 그 중요한 신호다. 10월 7일 오후에는 중공 원로 리루이환이과 전 국무원부총리 우이가 베이징시 서기 궈진룽(郭金龍)과 대리시장 왕안순(王安順)을 대동하고 함께 중국 남자농구팀 결승전에 나타났다. 리루이환은 이날 저녁에도 궈진룽(郭金龍)과 왕안순(王安順)을 대동하고 여자 농구팀 결승전에 나타났다. 10월 9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국의 사법개혁’ 백서를 발표하면서 대외적으로 정법위를 비판하면서 과거 줄곧 사법계통을 주관해왔던 차오스(喬石)의 사법개혁에 대한 사상을 체현했다. 여기서 이들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들은 모두 장쩌민(江澤民), 쩡칭훙(曾慶紅), 저우융캉(周永康) 등 장쩌민파와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르며 충칭의 ‘창홍타흑(唱紅打黑·홍가부르기와 범죄소탕)’ 방식에 동조하지 않고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를 지지한다. 예를 들면 주룽지가 책을 출간한 것은 바로 보시라이의 충칭(重慶)모델에 대한 반격으로 볼 수 있다. 또 장쩌민의 ‘상극’으로 불리는 리루이환은 재임 당시나 퇴임 후에도 장쩌민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일찍이 2009년에는 후진타오를 도와 장쩌민이 18대 인사배치를 주도하려는 의도를 저지한 바 있다. 아울러 줄곧 장쩌민의 미움을 받아왔던 차오스는 6월 후-원이 보시라이를 타격하는 중요한 시각에 ‘민주와 법제(法制)를 논함’이란 책을 출간해 암암리에 저우융캉을 비판하고 장쩌민파에게 경고를 보내는 한편 보시라이를 엄벌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예쉬안닝의 경우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곧장 당 중앙에 보시라이의 사직을 요구한 바 있다. 나중에 그는 또 시진핑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자신이 관리하던 3000명의 태자당 간부 인맥을 시진핑에게 넘겼다. 둘째, 이들은 모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정책을 반대한다. 이들은 1999년 7월 전국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미친 듯한 탄압이 시작된 후 많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았다. 특히 리루이환과 우이는 모두 장쩌민의 피비린내 나는 파룬궁 탄압정책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 바 있다. 셋째, 후진타오-원자바오-시진핑을 지지하고 정치개혁을 지지한다.최근 중공원로와 일부 중량급 인사들이 잇따라 출현한 것에는 당연히 의도가 담겨 있다. 이들이 외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후-원-시의 보시라이 처리를 확고히 지지하며 예전처럼 함부로 날뛰려는 쩡칭훙, 저우융캉 등 장쩌민파 잔당들에 대해 후-원-시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끝까지 함께 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지지는 장쩌민파의 붕괴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중공 고위층이 파룬궁 문제를 해결하도록 특히 생체장기적출 문제에서 돌파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환경을 추동하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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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원로들, 왜 잇따라 등장하나
  • [ 기사입력   2012-10-13 10:30:43 ]

    최근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며 후진타오-원자바오-시진핑의 개혁을 지지하고 나선 중공 원로들. 상단 좌측부터 주룽지, 차오스, 시진핑, 예쉬안닝 하단 좌측이 리루이환과 우이, 우측은 장쩌민파 세력을 대표하는 저우융캉과 쩡칭훙.(대기원 DB)

     

