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민 박해 주도세력…혈채파(血債派)는 누구인가(상) 혈채파란 명칭은 수없이 누적된 피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대기원 DB) 3부류① 정권을 찬탈한 중공을 대표하는 세력② 파룬궁 박해를 직접 지시한 장쩌민派③ 역사적으로 인민들을 박해한 주도자 혈채파(血債派)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중국인민을 박해한 일부분 사람들에 대한 총칭이다. 이들은 중국인민에게 피의 빚(血債)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혈채파로 부른다. 혈채파는 대체적으로 3부류로 나눠져첫 번째 부류는 전체적으로 중공을 대표로 하는 ‘중공 혈채파’다. 바로 ‘9평 공산당’에서 소개한 것처럼 중공은 1949년 정권을 찬탈한 이래 각종 방식으로 8000만 명의 무고한 중국인들을 학살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사상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사회를 철저히 파괴했다. 5000년 찬란한 문명역사를 지닌 중국 사회의 도덕이 붕괴되고 사회기풍이 날로 추락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중공은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모든 재난과 고통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두 번째 부류는 파룬궁 박해를 지시한 전 주석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장쩌민계 혈채파’다. 1999년 7월 당시 장쩌민 파는 폭력과 투쟁의 역사인 공산당 문화에 반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진․선․인을 선양하던 1억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해 전면적인 탄압은 오늘날까지 13년 간 지속되고 있다. ‘장쩌민 계 혈채파’는 중공 내부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부패한 부류다.이들은 주로 ‘610’ 사무실(현재는 ‘치안유지사무실’ 로 명칭 변경)과 정법위를 핵심으로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국가안전부, 국가보안계통을 장악했다. 중앙의 최고위층에서부터 가장 낮은 하부조직까지 모두 장쩌민 파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방대한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양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폭력적이며 상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집행한다. 각 성시(省市), 구(區), 현(縣)의 노교소(교양원), 감옥, 세뇌반(마약중독치료소) 등 하부에서 실무를 집행하는 하급직도 권력을 등에 업고 종종 멋대로 악행을 저지른다.이미 폭로된 내용을 보면 현재까지 적어도 3500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로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으며, 실종되거나 집을 나와 떠도는 인원은 너무 많아 통계조차 낼 수 없다. 또한 아직까지 많은 비리들이 공개되지 않았다. 세 번째 부류는 다른 중국 인민들을 박해한 혈채파다. 그들은 문화혁명에서부터 현재의 강제철거, 치안유지, 민중탄압 등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부를 위해 인민들을 탄압했다. 이 부분에 대해 여기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중국인들을 박해할 수 있었던 이유혈채파는 중국 사회에서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거든,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지금이든 혈채파는 여전히 악행을 멈추고 있지 않으며, 지금껏 중국인들에 대한 폭행을 계속하고 있다. 혈채파가 이렇게 모든 법을 무시하며, 악행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중공 내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혈채파의 가장 큰 자본 - 권력 중국에서 혈채파는 권력을 장악해왔다. 장쩌민이 주석이던 시절, 혈채파는 중공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전국에서 파룬궁을 박해했다. 이들이 파룬궁 탄압에 사용한 비용만 해도 국가 전체 예산의 4분의 1에서 4분의 3에 달한다. 이는 한 차례 전쟁을 치르는 비용과 비슷하다. 장쩌민이 식물인간이 된 후에는 저우융캉(상무위원 겸 정법위 서기)이 장쩌민의 뒤를 이어 혈채파의 대리인이 됐다. 저우융캉은 9명의 상무위원 중 한 명일 뿐이지만 그가 장악한 권력은 막강했다. 이는 정법위가 ‘제2의 중앙’으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저우융캉은 그동안 후진타오-원자바오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고 멋대로 모반을 꾀했으며 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세력을 만들어왔다. 저우융캉은 특히 보시라이와 결탁해 차기 총서기로 내정된 시진핑을 몰아내고자 했다. 그가 이렇게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에 몰린 지금까지도 저우융캉은 자신의 남은 세력을 이용, 도처에서 정국을 혼란시키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벌어진 왕리쥔 사건, 보시라이 사건은 물론이고 천광청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도 저우융캉이 개입되지 않은 사건이 없었다. 비록 저우융캉의 권력이 과거의 장쩌민만은 못하지만 정치, 선전문화(리창춘이 주도), 군사(몇 100만의 무장경찰병력) 등 3개 영역에서 그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국가기구 총동원해 박해에 이용장쩌민은 독단적으로 파룬궁 탄압을 추진했지만 국가기구까지 동원하면서 중공 당정 관리 및 정권의 운명을 한데로 묶어놓았다. 중공이 지난 60년간 자행해온 탄압의 역사로 수많은 중국인민들이 희생됐으며,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에 왔다. 무자비한 탄압의 대가는 중공의 멸망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막고자 장쩌민과 중공은 서로 결탁해 중공 내부 관료들을 파룬궁 박해에 끌어들였으며 이후 연대책임으로 위협해 전국적으로 자행된 파룬궁 박해가 중단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저우융캉(이하 저우)은 더욱 악랄했다. 그는 최고 지도자가 아님에도 수많은 악행을 자행해 왔다. 악행을 유지하기 위해 저우는 결국 후진타오-원자바오(이하 후-원)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저우는 후-원에게 자신을 반대하면 중공이 무너질 수도 있다며 압박․회유했다. 보시라이 사건에서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반 사건에 깊이 연루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후진타오의 이런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중국인의 성격·약점 이용해 탄압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성격은 나약함이다. 혈채파는 자신의 뜻을 굽혀 안전을 구하고, 잘 참으며, 선량한 중국인들의 성격을 이용했다. 중국인들은 설사 불공정하거나 박해를 받을지라도 나서서 반항하거나 심지어 반항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좋은 사람은 함부로 하기 쉬운 사람으로 여긴다. 또한, 강권(强勸)과 폭정으로 중국인들로 하여금 공포 중에서 오직 굽실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60년에 걸친 중공의 폭정이 지속되고 억울한 사건이 도처에 가득하게 된 근본 원인의 하나다. 그 대표적인 예가 6·4 학살이 발생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누구도(피해자 가족을 포함) 이 학살에 대해 용감하게 나서서 발언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스캔들로 악행 덮어 감추는 수법 혈채파는 이렇게 제멋대로 악행을 저지르고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들 대부분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을 통해 자본을 끌어 모았고, 그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장쩌민을 포함한 혈채파들은 중공 관방의 질서를 무너뜨릴지라도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점차 불가능해지고 진상이 천하에 널리 드러나게 되자 시간을 끌면서 서서히 형세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즉, 다른 스캔들로 혈채파의 악행을 덮어 인민들이 망각하게 하려하며, 자신들의 악행을 없었던 일로 하려는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중공의 무신론과 세뇌교육이 혈채파가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덮어보려는 꼼수를 부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악행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그러한 진상은 곧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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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민 박해 주도세력…혈채파(血債派)는 누구인가(상)
    • [ 기사입력   2012-06-11 23:58:00 ]

