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위층, ‘6· 4’시위에 유화적인 이유는 ‘6·4’를 복권하자는 중국 민중들의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2009년 5월 31일 홍콩 시민들이 ‘6·4 복권’ ‘학살책임자 처벌’ 등의 표어를 들고 거리 행진을 벌이는 모습. (홍콩=쉬하이칭 기자)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23주년을 맞아, 중공 당국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시진핑 취임 후 ‘6·4’ 복권에 대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6월 4일은 1989년 ‘6·4’ 사건이 발생한 지 23주년 되는 날이었다. 중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는 이메일에서 “최근 구이저우(貴州) 등 민중들이 ‘6·4’ 복권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중공 당국이 ‘6·4’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으며, 시진핑 취임 후 ‘6· 4’를 복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고 밝혔다.1989년 중국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그 해 6월 3일 저녁부터 4일 새벽까지 중공군은 베이징에서 잔혹한 탄압을 벌였다. 이것이 바로 ‘6·4’사건이다. 중공은 오랫동안 ‘6·4’사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금지했고 ‘6·4’사건 희생자의 복권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중공 원자바오 총리는 중공 고위층 비밀회의에서 1989 민중운동을 복권해야 한다고 세 차례 언급했다. 홍콩언론은 원자바오가 각각 2010년 말, 2011년 말, 2012년 3월에 89 민중운동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곧바로 자신의 수하로 구성된 18대 당대회 준비팀에 지시해 중앙조직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를 중심으로 전문 패널을 구성하고, 1989 민중운동 복권의 구체적인 실행 가능성에 관한 보고 초안을 세웠다고 한다. 그 중에는 복권을 진행하고 선포하는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희생자 보상 기준, 부상자 배정, 관련자 명예 회복, 사건 책임자에 대한 결론 및 법적 책임 추궁 등이 포함된다.홍콩 대기원은 시사평론가 청샹(程翔)의 말을 인용, 이번 사건은 중공 최고 당국이 ‘6·4’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천천히 ‘6·4’의 복권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청샹은 이런 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지난해 일부 사람들이 이미 ‘톈안먼 어머니(天安門母親, ‘6·4’사건 희생자 어머니 모임)’와 개별 접촉을 시작해 배상 문제를 논의할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는 ‘6·4’문제에 대한 중공의 생각이 유연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다.청샹은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임기 마지막 해에 상당히 민감한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이후 시진핑이 집권해 이에 대한 조치를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원자바오 파룬궁 복권 언급원자바오는 최근 고위층 회의에서 여러 차례 중공 고위층의 금지구역을 건드렸다. 해외 언론은 지난 3월 24일 관련 내막을 보도하면서, 원자바오가 정치개혁, ‘6·4’ 복권, 전 중공지도자 후야오방, 자오쯔양 복권을 언급한 외에도 ‘파룬궁(法輪功)’ 복권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저우융캉이 대표하는 장쩌민 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언론은 전했다.원자바오가 ‘파룬궁’ 복권을 언급한 이후,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서는 중공의 최대 금기 주제인 ‘파룬궁’이 한동안 해금되기도 했다. 3월 21일 새벽 1시에 바이두에 파룬궁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이 검색되었으며, 22일에는 ‘톈안먼 분신자살 위조사건’을 파헤친 영화 ‘위화(偽火)’가 해금되었다. 23일 저녁에는 ‘피비린내 나는 생체장기적출(血腥的活摘器官)’ 서적이 바이두에서 해금되었다. 이러한 파룬궁 탄압, 생체장기적출 등의 만행을 주도한 측은 장쩌민, 저우융캉, 뤄간, 보시라이 등 혈채파다.원자바오의 ‘파룬궁’ 복권 언급에 대해 외부에서는 후-원이 파룬궁 문제에서 혈채파와 공개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들이 장쩌민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거나, 거대한 자금이 소모되는 ‘파룬궁 탄압’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중국문제 전문가 장제롄(張傑連)은 “저항은 저우융캉, 장쩌민 등 파룬궁을 탄압한 소집단에서 나오고 있다. 그들이 파룬궁 탄압에서 전국적인 정치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각 방면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획득했다. 파룬궁 탄압은 그들이 사리사욕을 취하는 방법이다. 만약 파룬궁 탄압 노선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청산될 것이다. 이는 혈채파(血債派·파룬궁 탄압에 적극가담한 세력)가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고 분석했다.‘6·4’ 탄압 주도자들, 앞다퉈 책임 회피덩샤오핑(鄧小平), 리펑(李鵬), 양샹쿤(楊尙昆), 천시퉁(陳希同)은 ‘6·4’ 학살사건의 4대 원흉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리펑은 원래 2010년 6월 홍콩에서 ‘리펑일기(李鵬日記)’를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중공 당국의 반대로 출판이 금지되었다. 