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잔당 제거후 저우융캉 숙청?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의 모반에 가담한 이유는 파룬궁을 탄압한 범죄가 청산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인터넷 이미지) 9월 28일 보시라이(薄熙來)가 쌍개(雙開) 처분되고 사법기관에 이송된다는 발표가 있었던 후 보시라이 잔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보시라이는 시진핑(習近平)을 축출하고 자신이 중공 최고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이들 중에는 충칭(重慶)에서 자신에게 충성하던 각급 관리들은 물론이고, 당(黨)·정(政)·군(軍)의 고위관리, 많은 저명인사 및 국내외 여러 매체의 언론인 등이 포함된다.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당·정·군 주요인사 중에서 부성장(副省長)급 이상 고위 관원만 적어도 17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전 국가주석 류사오치(劉少奇)의 아들이자 총후근부(總後勤部) 정치위원인 류위안(劉源), 중공 원로 장전의 아들로 제2포병부대 정치위원 장하이야, 상장 장쭝쉰(張宗遜)의 아들(張震)로 선양 군·구 사령관인 장유샤(張又俠), 주더(朱德)의 손자로 충칭 경비구 사령관인 주허핑(朱和平), 전 통일전선부장 두칭린(杜靑林)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친(親) 보시라이계 유명인사들로는 쓰마난(司馬南), 우파톈(吳法天), 쿵칭둥(孔慶東), 장이우(張頤武), 메이닝화(梅寧華), 장훙량(張宏良) 등 소위 마오쩌둥 좌파 인사들과 팡저우쯔(方舟子), 팡빈싱(方濱興) 등이 포함된다. 또 국내외 매체 중에서는 대륙의 환구시보(環球時報), 포털 사이트 바이두와 국외 5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발행되는 수십 개 중문 매체와 600여 명의 매체 이사장, 사장, 총편집인 등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홍콩의 봉황위성TV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모반을 음모하는 과정에서 이상 언급한 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하며 최고위층의 지지가 없다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周永康)이야말로 보시라이 모반에 참여한 가장 큰 인물이다.저우융캉은 보시라이, 왕리쥔(王立軍)이 중앙고위인사들의 전화를 도청하도록 허락했으며 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수집해 고위층에 대한 비밀파일 특히 사생활과 경제범죄를 만들어 추후 필요에 대비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고위층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저우융캉과 중앙경위국 부국장(원자바오(溫家寶) 경호책임자) 리룬톈(李潤田)과 관계를 맺어 중앙 주요 책임자들의 행적과 사생활을 추적했다. 이외에도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투항한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에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왕리쥔의 탈출을 저지하라고 통보했다.또 구카이라이(谷開來)는 자신이 저우융캉, 보시라이 모반의 연락책이자 국외에서 보시라이의 세력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고 자백했다. 또한, 그녀는 저우융캉이 이번 모반의 주모자라고 자백하면서 “저우융캉은 상무위원 중에서 매우 나쁜 놈”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을 따르면 보시라이가 ‘쌍규(雙規, 공산당 당규를 심각하게 위반한 당원을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것)’에 걸렸을 당시 저우융캉을 “의리 없는 놈”이라고 심하게 욕하면서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반역 도주했다는 소식을 저우융캉이 먼저 알려줬다고 인정한 바 있다.분명한 것은 중공이 보시라이의 모반 사실을 공개하든 하지 않든 중공 고위층은 이미 그 내용을 분명히 알고 있고 미국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2월 시진핑의 미국 방문기간에 미국 정부는 시진핑에게 이런 정보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앞서 언급한 당·정·군의 고위인사, 저명인사 및 국내외 매체관계자들이 보시라이를 지지한 이유가 돈과 권력을 위해서였다면 남부러울 것 없는 저우융캉이 왜 보시라이와 함께 모반을 꾀했을까? 다른 사람은 안 되고 왜 유독 보시라이만 저우융캉의 마음에 들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들이 적극 파룬궁을 박해하고 파룬궁 수련자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 공동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로는 보시라이가 다롄, 랴오닝, 충칭에서 재임하던 기간과 저우융캉이 쓰촨, 공안부, 정법위서기로 재직하던 시기에 모두 장쩌민의 박해정책을 추종해 파룬궁 박해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끄집어내 팔아먹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이렇게 악랄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행동으로 장쩌민의 환심을 사 줄곧 출세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장쩌민과 함께 엮여 국외 여러 나라에서 ‘고문죄’ ‘집단학살죄’ 등의 혐의로 피소된 바 있다.그러나 장쩌민(江澤民)의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정의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높아지면서 또 파룬궁 수련자들의 끈질긴 추적조사가 진행되고 파룬궁 탄압을 지지하지 않은 후-원-시 등이 권력을 이양받은 후 숙청당할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저우융캉과 보시라이는 비밀리에 시진핑의 권력을 탈취할 음모를 꾸몄다. 이중 가장 중요한 일보는 보시라이를 정법위 서기로 만들어 정치국 상무위원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발생한 왕리쥔 사건으로 이 계획은 철저히 붕괴했다. 다시 말해 파룬궁을 박해한 범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모반사건이 발생했고 또 이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일부 소식통이 발표한 바로는 지난달 28일 소집된 정치국 회의에서 보시라이 잔당에 대해 ‘일망타진’ 여부를 토론에 부쳤으나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시라이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필연적으로 보시라이의 죄명이 ‘전복(顚覆)’이나 ‘권력탈취’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국은 더욱 엄중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공은 18대 이전에 이런 죄명은 사회 분열을 조장할 수 있고 또 순조로운 권력 이양에도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다.하지만 사실상 보시라이 잔당들에 대해 후-원-시는 일찍부터 계획적인 숙청작업에 돌입했다. 보시라이를 쌍규로 처리한 후부터 끊임없이 그의 잔당들을 압박해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잘못을 용서받을 기회를 주었다. 또 후진타오의 심복 링지화(令計劃)로 하여금 두칭린을 대신해 통일전선부장을 맡게 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일보 사장 메이닝화를 면직시켰고, 정치국에서 환구시보 편집장 후시진(胡錫進)의 면직을 거론했으며 충칭시 사법계통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고 보시라이를 추종했던 윈난성 상무부성장 뤄정푸(羅正富), 부성장 차오젠팡(曹建方)을 사직시켰다. 후-원-시는 비록 저우융캉에 대해서도 거듭 압박하긴 했지만, 그가 여러 차례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원인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 모반에 가담한 유일한 이유가 바로 자신이 권력을 잃은 후 숙청당하는 것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권력을 유지한 기회를 이용해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저우융캉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18대가 순조롭게 개최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남아있는 한 달이란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아서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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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잔당 제거후 저우융캉 숙청?
  • [ 기사입력   2012-10-06 20:52:01 ]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의 모반에 가담한 이유는 파룬궁을 탄압한 범죄가 청산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인터넷 이미지)

