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산, 보시라이 범죄사실 제보설 차기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중공 부총리 왕치산. 그는 중공 원로 야오이린의 사위로 태자당에 속하지만 비교적 계파 색채가 옅은 편이다.(사진=Getty Images) 18대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왕치산 부총리는 흔히 태자당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공 원로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 및 상무위원)의 사위로 비교적 계파 색채가 적은 중립적인 인물이다. 왕치산은 지난 2010년 단체로 충칭을 방문했을 때부터 이미 보시라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보시라이가 낙마한 후 그가 보시라이의 범죄 사실을 제보했다는 소문이 나돈 바 있다. 18대 전 베이다이허 회의 개최를 앞에 두고 현재 중공 각 파들은 상무위원 쟁탈을 위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다. 왕치산은 금융을 주관하는 부총리로 비교적 계파 색채가 옅어 부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어 차기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인물이다. 2007년 보시라이가 충칭에 부임한 후 현지 부동산 개발 및 다른 산업의 발전을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중난하이에 여러 차례 지원을 요구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치국 내부에서 충칭에 투자금을 빌려주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국유은행에서 대출하는 방식으로 충칭을 지원하는데 합의했다. 원자바오와 리커창은 전부터 보시라이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왕치산이 직접 충칭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왕치산 일행은 당시 바난구(巴南区), 충칭종합보세구(重庆综合保税区), HP노트북 공장 등을 시찰했다. 왕치산이 충칭은행을 떠나 창즈(长志) 자동차부품유한공사를 시찰할 때 “현재 기업이 직면한 최대문제는 바로 대출이며 공장은 임대한 것이라 저당 잡을 수 없고 설비를 저당으로 대출받기도 상당히 곤란하다. 기업의 기술개발자금 압력이 크고 아울러 유동자금 역시 아주 부족하다”는 발언을 했다. 또 “대출 어려움은 중소기업 공동의 문제다. 내가 금융계 간부들을 모두 데려왔으니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워싱턴의 중국문제전문가 스짱산은 “왕치산의 이 발언은 아주 교활하다. 그가 금융계통 간부들이 이 문제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 결과가 무엇이고 이후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속내를 말하자면 왕치산은 현장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고 분석했다.충칭서 보시라이와 거리 둔 왕치산당시 충칭시찰이 끝난 후 왕치산은 충칭 우저우(渝州)호텔에서 금융형세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서 보시라이는 왕치산을 줄곧 “치산 부총리”라고 말하는 등 친근한 태도를 보였다. 보시라이는 “충칭은 중앙의 요구에 따라 서부금융센터를 조성하고 개방의 고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산부총리가 각부 위원회와 은행 책임자 동지들을 데리고 충칭에 와서 지도하는 것은 충칭의 대외 개방과 무역, 금융업무 및 도시계획건설에 모두 격려하는 의미가 있고 요구를 제출하면 우리는 진지하게 이해하고 착실히 수행할 것이다”고 했다.하지만 왕치산은 “충칭시는 시위원회와 시정부의 지도하에 당중앙과 국무원의 정책방침을 진지하게 관철시키고 업무도 아주 잘해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충칭이 앞으로의 업무에서도 서부대개발회의를 계기로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라는 발언만 했다.이에 대해 해외평론가들은 “왕치산의 이 발언은 고의로 창홍타흑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충칭이 얻은 현저한 성과만을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비록 보시라이가 ‘치산 부총리’라고 부르며 환심을 사려 했지만 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보시라이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고 평가했다.왕치산, 보시라이 범죄 사실 제보설한편 베이징 관방에서는 보시라이의 여러 가지 죄명 중 특히 두 가지가 공산당의 금기를 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왕치산에게 “당신이 총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둘째는 “나는 두 개의 집단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여기서 첫 번째 발언은 보시라이가 왕치산에게 보시라이가 태자당 모임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발언의 출처는 황치판이 이번 충칭 사건 이후 자신의 공을 세우기 위해 보시라이의 죄행을 언급할 때 한 말이다. 하지만 왕치산이 보시라이의 범죄 사실을 제보했다는 소문은 아직 사실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식통들은 왕치산이 보시라이에 대한 사실을 제보했을 가능성이 아주 큰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낙마한 보시라이를 공격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18대 전에 자신을 드러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이 제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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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치산, 보시라이 범죄사실 제보설
    • [ 기사입력   2012-06-19 10:14:27 ]