리펑일기에서 그는 ‘6·4’ 학살 당시 군대의 베이징 진입과 계엄령 선포를 명령한 것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며, 자신은 그의 음모에 이용돼 진입의 최전선으로 밀려났을 뿐이라고 적었다.최근 병보석(病保釋)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고 있는 전 베이징시 서기 천시퉁도 홍콩에서 책을 내고, ‘6·4’ 사건 중 자신이 덩샤오핑에게 허위 보고해 그가 진압을 결정하게 만들지 않았다며,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계엄군 지휘관을 맡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톈안먼의 어머니’는 천시퉁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평했다.더군다나 올 2월 충칭사건 이후 정법위 계통의 흑막이 겹겹이 드러나면서, 후-원은 정법위 계통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중국의 형세가 거대한 변화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해외 언론은 학생들을 탄압한 ‘6·4’ 원흉들이 앞다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축소하려는 것은 중국 정세가 ‘6·4’를 복권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이렇게 책임회피에 연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저명한 경제학자인 마오위스(茅于軾)는 최근 올해 안에 ‘6·4’가 복권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中 민중 ‘6·4’ 복권 요구하는 집회 열어최근 중국에서 ‘6·4’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이저우, 푸졘(福建), 산둥(山東), 베이징(北京) 지역의 민중들이 연이어 집회를 열고 ‘6·4’ 복권 요구에 나섰다.5월 24일, 73세의 야웨이린(軋偉林)은 “아들이 맞아 죽은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당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죽음으로서 항쟁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었다. 그의 미망인인 장전샤(張振霞)는 언론에서 “남편은 자살하기 전 연이틀 동안 ‘6·4’에서 죽은 아들을 꿈에서 보았다.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5월 28일, 구이저우 인권토론회 회원들은 구이양(貴陽)시 인민광장에서 ‘탄압 관련자 처벌, 정치박해 중지’ 등 플래카드를 내걸고 ‘6·4’ 기념행사를 가졌다. 행사 도중 정부 측에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이런 상황은 과거 23년 동안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서 구이양 당국이 29일 행사 참가자를 연행했다고 한다.5월 29일, 미국에 유학 중인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유학생 20명은 후진타오와 시진핑에게 공동 서신을 보내, 18대에서 ‘6·4’를 복권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과 소속 학교를 모두 밝혔다.5월 3일 ‘톈안먼 어머니’는 121명의 연합 성명을 발표해, 1989년 ‘6·4’에서 탄압받은 희생자를 기념했다. ‘톈안먼 어머니’ 발기인 중 한 명인 딩즈린(丁子霖)은 ‘톈안먼 어머니’의 ‘진상, 보상, 문책’의 3개 이념은 변하지 않았다며, “‘6·4’의 비극은 제도가 조성한 것이다. 이는 홀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정치제도 개혁과 평화민주로의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톈안먼 어머니’ 중 30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상방(청원)민들도 최근 베이징에서 ‘6·4’ 기념 음악회를 열었다. 그들은 베이징에 상방을 온 후 인터넷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산둥 지난(濟南)에서도 제5회 ‘6·4’ 추모회가 열렸다. 참가자 20명 중에는 ‘6·4’ 때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과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 대학생, 산링허우(1930년대 출생자) 퇴직 대학교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5월 30일, 푸졘시 시민 10여 명은 옌핑구(延平區) 법원에 모인 후 난핑시구(南平市區)의 도로를 따라 ‘6·4’ 복권과 원 총리의 정치개혁을 촉구하며 2시간가량 시가행진을 벌였다.홍콩 시민 60% “‘6·4’ 복권 지지”홍콩대학 민심연구계획(Public Opinion Programme)은 조사를 통해 홍콩 시민 60%가 ‘6·4’ 복권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또한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 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비율이 경제성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비율보다 높았다.홍콩대학 민심연구계획은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1003명의 홍콩시민을 인터뷰했으며, 그중 61%가 ‘6·4’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조사보다 3%가 상승한 수치이다.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비율도 19%에서 17%로 떨어졌다. 조사자 중 55%는 당시 베이징 학생들의 행동은 정확했다고 응답했고, 69%는 중공의 ‘6·4’사건에 대한 처리방식이 부당하다고 대답했다. http://www.youmaker.com/ 【스타오 논평】 ‘6·4’ 23주년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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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고위층, ‘6· 4’시위에 유화적인 이유는
    • [ 기사입력   2012-06-07 15:32:28 ]

