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군사위 주석 유임으로 군권 장악하나 (하) 후진타오는 2007년 베이징 지역의 군권을 다진 후 2009년부터 군권 확대에 나섰으나 2011년 이전까지는 군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사진=Getty Images) 충칭 ‘3.19 총격사건’ 발생 2007년 부총리 진입에 실패한 보시라이는 충칭에 부임한 후 ‘창홍타흑(공산당 찬양과 폭력배 소탕운동)’을 전개했다. 보시라이의 비리를 폭로해 온 언론인 장웨이핑은 “보시라이는 여러 차례 전국적으로 경찰을 초빙하고 최신식 장갑차를 구매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고급 오토바이를 수입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또 국빈호위대를 설립했으며 청두군구에 20여만 위안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2009년 3월 19일 충칭에서는 유명한 ‘3.19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관영 매체는 ‘충칭의 한 보초병이 19일 저녁 복면을 쓴 강도들의 총격에 살해당했고 자동소총 한 정을 빼앗겼지만 범인들은 도피했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보시라이가 이후 타흑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구실로 삼았다고 한다.2009년에는 유명한 리쥔 사건이 발생했다. 해외매체에 따르면 청두 부동산개발업자 리쥔은 청두군구 정치위원 장하이양(전 군사위 부주석 장전의 아들)에게 미움을 샀다. 결국 장하이양과 친구인 보시라이가 서로 짜고 리쥔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고, 그의 전 재산을 몰수했다. 나중에 리쥔은 미국으로 탈출해 보시라이와 장하이양의 비리를 폭로했다. 그는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장하이양에게 잘 보여 18대 상무위원 진입을 위한 군부 측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밝혔다.2009년에는 또 충칭시 무장경찰 총대 제1정치위원 직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시 류광레이가 더 이상 충칭시 무장경찰 제1정치위원, 제1서기를 맡지 않는 대신 왕리쥔이 제1정치위원 후임으로 왔다. 충칭 무장경찰총대의 병력은 약 1만 명가량 된다.2009년 청두군구의 인사이동2009년 청두군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 청두군구 정치위원 장하이양 상장이 이포부대 정치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신장군구 출신의 톈슈스가 새로 부임했다. 이 무렵 청두군구에는 또 총후근부 출신의 롼즈바이(阮志柏)가 신임 부사령관으로 부임했다. 2010년 광저우군구에서 류창인(刘长银)이 부정치위원 및 기율위원회 서기로 부임해 원래 기율위 서기로 있던 단루딩(段禄定)을 대신했다. 관방에서는 단루딩이 어디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전 청두군구 정치부 주임 우창더(吴昌德)는 2011년 7월 총정치부 부주임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신 총정치부에서 공청단파인 차이사오량(柴绍良)이 후임으로 왔다. APEC기간 청두군구의 군사훈련작년 11월 10일 후진타오가 미국 하와이서 열린 APEC정상회의에 참가하러 출국했을 때 청두군구에서는 국방동원위원회 제6차 전체 합동군사훈련이 거행됐다. 충칭일보를 인용 보도한 신화사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훈련에 참가한 인물은 보시라이 외에도 국방부장 량광례, 청두군구 사령관 리스밍, 정치위원 톈슈쓰(田修思), 부정치위원 류창인(刘长银), 참모장 아이후성(艾虎生), 티베트군구 사령관 양진산(杨金山) 등이다. 이날 저녁 양광례는 청두군구 제6차 국방동원위원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문예공연을 관람했으며 이런 행동은 보시라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후진타오 불안케 한 보시라이 행동보시라이는 2011년 베이징에서 장하이양이 있는 이포부대 강당에서 창홍을 주창했다. 보시라이가 직접 홍가 합창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들어간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후진타오를 압박하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아무도 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지 않았다. 반면 해방군 총 정치부 주임 리지나이(李继耐)와 전략미사일을 책임진 제2포병부대 사령관 징즈위안(靖志远)은 공연에 참석해 무대에 올라가 보시라이와 함께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는 노래를 불렀다. 리지나이와 징즈위안은 모두 현직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다.해외 중문매체에 따르면 작년 보시라이가 왕리쥔이 관할하는 공안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충칭 무기공장에서 대량의 소총과 탄약을 구매해 사병을 양성한 바 있으며 현재 이 무기들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보도했다. 2012년 1월 20일 오전 충칭일보 보도에 따르면 충칭경비구에서는 충칭시위원회에서 기증한 35개의 마오쩌둥 동상에 대한 성대한 제막식을 열었으며 이중 7개는 청두군구 기관에 기증했다. 서방매체에서 중공 내부에서 비군부 관리들이 군부와 이렇게 마음대로 연계하는 것은 고위층에서 아주 꺼리는 일이라는 논평을 했다.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보시라이는 또 과거 부친인 보이보가 근무했던 14군이 있는 쿤밍을 시찰했다. 외부에서는 이를 보시라이가 모반을 일으킬 수 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며 당 중앙을 위협한 것으로 보았다.2월 15일 무렵 미국의 한 매체에서 미국 관리의 입을 빌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18대 이후 시진핑을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보도했다.왕리쥔 사건 이후 청두군구 변화홍콩에 본부를 둔 한 인권단체에 따르면 왕리쥔이 2월 6일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2월 14일 충칭시 무장경찰 본부 제1정치위원에서 해임됐다. 2월 24일 후난성 레이양시를 지키던 무장경찰 기동대 제 126사단(약 1500명)이 2월 17일자로 충칭시로 이전 배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는 ‘중앙에서 소요나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할 경우 충칭무장경찰부대를 동원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우려해 급히 다른 부대를 배치한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관방의 주장이고 외부에서는 126사단을 배치한 진정한 이유는 충칭무장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충칭은 126사단뿐 아니라 다른 부대도 배치되어 약 1만 명이 넘는 외부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3월 29일 보시라이와 친밀한 관계에 있던 충칭경비구 사령관 주허핑(朱和平)이 청두군구 관련 부문에서 조사를 받았다.4월 15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중앙군사위에서 5개의 조사팀을 파견해 보시라이와 청두군구의 관계를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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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 군사위 주석 유임으로 군권 장악하나 (하)
    • [ 기사입력   2012-06-15 09:16:49 ]