    올해 3월 보시라이(薄熙來)가 해임된 후 특히 9월 28일 보시라이가 쌍개(雙開 당적과 공직 박탈)처분을 받고 사법기관에 이송됐다는 발표가 있은 후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예쉬안닝(葉選寧 태자당의 영수), 리루이환(李瑞環 전 정협주석), 차오스(喬石 전 인민대 상무위원장), 우이(吳儀 전 부총리) 등 중공 원로와 중량급 인사들이 잇따라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혁적인 성향에 파룬궁 박해를 반대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대외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03년 3월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주룽지 전 총리가 근년에 잇따라 책을 출간하고 있다. 2009년 9월 ‘주룽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다’라는 책을 출간한데 이어 2011년 9월에는 ‘주룽지 담화실록’을 출간했다. 또한 대표적인 공청단파 인사이자 후난성 서기 저우창(周強)이 올해 9월 주룽지의 새 책을 크게 선전하고 나섰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시진핑이 ‘잠적’한 9월 12일 주룽지가 시진핑, 후진타오와 함께  원로 군인들의 묘지에 헌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는 대외적으로 이들 세 사람이 강한 연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평소 ‘태자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예젠잉(葉劍英 4인방 타도에 앞장섰던 군부 원로)의 아들 예쉬안닝이 국외 친중공매체인 홍콩 봉황위성TV를 장악했다고 전해졌다. 시진핑 가문과 줄곧 깊은 정분을 나눠온 예쉬안닝은 보시라이가 쌍개 처분을 받은 후 홍콩 봉황TV를 통해 시진핑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보시라이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9월 30일 봉황위성TV 군사프로그램 사회자이자 홍콩의 군사평론가 마딩성(馬鼎盛)이 블로그에 발표한 ‘반부패로 보시라이를 끌어내리고 반드시 정치적인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문장이 그 중요한 신호다.


    10월 7일 오후에는 중공 원로 리루이환이과 전 국무원부총리 우이가 베이징시 서기 궈진룽(郭金龍)과 대리시장 왕안순(王安順)을 대동하고 함께 중국 남자농구팀 결승전에 나타났다. 리루이환은 이날 저녁에도 궈진룽(郭金龍)과 왕안순(王安順)을 대동하고 여자 농구팀 결승전에 나타났다. 10월 9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국의 사법개혁’ 백서를 발표하면서 대외적으로 정법위를 비판하면서 과거 줄곧 사법계통을 주관해왔던 차오스(喬石)의 사법개혁에 대한 사상을 체현했다.


    여기서 이들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들은 모두 장쩌민(江澤民), 쩡칭훙(曾慶紅), 저우융캉(周永康) 등 장쩌민파와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르며 충칭의 ‘창홍타흑(唱紅打黑·홍가부르기와 범죄소탕)’ 방식에 동조하지 않고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를 지지한다. 예를 들면 주룽지가 책을 출간한 것은 바로 보시라이의 충칭(重慶)모델에 대한 반격으로 볼 수 있다. 또 장쩌민의 ‘상극’으로 불리는 리루이환은 재임 당시나 퇴임 후에도 장쩌민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일찍이 2009년에는 후진타오를 도와 장쩌민이 18대 인사배치를 주도하려는 의도를 저지한 바 있다.

    아울러 줄곧 장쩌민의 미움을 받아왔던 차오스는 6월 후-원이 보시라이를 타격하는 중요한 시각에 ‘민주와 법제(法制)를 논함’이란 책을 출간해 암암리에 저우융캉을 비판하고 장쩌민파에게 경고를 보내는 한편 보시라이를 엄벌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예쉬안닝의 경우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곧장 당 중앙에 보시라이의 사직을 요구한 바 있다. 나중에 그는 또 시진핑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자신이 관리하던 3000명의 태자당 간부 인맥을 시진핑에게 넘겼다.


    둘째, 이들은 모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정책을 반대한다. 이들은 1999년 7월 전국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미친 듯한 탄압이 시작된 후 많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았다. 특히 리루이환과 우이는 모두 장쩌민의 피비린내 나는 파룬궁 탄압정책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 바 있다.


    셋째, 후진타오-원자바오-시진핑을 지지하고 정치개혁을 지지한다.


    최근 중공원로와 일부 중량급 인사들이 잇따라 출현한 것에는 당연히 의도가 담겨 있다. 이들이 외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후-원-시의 보시라이 처리를 확고히 지지하며 예전처럼 함부로 날뛰려는 쩡칭훙, 저우융캉 등 장쩌민파 잔당들에 대해 후-원-시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끝까지 함께 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지지는 장쩌민파의 붕괴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동시에 중공 고위층이 파룬궁 문제를 해결하도록 특히 생체장기적출 문제에서 돌파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환경을 추동하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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