      ‘6·4’를 복권하자는 중국 민중들의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2009년 5월 31일 홍콩 시민들이 ‘6·4 복권’ ‘학살책임자 처벌’ 등의 표어를 들고 거리 행진을 벌이는 모습. (홍콩=쉬하이칭 기자)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23주년을 맞아, 중공 당국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시진핑 취임 후 ‘6·4’ 복권에 대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6월 4일은 1989년 ‘6·4’ 사건이 발생한 지 23주년 되는 날이었다.


      중국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는 이메일에서 “최근 구이저우(貴州) 등 민중들이 ‘6·4’ 복권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중공 당국이 ‘6·4’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으며, 시진핑 취임 후 ‘6· 4’를 복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1989년 중국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그 해 6월 3일 저녁부터 4일 새벽까지 중공군은 베이징에서 잔혹한 탄압을 벌였다. 이것이 바로 ‘6·4’사건이다. 중공은 오랫동안 ‘6·4’사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금지했고 ‘6·4’사건 희생자의 복권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중공 원자바오 총리는 중공 고위층 비밀회의에서 1989 민중운동을 복권해야 한다고 세 차례 언급했다. 홍콩언론은 원자바오가 각각 2010년 말, 2011년 말, 2012년 3월에 89 민중운동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곧바로 자신의 수하로 구성된 18대 당대회 준비팀에 지시해 중앙조직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를 중심으로 전문 패널을 구성하고, 1989 민중운동 복권의 구체적인 실행 가능성에 관한 보고 초안을 세웠다고 한다. 그 중에는 복권을 진행하고 선포하는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희생자 보상 기준, 부상자 배정, 관련자 명예 회복, 사건 책임자에 대한 결론 및 법적 책임 추궁 등이 포함된다.


      홍콩 대기원은 시사평론가 청샹(程翔)의 말을 인용, 이번 사건은 중공 최고 당국이 ‘6·4’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천천히 ‘6·4’의 복권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샹은 이런 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지난해 일부 사람들이 이미 ‘톈안먼 어머니(天安門母親, ‘6·4’사건 희생자 어머니 모임)’와 개별 접촉을 시작해 배상 문제를 논의할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는 ‘6·4’문제에 대한 중공의 생각이 유연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다.


      청샹은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임기 마지막 해에 상당히 민감한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이후 시진핑이 집권해 이에 대한 조치를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자바오 파룬궁 복권 언급


      원자바오는 최근 고위층 회의에서 여러 차례 중공 고위층의 금지구역을 건드렸다. 해외 언론은 지난 3월 24일 관련 내막을 보도하면서, 원자바오가 정치개혁, ‘6·4’ 복권, 전 중공지도자 후야오방, 자오쯔양 복권을 언급한 외에도 ‘파룬궁(法輪功)’ 복권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저우융캉이 대표하는 장쩌민 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언론은 전했다.


      원자바오가 ‘파룬궁’ 복권을 언급한 이후,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서는 중공의 최대 금기 주제인 ‘파룬궁’이 한동안 해금되기도 했다. 3월 21일 새벽 1시에 바이두에 파룬궁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이 검색되었으며, 22일에는 ‘톈안먼 분신자살 위조사건’을 파헤친 영화 ‘위화(偽火)’가 해금되었다. 23일 저녁에는 ‘피비린내 나는 생체장기적출(血腥的活摘器官)’ 서적이 바이두에서 해금되었다. 이러한 파룬궁 탄압, 생체장기적출 등의 만행을 주도한 측은 장쩌민, 저우융캉, 뤄간, 보시라이 등 혈채파다.


      원자바오의 ‘파룬궁’ 복권 언급에 대해 외부에서는 후-원이 파룬궁 문제에서 혈채파와 공개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들이 장쩌민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거나, 거대한 자금이 소모되는 ‘파룬궁 탄압’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문제 전문가 장제롄(張傑連)은 “저항은 저우융캉, 장쩌민 등 파룬궁을 탄압한 소집단에서 나오고 있다. 그들이 파룬궁 탄압에서 전국적인 정치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각 방면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획득했다. 파룬궁 탄압은 그들이 사리사욕을 취하는 방법이다. 만약 파룬궁 탄압 노선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청산될 것이다. 이는 혈채파(血債派·파룬궁 탄압에 적극가담한 세력)가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고 분석했다.


