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쯔이·야오밍… 중공 홍보 인사 줄줄이 몰락 최근, 세계적인 영화 배우 장쯔이가 보시라이와 성스캔들에 휩싸였다. 그 동안 장쯔이는 줄곧 국내외에서 중공에 공공부문 홍보를 해왔지만 이번 사건에서 비참하게 버림받았다. (사진=AFP) 최근 영화배우 장쯔이가 前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장쯔이는 성접대 스캔들을 전면 부인했고, 이번 스캔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스캔들은 중문 인터넷 뉴스사이트 ‘보쉰(boxun.com)’과 대만의 ‘애플데일리’ 등이 처음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중국 대륙의 당 기관지도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내용으로 보도하며 주요 이슈로 다뤘다. 또 해외의 친 중공 매체는 장쯔이의 이번 법적대응은 ‘우둔한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장쯔이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중공으로부터 외면 받게 됐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중공을 위해 적극 활동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겪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월 28일 해외 중문 인터넷 뉴스사이트 ‘보쉰’은 “장쯔이와 보시라이가 성접대 관계를 맺었고 이 사실로 조사팀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출국이 금지됐다”고 전했다. 또한 “장쯔이는 보시라이 및 다른 고위층과 성접대를 통해 적어도 7억 위안(약 1300억 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보시라이의 측근인 쉬밍(徐明) 다롄스더 그룹 회장(41)이 기율 위반 혐의로 체포된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장쯔이, 중공 가입 이후 숱한 구설수 5월 30일, 장쯔이는 홍콩 하이커우(海口)에서 열린 ‘제12회 중국영화 미디어 어워드’ 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 스캔들을 전면 부정하며 공개적인 대응에 나섰다. 장쯔이는 홍콩 공항에서 ‘동방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에서 최고의 변호사팀을 선임해 보쉰의 소식을 전재한 홍콩 ‘빈과일보’ 에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쯔이는 또한 “쉬밍(徐明)을 모를 뿐만 아니라 보시라이와도 만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이징에 있는 친 중공 중국어 뉴스 사이트인 ‘둬웨이신문망(多維新聞網)’은 장쯔이의 말을 반박하며 “그녀는 쉬밍과 은밀하게 거래했고, 쉬밍의 개인 전용기도 마음대로 사용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하지만 둬웨이신문망은 장쯔이와 쉬밍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국내외 중공 당 기관지와 친 중공 매체들은 이 소식을 빠르게 전파했다. 또한 대륙 매체는 보시라이와 쉬밍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며 고위층이라고만 보도했다.타이완 친 중공 매체인 중국시보와 왕보는 보시라이 사건이 터진 이후에 일관되게 보시라이를 지지해왔다. 중국시보는 이번 보도에서 헤드라인을 “세계적인 영화배우 ‘장쯔이 매춘’ ”으로 뽑았다. 또한 보쉰의 보도를 인용해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이번 스캔들을 부인했으며 홍콩 빈과일보에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번 스캔들을 호주 뉴스, 미국의 폭스뉴스, 영국 데일리매일 등 세계적인 매체에서 보도해 전 세계에 퍼지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해외 일부 매체는 “그녀가 매춘을 부인했다”고 전하며 그녀의 법적 대응은 슬기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보도했다.이밖에, 장쩌민 파 계열의 해외 중문매체 ‘환구망’에서는 장쯔이가 출국 금지 당했다고 보도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 사이트는 6월 1일 이번 성스캔들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면서 “ 장쯔이는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여러 명의 고위 정치인 및 재력가들에 대한 성접대를 통해 1억 달러의 대가를 받았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보시라이-저우융캉의 모반’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장쯔이의 ‘성접대 스캔들’로 덮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장쯔이는 지금까지 중공을 지지하며 국내외에서 중공을 선전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을 통해 중공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됐으며, 보시라이-저우융캉의 모반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덮는데 사용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추문에 휩싸인 장쯔이, 내리막 길로2009년 말까지 장쯔이는 크고 작은 경력을 쌓으며 전성기를 누려왔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숱한 고생과 노력을 겪으면서 유명 영화배우로 우뚝 섰다. 