      후진타오는 2007년 베이징 지역의 군권을 다진 후 2009년부터 군권 확대에 나섰으나 2011년 이전까지는 군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사진=Getty Images)

       

      충칭 ‘3.19 총격사건’ 발생

       

      2007년 부총리 진입에 실패한 보시라이는 충칭에 부임한 후 ‘창홍타흑(공산당 찬양과 폭력배 소탕운동)’을 전개했다. 보시라이의 비리를 폭로해 온 언론인 장웨이핑은 “보시라이는 여러 차례 전국적으로 경찰을 초빙하고 최신식 장갑차를 구매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고급 오토바이를 수입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또 국빈호위대를 설립했으며 청두군구에 20여만 위안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09년 3월 19일 충칭에서는 유명한 ‘3.19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관영 매체는 ‘충칭의 한 보초병이 19일 저녁 복면을 쓴 강도들의 총격에 살해당했고 자동소총 한 정을 빼앗겼지만 범인들은 도피했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보시라이가 이후 타흑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구실로 삼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유명한 리쥔 사건이 발생했다. 해외매체에 따르면 청두 부동산개발업자 리쥔은 청두군구 정치위원 장하이양(전 군사위 부주석 장전의 아들)에게 미움을 샀다. 결국 장하이양과 친구인 보시라이가 서로 짜고 리쥔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고, 그의 전 재산을 몰수했다. 나중에 리쥔은 미국으로 탈출해 보시라이와 장하이양의 비리를 폭로했다. 그는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장하이양에게 잘 보여 18대 상무위원 진입을 위한 군부 측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또 충칭시 무장경찰 총대 제1정치위원 직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시 류광레이가 더 이상 충칭시 무장경찰 제1정치위원, 제1서기를 맡지 않는 대신 왕리쥔이 제1정치위원 후임으로 왔다. 충칭 무장경찰총대의 병력은 약 1만 명가량 된다.


