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철학으로 읽는 옛집' 이황이 말년에 짓고 후학을 양성한 도산서당. 선비가 지향하던 마루·방·부엌의 ‘삼칸제도’ 원칙을 지키면서 필요에 따라 공간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맨 우측) 덧댄 마루는 3칸에 포함된 마루보다 기둥·보·마루판 규격이 작아 건물의 기본 골격을 깨지 않는다. 원칙과 변용을 추구한 퇴계의 실용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창문 크기나 배열에 모두 의미가 있고, 자연을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기능이 숨어있다. ⓒ사진작가 유동영 처마 곡선, 창호로 새들어온 달빛, 소나무 향. 흔히 말하는 우리 옛집의 멋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같은 데 있는 개성 있는 한옥들을 보면서도 ‘그게 그것’ 같을 수 있다. 서양 건축가들이 유명 건축물을 남겼듯, 우리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한옥 상당수는 사실 건축가의 작품이다. 다만 서양처럼 건축가가 독립적인 직업이 아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황, 송시열, 윤선도, 이언적, 김장생, 윤증…. 이런 성리학자들이 바로 건축가였다. 이들의 작업은 지금 건축가가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집은 앎과 삶을 담는 그릇’ 이라는 것. 건축가는 예나 지금이나 삶에 대한 철학을 집에 담는다고 한다. 성리학자들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의 이치를 건축에 담았고, 꿈꾸는 삶을 거기서 영위하려 했다. 최근 ‘철학으로 읽는 옛집(열림원 刊)’을 쓴 건축가 함성호(49) 씨는 ‘처마 하나로 건축이 대중과 많은 얘기를 나누던 그 옛날’을 언급하면서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는 저자의 노고가 배어있다. 저자는 직접 집을 지은 성리학자들의 집만 골라 6년 동안 답사 여행을 했고, 훈장까지 모셔서 성리학자들이 읽던 원서도 봤다. 그러나 3년 동안 ‘논어집주’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며 스스로 우둔함을 탓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적혀 있다. … 답사를 다니면서 그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 기록은 또한 그 뼈아픈 경험의 고백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대중적이지도 않다. 이황이 말년에 기거한 안동 ‘도산서당(陶山書堂)’, 정약용이 유배 가서 지은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개울에서 보이는 극적인 경관으로 유명한 경주 ‘독락당(獨樂堂)’ 등 성리학자의 집 9채를 둘러보고, 그 이야기를 각 30쪽 정도로 썼다. 그런데 이야기 양에 비해 관련 사진이 부족해서 화자의 말을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도면을 싣지 않아 공간을 분석하는 내용은 더 따라가기 어렵다. 성리학자들의 이론은 거의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설명해, 한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밝혔듯 ‘현대와 고전의 격리’ 현상이 책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회재 이언적의 집들.(위) 경주 독락당 풍경의 백미는 옥계천과 이를 아우르고 있는 계정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끼는 폐쇄성과 이곳 계정에서 대하는 흐름과 소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아래) 양동마을 향단의 안채. 이곳에 대해 건축가 함성호는 조선 중기의 시대상과 회재 이언적에 대한 공부, 그리고 현장 체험을 통해 이전 학자들과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사진작가 유동영 그래도 이 책은 방향을 잘 잡았다. 과거를 알아야 옛집을 알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옛집의 멋을 알 수는 없다. 고인(古人)의 지혜와 생각, 생활 방식이 집약된 게 옛집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고인의 사상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의 철학과 삶에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한 시도는 분명 가치 있다. 이언적이 양동마을에 지은 향단(香壇)을 설명할 때 그 시도가 빛을 발한다. 이곳 안채는 앉아있으면 앞 건물(행랑채) 지붕과 하늘밖에 안 보여, 집의 규모와도 어울리지 않고 답답하다. 때문에 우리 옛 건축 답사의 교과서격인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舊 한국건축의 재발견)’ 시리즈에서는 이 공간을 보며 며느리가 감내했을 ‘갇힌 삶’을 유추했다. 그러나, 함성호 씨는 여권(女權)이 낮지 않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을 생각하며 안채를 스스로 경험해본다. 함께 간 건축주와 경험한 인식도 나눈다. 결국 안채의 새로운 기능을 유추해낸다.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논쟁할 바가 아니다. 아마 독자들은 입을 벌려 논쟁하려하기보다 자신도 그 집에 가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일 것이다. 이 책은 옛사람의 철학과 삶을 느끼는 일, 베일에 싸인 과거를 유추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알아채기에 충분하다.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시리즈를 함께 보면 옛 집의 내용을 차근차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하다. 인물이 남긴 글에서 그의 사상을 알아보고, 건축 당시 인물이 처한 상황이 나오는 등 배경지식 습득에 좋다. 건물 전체부터 세부까지 도면과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 이건 왜 이렇게 지었고 여기서 어떤 일상을 보냈을지도 쉽게 짐작된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나온 집 9채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흩어져 있다. 추운 겨울, 방에서 배경지식을 섭렵하다보면 꽃피는 봄에 전국을 유람하는 발걸음이 더 흥겨울지 모른다. 윤증 고택. (위)배포가 큰 가풍이 느껴지는 사진. 대대로 도덕성을 강조했다는 윤증은 후손들에게도 이웃에 원망 살 일을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고택의 양지바른 뜰에선 국산 콩으로 빚은 메주, 서산의 천일염, 고택의 샘물에 뜰 안 가득한 햇살이 더해져 300년 전통의 '전독간장'이 만들어진다. (아래)건축가 함성호는 합리적인 가치관을 지녔던 조선 후기 학자 윤증의 집에서 조선판 '시스템 도어'(사진 우측)를 확인했다. 미닫이로 가던 게 양쪽 끝에 가서 여닫이문과 합쳐져 개구부 전체가 트이게 돼있다. ⓒ사진작가 유동영 (위)남명 조식의 산천재. 건축가 함성호는 꽃피는 3월에 이곳을 찾았다. 마당에 심긴 매화는 남명이 심었다 해서 남명매라 불린다. 덕천강과 지리산까지도 산천재로 안았던 남명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사진이다. (아래)송시열이 암중모색의 결의로 지은 남간정사.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집을 지었다. 구릉지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변곡점에 입지해, 자연적으로 생긴 지반에 도을 깔아 다져서 자연적인 기단을 만들었다. ⓒ사진작가 유동영 (위)고산 윤선도가 은거한 세연정은 사방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돼있다. 도가적 이상향으로서의 수미산을 상징한다. (아래)사계 김장생의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돋보이는 임이정 내부. 전면에 보이는 부분이 온돌방이다. 일반적인 정자는 사진에서 전면에 보이는 부분 전체를 온돌방으로 들였지만, 김장생은 우측의 1/3 부분 바닥을 높여 온돌방에 또 하나의 마루를 뒀다. 건축가 함성호는 그 방향이 바깥 경치가 좋기 때문에 마루를 둬서 감상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사진작가 유동영 (사진제공=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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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 '철학으로 읽는 옛집'
  • [ 기사입력   2012-01-14 15:48:43 ]