그녀는 ‘와호장룡(臥虎藏龍)’에 출연,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돼 유명세를 타면서 점점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영어도 능통해 상류사회 파티에 자주 참석해 유명인사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자연스레 국제적인 배우로 성장하게 됐다. 하지만 2009년 말부터 장쯔이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각종 스캔들과 수차례 결혼 추문에 휩싸였고, 당시 ‘시향파사(時尚芭莎)’라는 잡지와 인터뷰 중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는 속마음을 비추기도 했다.그동안 승승장구하며 인기가 오른 스타가 왜 각종 구설수에 오르고 내리막길을 걷게 됐는지는 그녀와 중공과의 관계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많다. 2008년 3월, 장쯔이는 아테네에 가서 올림픽 성화 점화의식에 참가했다. 3월 24일 점화식 현장에서 장쯔이는 VIP로 가장해 헤라 신전에 들어가려 시도하다 올림피아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했다. 장쯔이가 이때 망신당한 사건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네티즌들은 “장쯔이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다시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 4월 14일, 장쯔이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중공의 올림픽 개최는 대단한 업적’이라고 치켜세우며 티베트, 파룬궁 등 중공의 인권박해에 대한 항의 집회를 보도한 서방매체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8년 5월 5일 장쯔이는 하이난에서 206번째 횃불 주자로 선정돼 베이징 올림픽 횃불을 봉송했다. 중공 지지하던 유명인사들, 불행 잇따라최근 중국 대륙의 일부 언론‧ 예술․ 체육계 유명 인사들이 맹목적으로 중공을 추종하고 선전하면서 각 분야에서 중공의 대리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장쯔이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들이 중공 편에 서서 당을 선전했는데, 그 중 불행한 일을 당하고 몰락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9년 6월 5일, 관영언론인 중앙TV에 근무하던 뤄징은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는데 48세에 불과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이래 뤄징은 냉혹한 표정으로 TV에 나와 파룬궁을 모욕하는 대량의 허위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전 중앙 TV의 논설위원 천망은 2008년 12월 23일 위암으로 47세에 사망했다. 천망은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 기록을 제작한 사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 민중을 기만하고 파룬궁 수련자에게 분신자살했다는 죄를 씌운 조작극이다.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은 국제교육개발(IED)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올해의 10대 조작 뉴스’에 선정됐으며, 이로 인해 중공은 유엔총회에서 강한 질타를 받았다.중국의 연예계 대부 자오본산 역시 비굴하게 중공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다. 그 공로로 당국은 그를 연예계 대부로 만들었다. 또한 보시라이의 모반계획에 자오본산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은 모반을 통해 시진핑을 몰아내고 최고 권력자가 되면 스마난을 선전부 부장으로, 쿵칭둥을 교육부 부장으로, 자오본산을 문화부 부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자오본산은 지난해에 뇌출혈로 사망 위기에 처할 만큼 위험한 상황을 맞았다. 또한, 자오본산은 보시라이와 친밀한 관계 때문에 현재 출국금지 조치 당하고, 당국의 조사 중에 있다.  유명한 농구선수 야오밍은 지난 2002년 10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시합에서 부상을 입어 당국의 치료를 받고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결국 또 부상을 당했다. 2009년 5월 9일에는 왼발의 복사뼈가 끊어져 1년간 부상에 시달렸다. 결국 2011년 7월 20일 정식 은퇴했는데 당시 야오밍의 나이는 30세에 불과 했다.전 체조 챔피언인 리닝은 은퇴 후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렸던 인물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 8월 8일 밤, 40세의 나이였던 리닝은 베이징 메인스타디움 ‘새둥지(鳥巢)’에서 공중을 나르는 연기로 올림픽 횃불을 점화했다. 하지만 2008년 8월 11일, 올림픽 개막식 후 첫날 열린 주식시장에서 시가 18억 달러인 홍콩 리닝그룹의 주식 1/3이 증발해버려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려버렸다. 2012년 초 리닝그룹은 전년도 실적을 공개했는데 2010년, 리닝은 하루에 시가 35억 위안이 증발해 재산이 거덜났다는 소식이 나와 중국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Section - | 뉴스 | 라이프 | 연재 | 엔터테인먼트 | 칼럼 | 오피니언
  •   Category - | 국제 | 경제 | 시사 | 중국 | 전국
  • 뉴스 Edition > 중국
     
