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보이콧의 역사 불매 운동과 보이콧은 역사적인 연원이 깊다. 사진은 애리조나주의 신이민법 통과에 항의하는 LA 하원의회의 경제 제재 조치 결의 장면. ⓒ Getty Images  최근 중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사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보이콧이 있었고, 다른 국가에서도 자국 내에서도 특정한 이유로 보이콧하는 경우가 많았다. 2년 전 LA시는 신이민법을 통과시킨 애리조나주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결하고 보이콧하기도 했다. 보이콧의 유래 보이콧은 영어로 boycott이라고 하며, 한 사회의 개인, 단체, 더 나아가서는 국가가 단체로 다른 개인과 단체를 배척하는 활동을 말한다. 보이콧의 유래는 영국인 토지 관리 찰스 보이콧(Charles Boycott)에서 비롯됐다. 그는 1880년대 영국에서 활동했으며, 집세가 밀린 아일랜드인을 난폭하게 쫓아내 일대에 악명을 떨쳤다. 보이콧의 난폭함이 극에 달하자 건물주를 비롯한 주민들마저 등을 돌렸고, 보이콧이 세입자를 쫓아내는 것을 돕지 않았다. 상인들은 보이콧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고, 우체부는 그에게 우편물과 소포를 전달하지 않았다. 보이콧은 집안 농장을 돌볼 사람마저 구할 수 없어서, 먼 곳에서 사람을 구해야 할 정도였다. 이후 보이콧은 거절과 배척의 대명사가 되었다.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서도 보이콧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 미국 서부 시대에도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인이 1767년 수입한 찻잎과 기타 물품에 높은 세금을 물리자, 식민지 정착인들은 연합해 영국산 제품 수입을 보이콧했다. 큰 손해를 입은 영국측은 세금을 점차 거두기 어려워졌다. 물론 찻잎에 대한 세금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의 계기가 됐다. 오늘날 보이콧은 대부분 노사 분쟁이나 소비자의 항의에서 비롯된다. 1급 보이콧은 특정 국가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고, 2급 보이콧은 적대 관계에 있는 단체와 국가 간에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적대 단체를 압박하는 것이다. 역대 유명 보이콧 사건 보이콧 성공 사례는 많다. 보이콧을 주도한 사람들은 관심을 끌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중국에서도 사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청(滿淸) 정부는 1882년부터 1905년 사이에 미국 상품 보이콧을 진행했고, 민국 정부는 1919년 5.4 기간에 역시 일본 제품 보이콧을 단행했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시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후 인종 차별 논란이 일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고, 이듬해 연방대법원은 몽고메리의 인종 분리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결하기에 이른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항의해 1980년 미국을 비롯한 60여개 국가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사례도 있다. 소련은 동맹국과 함께 4년 후 LA올림픽을 보이콧했다. 클린턴 정부가 엄격한 총기 규제를 실시했고, 총기 제조사인 콜트와 스미스&웨슨(Smith&Wesson)이 협조했다. 소비자들은 이 두 회사의 제품을 보이콧했다.국제 불매일(International Buy Nothing Day)은 블랙 프라이데이(감사절 지나고 첫 날) 다음날이다. 현대 인류의 과소비를 반성하는 캠페인으로 이 날 하루 아무런 소비 활동을 하지 않는다. 1960년대 미국에 유명한 포도파업(Delano Grape Strike)이 있었다. 알래스카의 필리핀계 포도농장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평화로운 캠페인은 호응을 얻어 최대 1400만 명이 동참해 포도 불매 운동에 나섰다. 이후 포도농장주들은 합의서에 서명하고 임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1980~1990년대 국제 사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보이콧에 나섰다. 상당수 국가와 기업이 남아프리카 백인 정권과의 경제 거래를 거부했고, 국제 스포츠 경기도 번번히 거절당했다. 음악 공연단체는 백인 전용 남아프리카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거부했다. 세계인의 압박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을 사라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의 일본 보이콧 현대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보이콧은 곧 일본 상품 배척을 뜻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도 있고, 과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 인도, 베트남, 필리핀과도 영토 분쟁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왜 이들 국가의 상품을 보이콧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까? 단순히 무역량이 많지 않아서일까? 이에 앞서 왜 중국인은 일본을 증오하면서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것일까? 이유는 일본 제품이 다른 국가 제품보다 월등한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로 말한다면 한 국가의 상품을 수입하고 구매하는 것은 이성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이 비싸고 품질이 나쁘다면 보이콧 여부와 상관없이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다. 만약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보이콧한다면 이는 이성적이지 않고 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는 행동이다.보통 불매 운동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경제 논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반드시 나누고 살아야 하고, 사회도 분담이 필요하고, 국가도 분담과 협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혹자는 국가 간의 협업과 분담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나라는 단독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중국과 일본 경제는 상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미국의소리(VOA)의 분석으로는 일본의 대 중국 투자로 일자리 1천만 개가 생겼고, 저가의 중국산 제품은 일본의 물가를 낮추고 가계 지출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선 중국인들은 일본 기업에게 중국을 떠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만약 일본이 중국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입게 될 타격은 상상하기 힘들다.당신이 지구에서 계속 살고자 한다면, 영원히 불매운동과 보이콧을 벌이기는 힘들다. 정치적인 목적이 해결되면 보이콧은 끝나기 마련이다. 중국 시위대가 일본차를 공격하면서 중국의 일본차 대리점 관계자는 속으로만 탄식하고 있다. 이들은 확실히 불공평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물론 우리 세상에는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 많다. 글/ 셰텐(謝田)美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대학교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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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보이콧의 역사
  • [ 기사입력   2012-10-09 20:02:12 ]

    불매 운동과 보이콧은 역사적인 연원이 깊다. 사진은 애리조나주의 신이민법 통과에 항의하는 LA 하원의회의 경제 제재 조치 결의 장면. ⓒ Getty Images

     

    최근 중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사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보이콧이 있었고, 다른 국가에서도 자국 내에서도 특정한 이유로 보이콧하는 경우가 많았다. 2년 전 LA시는 신이민법을 통과시킨 애리조나주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결하고 보이콧하기도 했다.