      혈채파란 명칭은 수없이 누적된 피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대기원 DB)

       

      3부류
      ① 정권을 찬탈한 중공을 대표하는 세력
      ② 파룬궁 박해를 직접 지시한 장쩌민派
      ③ 역사적으로 인민들을 박해한 주도자

       

      혈채파(血債派)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중국인민을 박해한 일부분 사람들에 대한 총칭이다. 이들은 중국인민에게 피의 빚(血債)을 지고 있기 때문에 혈채파로 부른다.
       

      혈채파는 대체적으로 3부류로 나눠져


      첫 번째 부류는 전체적으로 중공을 대표로 하는 ‘중공 혈채파’다. 바로 ‘9평 공산당’에서 소개한 것처럼 중공은 1949년 정권을 찬탈한 이래 각종 방식으로 8000만 명의 무고한 중국인들을 학살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사상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사회를 철저히 파괴했다. 5000년 찬란한 문명역사를 지닌 중국 사회의 도덕이 붕괴되고 사회기풍이 날로 추락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중공은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모든 재난과 고통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파룬궁 박해를 지시한 전 주석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장쩌민계 혈채파’다.
       

      1999년 7월 당시 장쩌민 파는 폭력과 투쟁의 역사인 공산당 문화에 반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진․선․인을 선양하던 1억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해 전면적인 탄압은 오늘날까지 13년 간 지속되고 있다. ‘장쩌민 계 혈채파’는 중공 내부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부패한 부류다.


      이들은 주로 ‘610’ 사무실(현재는 ‘치안유지사무실’ 로 명칭 변경)과 정법위를 핵심으로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국가안전부, 국가보안계통을 장악했다. 중앙의 최고위층에서부터 가장 낮은 하부조직까지 모두 장쩌민 파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방대한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인격과 양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폭력적이며 상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집행한다. 각 성시(省市), 구(區), 현(縣)의 노교소(교양원), 감옥, 세뇌반(마약중독치료소) 등 하부에서 실무를 집행하는 하급직도 권력을 등에 업고 종종 멋대로 악행을 저지른다.


      이미 폭로된 내용을 보면 현재까지 적어도 3500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로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으며, 실종되거나 집을 나와 떠도는 인원은 너무 많아 통계조차 낼 수  없다. 또한 아직까지 많은 비리들이 공개되지 않았다.