    장쯔이·야오밍… 중공 홍보 인사 줄줄이 몰락
    • [ 기사입력   2012-06-11 23:49:00 ]

      최근, 세계적인 영화 배우 장쯔이가 보시라이와 성스캔들에 휩싸였다. 그 동안 장쯔이는  줄곧 국내외에서 중공에 공공부문 홍보를 해왔지만 이번 사건에서 비참하게 버림받았다. (사진=AFP)

       

      최근 영화배우 장쯔이가 前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장쯔이는 성접대 스캔들을 전면 부인했고, 이번 스캔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스캔들은 중문 인터넷 뉴스사이트 ‘보쉰(boxun.com)’과 대만의 ‘애플데일리’ 등이 처음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중국 대륙의 당 기관지도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내용으로 보도하며 주요 이슈로 다뤘다. 또  해외의 친 중공 매체는 장쯔이의 이번 법적대응은 ‘우둔한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장쯔이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중공으로부터 외면 받게 됐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중공을 위해 적극 활동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겪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월 28일 해외 중문 인터넷 뉴스사이트 ‘보쉰’은 “장쯔이와 보시라이가 성접대 관계를 맺었고 이 사실로 조사팀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출국이 금지됐다”고 전했다. 또한 “장쯔이는 보시라이 및 다른 고위층과 성접대를 통해 적어도 7억 위안(약 1300억 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보시라이의 측근인 쉬밍(徐明) 다롄스더 그룹 회장(41)이 기율 위반 혐의로 체포된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장쯔이, 중공 가입 이후 숱한 구설수


      5월 30일, 장쯔이는 홍콩 하이커우(海口)에서 열린 ‘제12회 중국영화 미디어 어워드’ 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 스캔들을 전면 부정하며 공개적인 대응에 나섰다. 장쯔이는 홍콩 공항에서 ‘동방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에서 최고의 변호사팀을 선임해 보쉰의 소식을 전재한 홍콩 ‘빈과일보’ 에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쯔이는 또한 “쉬밍(徐明)을 모를 뿐만 아니라 보시라이와도 만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이징에 있는 친 중공 중국어 뉴스 사이트인 ‘둬웨이신문망(多維新聞網)’은 장쯔이의 말을 반박하며 “그녀는 쉬밍과 은밀하게 거래했고, 쉬밍의 개인 전용기도 마음대로 사용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하지만 둬웨이신문망은 장쯔이와 쉬밍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국내외 중공 당 기관지와 친 중공 매체들은 이 소식을 빠르게 전파했다. 또한 대륙 매체는 보시라이와 쉬밍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며 고위층이라고만 보도했다.


      타이완 친 중공 매체인 중국시보와 왕보는 보시라이 사건이 터진 이후에 일관되게 보시라이를 지지해왔다. 중국시보는 이번 보도에서 헤드라인을 “세계적인 영화배우 ‘장쯔이 매춘’ ”으로 뽑았다. 또한 보쉰의 보도를 인용해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이번 스캔들을 부인했으며 홍콩 빈과일보에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번 스캔들을 호주 뉴스, 미국의 폭스뉴스, 영국 데일리매일 등 세계적인 매체에서 보도해 전 세계에 퍼지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해외 일부 매체는 “그녀가 매춘을 부인했다”고 전하며 그녀의 법적 대응은 슬기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이밖에, 장쩌민 파 계열의 해외 중문매체 ‘환구망’에서는 장쯔이가 출국 금지 당했다고 보도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 사이트는 6월 1일 이번 성스캔들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면서 “ 장쯔이는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여러 명의 고위 정치인 및 재력가들에 대한 성접대를 통해 1억 달러의 대가를 받았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보시라이-저우융캉의 모반’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장쯔이의 ‘성접대 스캔들’로 덮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장쯔이는 지금까지 중공을 지지하며 국내외에서 중공을 선전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을 통해 중공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됐으며, 보시라이-저우융캉의 모반이라는 정치적 이슈를 덮는데 사용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추문에 휩싸인 장쯔이, 내리막 길로


      2009년 말까지 장쯔이는 크고 작은 경력을 쌓으며 전성기를 누려왔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숱한 고생과 노력을 겪으면서 유명 영화배우로 우뚝 섰다. 그녀는 ‘와호장룡(臥虎藏龍)’에 출연,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돼 유명세를 타면서 점점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영어도 능통해 상류사회 파티에 자주 참석해 유명인사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자연스레 국제적인 배우로 성장하게 됐다.