      ‘6·4’ 탄압 주도자들, 앞다퉈 책임 회피


      덩샤오핑(鄧小平), 리펑(李鵬), 양샹쿤(楊尙昆), 천시퉁(陳希同)은 ‘6·4’ 학살사건의 4대 원흉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리펑은 원래 2010년 6월 홍콩에서 ‘리펑일기(李鵬日記)’를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중공 당국의 반대로 출판이 금지되었다. 리펑일기에서 그는 ‘6·4’ 학살 당시 군대의 베이징 진입과 계엄령 선포를 명령한 것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며, 자신은 그의 음모에 이용돼 진입의 최전선으로 밀려났을 뿐이라고 적었다.


      최근 병보석(病保釋)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고 있는 전 베이징시 서기 천시퉁도 홍콩에서 책을 내고, ‘6·4’ 사건 중 자신이 덩샤오핑에게 허위 보고해 그가 진압을 결정하게 만들지 않았다며,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계엄군 지휘관을 맡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톈안먼의 어머니’는 천시퉁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평했다.


      더군다나 올 2월 충칭사건 이후 정법위 계통의 흑막이 겹겹이 드러나면서, 후-원은 정법위 계통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중국의 형세가 거대한 변화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


      해외 언론은 학생들을 탄압한 ‘6·4’ 원흉들이 앞다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축소하려는 것은 중국 정세가 ‘6·4’를 복권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이렇게 책임회피에 연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오위스(茅于軾)는 최근 올해 안에 ‘6·4’가 복권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中 민중 ‘6·4’ 복권 요구하는 집회 열어


      최근 중국에서 ‘6·4’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이저우, 푸졘(福建), 산둥(山東), 베이징(北京) 지역의 민중들이 연이어 집회를 열고 ‘6·4’ 복권 요구에 나섰다.


      5월 24일, 73세의 야웨이린(軋偉林)은 “아들이 맞아 죽은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당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죽음으로서 항쟁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었다. 그의 미망인인 장전샤(張振霞)는 언론에서 “남편은 자살하기 전 연이틀 동안 ‘6·4’에서 죽은 아들을 꿈에서 보았다.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5월 28일, 구이저우 인권토론회 회원들은 구이양(貴陽)시 인민광장에서 ‘탄압 관련자 처벌, 정치박해 중지’ 등 플래카드를 내걸고 ‘6·4’ 기념행사를 가졌다. 행사 도중 정부 측에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이런 상황은 과거 23년 동안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서 구이양 당국이 29일 행사 참가자를 연행했다고 한다.


      5월 29일, 미국에 유학 중인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유학생 20명은 후진타오와 시진핑에게 공동 서신을 보내, 18대에서 ‘6·4’를 복권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과 소속 학교를 모두 밝혔다.


      5월 3일 ‘톈안먼 어머니’는 121명의 연합 성명을 발표해, 1989년 ‘6·4’에서 탄압받은 희생자를 기념했다. ‘톈안먼 어머니’ 발기인 중 한 명인 딩즈린(丁子霖)은 ‘톈안먼 어머니’의 ‘진상, 보상, 문책’의 3개 이념은 변하지 않았다며, “‘6·4’의 비극은 제도가 조성한 것이다. 이는 홀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정치제도 개혁과 평화민주로의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톈안먼 어머니’ 중 30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상방(청원)민들도 최근 베이징에서 ‘6·4’ 기념 음악회를 열었다. 그들은 베이징에 상방을 온 후 인터넷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산둥 지난(濟南)에서도 제5회 ‘6·4’ 추모회가 열렸다. 참가자 20명 중에는 ‘6·4’ 때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과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 대학생, 산링허우(1930년대 출생자) 퇴직 대학교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5월 30일, 푸졘시 시민 10여 명은 옌핑구(延平區) 법원에 모인 후 난핑시구(南平市區)의 도로를 따라 ‘6·4’ 복권과 원 총리의 정치개혁을 촉구하며 2시간가량 시가행진을 벌였다.


      홍콩 시민 60% “‘6·4’ 복권 지지”


      홍콩대학 민심연구계획(Public Opinion Programme)은 조사를 통해 홍콩 시민 60%가 ‘6·4’ 복권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또한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 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비율이 경제성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비율보다 높았다.


      홍콩대학 민심연구계획은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1003명의 홍콩시민을 인터뷰했으며, 그중 61%가 ‘6·4’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조사보다 3%가 상승한 수치이다.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비율도 19%에서 17%로 떨어졌다. 조사자 중 55%는 당시 베이징 학생들의 행동은 정확했다고 응답했고, 69%는 중공의 ‘6·4’사건에 대한 처리방식이 부당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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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오 논평】 ‘6·4’ 23주년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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