     

    9월 28일 보시라이(薄熙來)가 쌍개(雙開) 처분되고 사법기관에 이송된다는 발표가 있었던 후 보시라이 잔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보시라이는 시진핑(習近平)을 축출하고 자신이 중공 최고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이들 중에는 충칭(重慶)에서 자신에게 충성하던 각급 관리들은 물론이고, 당(黨)·정(政)·군(軍)의 고위관리, 많은 저명인사 및 국내외 여러 매체의 언론인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당·정·군 주요인사 중에서 부성장(副省長)급 이상 고위 관원만 적어도 17명에 이른다. 이 중에는 전 국가주석 류사오치(劉少奇)의 아들이자 총후근부(總後勤部) 정치위원인 류위안(劉源), 중공 원로 장전의 아들로 제2포병부대 정치위원 장하이야, 상장 장쭝쉰(張宗遜)의 아들(張震)로 선양 군·구 사령관인 장유샤(張又俠), 주더(朱德)의 손자로 충칭 경비구 사령관인 주허핑(朱和平), 전 통일전선부장 두칭린(杜靑林)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친(親) 보시라이계 유명인사들로는 쓰마난(司馬南), 우파톈(吳法天), 쿵칭둥(孔慶東), 장이우(張頤武), 메이닝화(梅寧華), 장훙량(張宏良) 등 소위 마오쩌둥 좌파 인사들과 팡저우쯔(方舟子), 팡빈싱(方濱興) 등이 포함된다. 또 국내외 매체 중에서는 대륙의 환구시보(環球時報), 포털 사이트 바이두와 국외 5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발행되는 수십 개 중문 매체와 600여 명의 매체 이사장, 사장, 총편집인 등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홍콩의 봉황위성TV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모반을 음모하는 과정에서 이상 언급한 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하며 최고위층의 지지가 없다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周永康)이야말로 보시라이 모반에 참여한 가장 큰 인물이다.