    이황이 말년에 짓고 후학을 양성한 도산서당. 선비가 지향하던 마루·방·부엌의 ‘삼칸제도’ 원칙을 지키면서 필요에 따라 공간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맨 우측) 덧댄 마루는 3칸에 포함된 마루보다 기둥·보·마루판 규격이 작아 건물의 기본 골격을 깨지 않는다. 원칙과 변용을 추구한 퇴계의 실용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창문 크기나 배열에 모두 의미가 있고, 자연을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기능이 숨어있다. ⓒ사진작가 유동영

     

    처마 곡선, 창호로 새들어온 달빛, 소나무 향. 흔히 말하는 우리 옛집의 멋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같은 데 있는 개성 있는 한옥들을 보면서도 ‘그게 그것’ 같을 수 있다. 서양 건축가들이 유명 건축물을 남겼듯, 우리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한옥 상당수는 사실 건축가의 작품이다. 다만 서양처럼 건축가가 독립적인 직업이 아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이황, 송시열, 윤선도, 이언적, 김장생, 윤증…. 이런 성리학자들이 바로 건축가였다. 이들의 작업은 지금 건축가가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집은 앎과 삶을 담는 그릇’ 이라는 것.

     

    건축가는 예나 지금이나 삶에 대한 철학을 집에 담는다고 한다. 성리학자들은 자신이 깨달은 우주의 이치를 건축에 담았고, 꿈꾸는 삶을 거기서 영위하려 했다.