      차기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중공 부총리 왕치산. 그는 중공 원로 야오이린의 사위로 태자당에 속하지만 비교적 계파 색채가 옅은 편이다.(사진=Getty Images)

       

      18대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왕치산 부총리는 흔히 태자당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공 원로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 및 상무위원)의 사위로 비교적 계파 색채가 적은 중립적인 인물이다. 왕치산은 지난 2010년 단체로 충칭을 방문했을 때부터 이미 보시라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보시라이가 낙마한 후 그가 보시라이의 범죄 사실을 제보했다는 소문이 나돈 바 있다.
       

      18대 전 베이다이허 회의 개최를 앞에 두고 현재 중공 각 파들은 상무위원 쟁탈을 위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다. 왕치산은 금융을 주관하는 부총리로 비교적 계파 색채가 옅어 부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어 차기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인물이다.

       

      2007년 보시라이가 충칭에 부임한 후 현지 부동산 개발 및 다른 산업의 발전을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고 중난하이에 여러 차례 지원을 요구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치국 내부에서 충칭에 투자금을 빌려주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국유은행에서 대출하는 방식으로 충칭을 지원하는데 합의했다. 원자바오와 리커창은 전부터 보시라이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왕치산이 직접 충칭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치산 일행은 당시 바난구(巴南区), 충칭종합보세구(重庆综合保税区), HP노트북 공장 등을 시찰했다.


      왕치산이 충칭은행을 떠나 창즈(长志) 자동차부품유한공사를 시찰할 때 “현재 기업이 직면한 최대문제는 바로 대출이며 공장은 임대한 것이라 저당 잡을 수 없고 설비를 저당으로 대출받기도 상당히 곤란하다. 기업의 기술개발자금 압력이 크고 아울러 유동자금 역시 아주 부족하다”는 발언을 했다. 또 “대출 어려움은 중소기업 공동의 문제다. 내가 금융계 간부들을 모두 데려왔으니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중국문제전문가 스짱산은 “왕치산의 이 발언은 아주 교활하다. 그가 금융계통 간부들이 이 문제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 결과가 무엇이고 이후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속내를 말하자면 왕치산은 현장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고 분석했다.


      충칭서 보시라이와 거리 둔 왕치산


      당시 충칭시찰이 끝난 후 왕치산은 충칭 우저우(渝州)호텔에서 금융형세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서 보시라이는 왕치산을 줄곧 “치산 부총리”라고 말하는 등 친근한 태도를 보였다. 보시라이는 “충칭은 중앙의 요구에 따라 서부금융센터를 조성하고 개방의 고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산부총리가 각부 위원회와 은행 책임자 동지들을 데리고 충칭에 와서 지도하는 것은 충칭의 대외 개방과 무역, 금융업무 및 도시계획건설에 모두 격려하는 의미가 있고 요구를 제출하면 우리는 진지하게 이해하고 착실히 수행할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왕치산은 “충칭시는 시위원회와 시정부의 지도하에 당중앙과 국무원의 정책방침을 진지하게 관철시키고 업무도 아주 잘해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충칭이 앞으로의 업무에서도 서부대개발회의를 계기로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라는 발언만 했다.


      이에 대해 해외평론가들은 “왕치산의 이 발언은 고의로 창홍타흑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충칭이 얻은 현저한 성과만을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비록 보시라이가 ‘치산 부총리’라고 부르며 환심을 사려 했지만 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보시라이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고 평가했다.


      왕치산, 보시라이 범죄 사실 제보설


      한편 베이징 관방에서는 보시라이의 여러 가지 죄명 중 특히 두 가지가 공산당의 금기를 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왕치산에게 “당신이 총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둘째는 “나는 두 개의 집단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발언은 보시라이가 왕치산에게 보시라이가 태자당 모임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발언의 출처는 황치판이 이번 충칭 사건 이후 자신의 공을 세우기 위해 보시라이의 죄행을 언급할 때 한 말이다. 


      하지만 왕치산이 보시라이의 범죄 사실을 제보했다는 소문은 아직 사실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식통들은 왕치산이 보시라이에 대한 사실을 제보했을 가능성이 아주 큰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낙마한 보시라이를 공격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18대 전에 자신을 드러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이 제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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