      2009년 청두군구의 인사이동


      2009년 청두군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 청두군구 정치위원 장하이양 상장이 이포부대 정치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신장군구 출신의 톈슈스가 새로 부임했다.


      이 무렵 청두군구에는 또 총후근부 출신의 롼즈바이(阮志柏)가 신임 부사령관으로 부임했다. 2010년 광저우군구에서 류창인(刘长银)이 부정치위원 및 기율위원회 서기로 부임해 원래 기율위 서기로 있던 단루딩(段禄定)을 대신했다. 관방에서는 단루딩이 어디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전 청두군구 정치부 주임 우창더(吴昌德)는 2011년 7월 총정치부 부주임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신 총정치부에서 공청단파인 차이사오량(柴绍良)이 후임으로 왔다.


      APEC기간 청두군구의 군사훈련


      작년 11월 10일 후진타오가 미국 하와이서 열린 APEC정상회의에 참가하러 출국했을 때 청두군구에서는 국방동원위원회 제6차 전체 합동군사훈련이 거행됐다.


      충칭일보를 인용 보도한 신화사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훈련에 참가한 인물은 보시라이 외에도 국방부장 량광례, 청두군구 사령관 리스밍, 정치위원 톈슈쓰(田修思), 부정치위원 류창인(刘长银), 참모장 아이후성(艾虎生), 티베트군구 사령관 양진산(杨金山) 등이다.
       

      이날 저녁 양광례는 청두군구 제6차 국방동원위원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문예공연을 관람했으며 이런 행동은 보시라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후진타오 불안케 한 보시라이 행동


      보시라이는 2011년 베이징에서 장하이양이 있는 이포부대 강당에서 창홍을 주창했다. 보시라이가 직접 홍가 합창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들어간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후진타오를 압박하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아무도 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지 않았다.


      반면 해방군 총 정치부 주임 리지나이(李继耐)와 전략미사일을 책임진 제2포병부대 사령관 징즈위안(靖志远)은 공연에 참석해 무대에 올라가 보시라이와 함께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는 노래를 불렀다. 리지나이와 징즈위안은 모두 현직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다.


      해외 중문매체에 따르면 작년 보시라이가 왕리쥔이 관할하는 공안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충칭 무기공장에서 대량의 소총과 탄약을 구매해 사병을 양성한 바 있으며 현재 이 무기들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보도했다.


      2012년 1월 20일 오전 충칭일보 보도에 따르면 충칭경비구에서는 충칭시위원회에서 기증한 35개의 마오쩌둥 동상에 대한 성대한 제막식을 열었으며 이중 7개는 청두군구 기관에 기증했다. 서방매체에서 중공 내부에서 비군부 관리들이 군부와 이렇게 마음대로 연계하는 것은 고위층에서 아주 꺼리는 일이라는 논평을 했다.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보시라이는 또 과거 부친인 보이보가 근무했던 14군이 있는 쿤밍을 시찰했다. 외부에서는 이를 보시라이가 모반을 일으킬 수 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며 당 중앙을 위협한 것으로 보았다.


      2월 15일 무렵 미국의 한 매체에서 미국 관리의 입을 빌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18대 이후 시진핑을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보도했다.


      왕리쥔 사건 이후 청두군구 변화


      홍콩에 본부를 둔 한 인권단체에 따르면 왕리쥔이 2월 6일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후 2월 14일 충칭시 무장경찰 본부 제1정치위원에서 해임됐다.


      2월 24일 후난성 레이양시를 지키던 무장경찰 기동대 제 126사단(약 1500명)이 2월 17일자로 충칭시로 이전 배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는 ‘중앙에서 소요나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할 경우 충칭무장경찰부대를 동원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우려해 급히 다른 부대를 배치한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관방의 주장이고 외부에서는 126사단을 배치한 진정한 이유는 충칭무장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충칭은 126사단뿐 아니라 다른 부대도 배치되어 약 1만 명이 넘는 외부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3월 29일 보시라이와 친밀한 관계에 있던 충칭경비구 사령관 주허핑(朱和平)이 청두군구 관련 부문에서 조사를 받았다.


      4월 15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중앙군사위에서 5개의 조사팀을 파견해 보시라이와 청두군구의 관계를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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