    저우융캉은 보시라이, 왕리쥔(王立軍)이 중앙고위인사들의 전화를 도청하도록 허락했으며 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수집해 고위층에 대한 비밀파일 특히 사생활과 경제범죄를 만들어 추후 필요에 대비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고위층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저우융캉과 중앙경위국 부국장(원자바오(溫家寶) 경호책임자) 리룬톈(李潤田)과 관계를 맺어 중앙 주요 책임자들의 행적과 사생활을 추적했다. 이외에도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투항한 후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에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왕리쥔의 탈출을 저지하라고 통보했다.


    또 구카이라이(谷開來)는 자신이 저우융캉, 보시라이 모반의 연락책이자 국외에서 보시라이의 세력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고 자백했다. 또한, 그녀는 저우융캉이 이번 모반의 주모자라고 자백하면서 “저우융캉은 상무위원 중에서 매우 나쁜 놈”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을 따르면 보시라이가 ‘쌍규(雙規, 공산당 당규를 심각하게 위반한 당원을 구금 상태에서 조사하는 것)’에 걸렸을 당시 저우융캉을 “의리 없는 놈”이라고 심하게 욕하면서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반역 도주했다는 소식을 저우융캉이 먼저 알려줬다고 인정한 바 있다.


    분명한 것은 중공이 보시라이의 모반 사실을 공개하든 하지 않든 중공 고위층은 이미 그 내용을 분명히 알고 있고 미국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2월 시진핑의 미국 방문기간에 미국 정부는 시진핑에게 이런 정보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앞서 언급한 당·정·군의 고위인사, 저명인사 및 국내외 매체관계자들이 보시라이를 지지한 이유가 돈과 권력을 위해서였다면 남부러울 것 없는 저우융캉이 왜 보시라이와 함께 모반을 꾀했을까? 다른 사람은 안 되고 왜 유독 보시라이만 저우융캉의 마음에 들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들이 적극 파룬궁을 박해하고 파룬궁 수련자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 공동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로는 보시라이가 다롄, 랴오닝, 충칭에서 재임하던 기간과 저우융캉이 쓰촨, 공안부, 정법위서기로 재직하던 시기에 모두 장쩌민의 박해정책을 추종해 파룬궁 박해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끄집어내 팔아먹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이렇게 악랄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행동으로 장쩌민의 환심을 사 줄곧 출세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장쩌민과 함께 엮여 국외 여러 나라에서 ‘고문죄’ ‘집단학살죄’ 등의 혐의로 피소된 바 있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의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정의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높아지면서 또 파룬궁 수련자들의 끈질긴 추적조사가 진행되고 파룬궁 탄압을 지지하지 않은 후-원-시 등이 권력을 이양받은 후 숙청당할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저우융캉과 보시라이는 비밀리에 시진핑의 권력을 탈취할 음모를 꾸몄다. 이중 가장 중요한 일보는 보시라이를 정법위 서기로 만들어 정치국 상무위원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발생한 왕리쥔 사건으로 이 계획은 철저히 붕괴했다. 다시 말해 파룬궁을 박해한 범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모반사건이 발생했고 또 이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소식통이 발표한 바로는 지난달 28일 소집된 정치국 회의에서 보시라이 잔당에 대해 ‘일망타진’ 여부를 토론에 부쳤으나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시라이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필연적으로 보시라이의 죄명이 ‘전복(顚覆)’이나 ‘권력탈취’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정국은 더욱 엄중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공은 18대 이전에 이런 죄명은 사회 분열을 조장할 수 있고 또 순조로운 권력 이양에도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보시라이 잔당들에 대해 후-원-시는 일찍부터 계획적인 숙청작업에 돌입했다. 보시라이를 쌍규로 처리한 후부터 끊임없이 그의 잔당들을 압박해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잘못을 용서받을 기회를 주었다. 또 후진타오의 심복 링지화(令計劃)로 하여금 두칭린을 대신해 통일전선부장을 맡게 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일보 사장 메이닝화를 면직시켰고, 정치국에서 환구시보 편집장 후시진(胡錫進)의 면직을 거론했으며 충칭시 사법계통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고 보시라이를 추종했던 윈난성 상무부성장 뤄정푸(羅正富), 부성장 차오젠팡(曹建方)을 사직시켰다.


    후-원-시는 비록 저우융캉에 대해서도 거듭 압박하긴 했지만, 그가 여러 차례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원인은 저우융캉이 보시라이 모반에 가담한 유일한 이유가 바로 자신이 권력을 잃은 후 숙청당하는 것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권력을 유지한 기회를 이용해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저우융캉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18대가 순조롭게 개최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남아있는 한 달이란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아서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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