      세 번째 부류는 다른 중국 인민들을 박해한 혈채파다. 그들은 문화혁명에서부터 현재의 강제철거, 치안유지, 민중탄압 등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부를 위해 인민들을 탄압했다. 이 부분에 대해 여기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중국인들을 박해할 수 있었던 이유


      혈채파는 중국 사회에서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거든,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지금이든 혈채파는 여전히 악행을 멈추고 있지 않으며, 지금껏 중국인들에 대한 폭행을 계속하고 있다. 혈채파가 이렇게 모든 법을 무시하며, 악행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중공 내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혈채파의 가장 큰 자본 - 권력


      중국에서 혈채파는 권력을 장악해왔다. 장쩌민이 주석이던 시절, 혈채파는 중공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전국에서 파룬궁을 박해했다. 이들이 파룬궁 탄압에 사용한 비용만 해도 국가 전체 예산의 4분의 1에서 4분의 3에 달한다. 이는 한 차례 전쟁을 치르는 비용과 비슷하다. 장쩌민이 식물인간이 된 후에는 저우융캉(상무위원 겸 정법위 서기)이 장쩌민의 뒤를 이어 혈채파의 대리인이 됐다. 저우융캉은 9명의 상무위원 중 한 명일 뿐이지만 그가 장악한 권력은 막강했다. 이는 정법위가 ‘제2의 중앙’으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저우융캉은 그동안 후진타오-원자바오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고 멋대로 모반을 꾀했으며 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세력을 만들어왔다. 저우융캉은 특히 보시라이와 결탁해 차기 총서기로 내정된 시진핑을 몰아내고자 했다. 그가 이렇게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에 몰린 지금까지도 저우융캉은 자신의 남은 세력을 이용, 도처에서 정국을 혼란시키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벌어진 왕리쥔 사건, 보시라이 사건은 물론이고 천광청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도 저우융캉이 개입되지 않은 사건이 없었다.


      비록 저우융캉의 권력이 과거의 장쩌민만은 못하지만 정치, 선전문화(리창춘이 주도), 군사(몇 100만의 무장경찰병력) 등 3개 영역에서 그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가기구 총동원해 박해에 이용


      장쩌민은 독단적으로 파룬궁 탄압을 추진했지만 국가기구까지 동원하면서 중공 당정 관리 및 정권의 운명을 한데로 묶어놓았다. 중공이 지난 60년간 자행해온 탄압의 역사로 수많은 중국인민들이 희생됐으며,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에 왔다. 무자비한 탄압의 대가는 중공의 멸망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막고자 장쩌민과 중공은 서로 결탁해 중공 내부 관료들을 파룬궁 박해에 끌어들였으며 이후 연대책임으로 위협해 전국적으로 자행된 파룬궁 박해가 중단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저우융캉(이하 저우)은 더욱 악랄했다. 그는 최고 지도자가 아님에도 수많은 악행을 자행해 왔다. 악행을 유지하기 위해 저우는 결국 후진타오-원자바오(이하 후-원)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저우는 후-원에게 자신을 반대하면 중공이 무너질 수도 있다며 압박․회유했다. 보시라이 사건에서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반 사건에 깊이 연루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후진타오의 이런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성격·약점 이용해 탄압


      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성격은 나약함이다. 혈채파는 자신의 뜻을 굽혀 안전을 구하고, 잘 참으며, 선량한 중국인들의 성격을 이용했다. 중국인들은 설사 불공정하거나 박해를 받을지라도 나서서 반항하거나 심지어 반항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좋은 사람은 함부로 하기 쉬운 사람으로 여긴다.

      또한, 강권(强勸)과 폭정으로 중국인들로 하여금 공포 중에서 오직 굽실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60년에 걸친 중공의 폭정이 지속되고 억울한 사건이 도처에 가득하게 된 근본 원인의 하나다. 그 대표적인 예가 6·4 학살이 발생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누구도(피해자 가족을 포함) 이 학살에 대해 용감하게 나서서 발언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스캔들로 악행 덮어 감추는 수법

       

      혈채파는 이렇게 제멋대로 악행을 저지르고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저질렀음에도 이들 대부분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을 통해 자본을 끌어 모았고, 그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장쩌민을 포함한 혈채파들은 중공 관방의 질서를 무너뜨릴지라도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점차 불가능해지고 진상이 천하에 널리 드러나게 되자 시간을 끌면서 서서히 형세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즉, 다른 스캔들로 혈채파의 악행을 덮어 인민들이 망각하게 하려하며, 자신들의 악행을 없었던 일로 하려는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중공의 무신론과 세뇌교육이 혈채파가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덮어보려는 꼼수를 부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악행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그러한 진상은 곧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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