     

    보이콧의 유래

     

    보이콧은 영어로 boycott이라고 하며, 한 사회의 개인, 단체, 더 나아가서는 국가가 단체로 다른 개인과 단체를 배척하는 활동을 말한다. 보이콧의 유래는 영국인 토지 관리 찰스 보이콧(Charles Boycott)에서 비롯됐다. 그는 1880년대 영국에서 활동했으며, 집세가 밀린 아일랜드인을 난폭하게 쫓아내 일대에 악명을 떨쳤다. 보이콧의 난폭함이 극에 달하자 건물주를 비롯한 주민들마저 등을 돌렸고, 보이콧이 세입자를 쫓아내는 것을 돕지 않았다. 상인들은 보이콧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고, 우체부는 그에게 우편물과 소포를 전달하지 않았다. 보이콧은 집안 농장을 돌볼 사람마저 구할 수 없어서, 먼 곳에서 사람을 구해야 할 정도였다. 이후 보이콧은 거절과 배척의 대명사가 되었다.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서도 보이콧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


    미국 서부 시대에도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인이 1767년 수입한 찻잎과 기타 물품에 높은 세금을 물리자, 식민지 정착인들은 연합해 영국산 제품 수입을 보이콧했다. 큰 손해를 입은 영국측은 세금을 점차 거두기 어려워졌다. 물론 찻잎에 대한 세금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의 계기가 됐다.


    오늘날 보이콧은 대부분 노사 분쟁이나 소비자의 항의에서 비롯된다. 1급 보이콧은 특정 국가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이고, 2급 보이콧은 적대 관계에 있는 단체와 국가 간에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적대 단체를 압박하는 것이다.

     

    역대 유명 보이콧 사건

     

    보이콧 성공 사례는 많다. 보이콧을 주도한 사람들은 관심을 끌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중국에서도 사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청(滿淸) 정부는 1882년부터 1905년 사이에 미국 상품 보이콧을 진행했고, 민국 정부는 1919년 5.4 기간에 역시 일본 제품 보이콧을 단행했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시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후 인종 차별 논란이 일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고, 이듬해 연방대법원은 몽고메리의 인종 분리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결하기에 이른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항의해 1980년 미국을 비롯한 60여개 국가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사례도 있다. 소련은 동맹국과 함께 4년 후 LA올림픽을 보이콧했다.


    클린턴 정부가 엄격한 총기 규제를 실시했고, 총기 제조사인 콜트와 스미스&웨슨(Smith&Wesson)이 협조했다. 소비자들은 이 두 회사의 제품을 보이콧했다.


    국제 불매일(International Buy Nothing Day)은 블랙 프라이데이(감사절 지나고 첫 날) 다음날이다. 현대 인류의 과소비를 반성하는 캠페인으로 이 날 하루 아무런 소비 활동을 하지 않는다.


    1960년대 미국에 유명한 포도파업(Delano Grape Strike)이 있었다. 알래스카의 필리핀계 포도농장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평화로운 캠페인은 호응을 얻어 최대 1400만 명이 동참해 포도 불매 운동에 나섰다. 이후 포도농장주들은 합의서에 서명하고 임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1980~1990년대 국제 사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보이콧에 나섰다. 상당수 국가와 기업이 남아프리카 백인 정권과의 경제 거래를 거부했고, 국제 스포츠 경기도 번번히 거절당했다. 음악 공연단체는 백인 전용 남아프리카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거부했다. 세계인의 압박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을 사라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의 일본 보이콧

     

    현대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보이콧은 곧 일본 상품 배척을 뜻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도 있고, 과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 인도, 베트남, 필리핀과도 영토 분쟁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왜 이들 국가의 상품을 보이콧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까? 단순히 무역량이 많지 않아서일까?


    이에 앞서 왜 중국인은 일본을 증오하면서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것일까? 이유는 일본 제품이 다른 국가 제품보다 월등한 비교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로 말한다면 한 국가의 상품을 수입하고 구매하는 것은 이성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이 비싸고 품질이 나쁘다면 보이콧 여부와 상관없이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다. 만약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보이콧한다면 이는 이성적이지 않고 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는 행동이다.


    보통 불매 운동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경제 논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반드시 나누고 살아야 하고, 사회도 분담이 필요하고, 국가도 분담과 협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혹자는 국가 간의 협업과 분담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나라는 단독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중국과 일본 경제는 상호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미국의소리(VOA)의 분석으로는 일본의 대 중국 투자로 일자리 1천만 개가 생겼고, 저가의 중국산 제품은 일본의 물가를 낮추고 가계 지출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선 중국인들은 일본 기업에게 중국을 떠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만약 일본이 중국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입게 될 타격은 상상하기 힘들다.


    당신이 지구에서 계속 살고자 한다면, 영원히 불매운동과 보이콧을 벌이기는 힘들다. 정치적인 목적이 해결되면 보이콧은 끝나기 마련이다. 중국 시위대가 일본차를 공격하면서 중국의 일본차 대리점 관계자는 속으로만 탄식하고 있다. 이들은 확실히 불공평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물론 우리 세상에는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 많다.

     

     


     

     

    글/ 셰텐(謝田)
    美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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