      하지만 2009년 말부터 장쯔이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각종 스캔들과 수차례 결혼 추문에 휩싸였고, 당시 ‘시향파사(時尚芭莎)’라는 잡지와 인터뷰 중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는 속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인기가 오른 스타가 왜 각종 구설수에 오르고 내리막길을 걷게 됐는지는 그녀와 중공과의 관계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많다.


      2008년 3월, 장쯔이는 아테네에 가서 올림픽 성화 점화의식에 참가했다. 3월 24일 점화식 현장에서 장쯔이는 VIP로 가장해 헤라 신전에 들어가려 시도하다 올림피아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했다. 장쯔이가 이때 망신당한 사건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네티즌들은 “장쯔이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다시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 4월 14일, 장쯔이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중공의 올림픽 개최는 대단한 업적’이라고 치켜세우며 티베트, 파룬궁 등 중공의 인권박해에 대한 항의 집회를 보도한 서방매체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8년 5월 5일 장쯔이는 하이난에서 206번째 횃불 주자로 선정돼 베이징 올림픽 횃불을 봉송했다.


      중공 지지하던 유명인사들, 불행 잇따라


      최근 중국 대륙의 일부 언론‧ 예술․ 체육계 유명 인사들이 맹목적으로 중공을 추종하고 선전하면서 각 분야에서 중공의 대리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장쯔이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들이 중공 편에 서서 당을 선전했는데, 그 중 불행한 일을 당하고 몰락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9년 6월 5일, 관영언론인 중앙TV에 근무하던 뤄징은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는데 48세에 불과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한 이래 뤄징은 냉혹한 표정으로 TV에 나와 파룬궁을 모욕하는 대량의 허위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전 중앙 TV의 논설위원 천망은 2008년 12월 23일 위암으로 47세에 사망했다. 천망은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 기록을 제작한 사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 민중을 기만하고 파룬궁 수련자에게 분신자살했다는 죄를 씌운 조작극이다.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은 국제교육개발(IED)등 여러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올해의 10대 조작 뉴스’에 선정됐으며, 이로 인해 중공은 유엔총회에서 강한 질타를 받았다.


      중국의 연예계 대부 자오본산 역시 비굴하게 중공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다. 그 공로로 당국은 그를 연예계 대부로 만들었다. 또한 보시라이의 모반계획에 자오본산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은 모반을 통해 시진핑을 몰아내고 최고 권력자가 되면 스마난을 선전부 부장으로, 쿵칭둥을 교육부 부장으로, 자오본산을 문화부 부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자오본산은 지난해에 뇌출혈로 사망 위기에 처할 만큼 위험한 상황을 맞았다. 또한, 자오본산은 보시라이와 친밀한 관계 때문에 현재 출국금지 조치 당하고, 당국의 조사 중에 있다.

        
      유명한 농구선수 야오밍은 지난 2002년 10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시합에서 부상을 입어 당국의 치료를 받고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결국 또 부상을 당했다. 2009년 5월 9일에는 왼발의 복사뼈가 끊어져 1년간 부상에 시달렸다. 결국 2011년 7월 20일 정식 은퇴했는데 당시 야오밍의 나이는 30세에 불과 했다.


      전 체조 챔피언인 리닝은 은퇴 후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렸던 인물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 8월 8일 밤, 40세의 나이였던 리닝은 베이징 메인스타디움 ‘새둥지(鳥巢)’에서 공중을 나르는 연기로 올림픽 횃불을 점화했다.


      하지만 2008년 8월 11일, 올림픽 개막식 후 첫날 열린 주식시장에서 시가 18억 달러인 홍콩 리닝그룹의 주식 1/3이 증발해버려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려버렸다. 2012년 초 리닝그룹은 전년도 실적을 공개했는데 2010년, 리닝은  하루에 시가 35억 위안이 증발해 재산이 거덜났다는 소식이 나와 중국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Tweeter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