     

    최근 ‘철학으로 읽는 옛집(열림원 刊)’을 쓴 건축가 함성호(49) 씨는 ‘처마 하나로 건축이 대중과 많은 얘기를 나누던 그 옛날’을 언급하면서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는 저자의 노고가 배어있다. 저자는 직접 집을 지은 성리학자들의 집만 골라 6년 동안 답사 여행을 했고, 훈장까지 모셔서 성리학자들이 읽던 원서도 봤다. 그러나 3년 동안 ‘논어집주’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며 스스로 우둔함을 탓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적혀 있다. … 답사를 다니면서 그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 기록은 또한 그 뼈아픈 경험의 고백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대중적이지도 않다. 이황이 말년에 기거한 안동 ‘도산서당(陶山書堂)’, 정약용이 유배 가서 지은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개울에서 보이는 극적인 경관으로 유명한 경주 ‘독락당(獨樂堂)’ 등 성리학자의 집 9채를 둘러보고, 그 이야기를 각 30쪽 정도로 썼다. 그런데 이야기 양에 비해 관련 사진이 부족해서 화자의 말을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도면을 싣지 않아 공간을 분석하는 내용은 더 따라가기 어렵다. 성리학자들의 이론은 거의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설명해, 한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밝혔듯 ‘현대와 고전의 격리’ 현상이 책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회재 이언적의 집들.(위) 경주 독락당 풍경의 백미는 옥계천과 이를 아우르고 있는 계정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끼는 폐쇄성과 이곳 계정에서 대하는 흐름과 소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아래) 양동마을 향단의 안채. 이곳에 대해 건축가 함성호는 조선 중기의 시대상과 회재 이언적에 대한 공부, 그리고 현장 체험을 통해 이전 학자들과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사진작가 유동영

     

    그래도 이 책은 방향을 잘 잡았다. 과거를 알아야 옛집을 알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옛집의 멋을 알 수는 없다. 고인(古人)의 지혜와 생각, 생활 방식이 집약된 게 옛집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고인의 사상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의 철학과 삶에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한 시도는 분명 가치 있다. 이언적이 양동마을에 지은 향단(香壇)을 설명할 때 그 시도가 빛을 발한다.

     

    이곳 안채는 앉아있으면 앞 건물(행랑채) 지붕과 하늘밖에 안 보여, 집의 규모와도 어울리지 않고 답답하다. 때문에 우리 옛 건축 답사의 교과서격인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舊 한국건축의 재발견)’ 시리즈에서는 이 공간을 보며 며느리가 감내했을 ‘갇힌 삶’을 유추했다. 그러나, 함성호 씨는 여권(女權)이 낮지 않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을 생각하며 안채를 스스로 경험해본다. 함께 간 건축주와 경험한 인식도 나눈다. 결국 안채의 새로운 기능을 유추해낸다.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논쟁할 바가 아니다. 아마 독자들은 입을 벌려 논쟁하려하기보다 자신도 그 집에 가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일 것이다. 이 책은 옛사람의 철학과 삶을 느끼는 일, 베일에 싸인 과거를 유추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알아채기에 충분하다.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시리즈를 함께 보면 옛 집의 내용을 차근차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하다. 인물이 남긴 글에서 그의 사상을 알아보고, 건축 당시 인물이 처한 상황이 나오는 등 배경지식 습득에 좋다. 건물 전체부터 세부까지 도면과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 이건 왜 이렇게 지었고 여기서 어떤 일상을 보냈을지도 쉽게 짐작된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나온 집 9채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흩어져 있다. 추운 겨울, 방에서 배경지식을 섭렵하다보면 꽃피는 봄에 전국을 유람하는 발걸음이 더 흥겨울지 모른다.

     

    윤증 고택. (위)배포가 큰 가풍이 느껴지는 사진. 대대로 도덕성을 강조했다는 윤증은 후손들에게도 이웃에 원망 살 일을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고택의 양지바른 뜰에선 국산 콩으로 빚은 메주, 서산의 천일염, 고택의 샘물에 뜰 안 가득한 햇살이 더해져 300년 전통의 '전독간장'이 만들어진다. (아래)건축가 함성호는 합리적인 가치관을 지녔던 조선 후기 학자 윤증의 집에서 조선판 '시스템 도어'(사진 우측)를 확인했다. 미닫이로 가던 게 양쪽 끝에 가서 여닫이문과 합쳐져 개구부 전체가 트이게 돼있다. ⓒ사진작가 유동영

     

    (위)남명 조식의 산천재. 건축가 함성호는 꽃피는 3월에 이곳을 찾았다. 마당에 심긴 매화는 남명이 심었다 해서 남명매라 불린다. 덕천강과 지리산까지도 산천재로 안았던 남명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사진이다. (아래)송시열이 암중모색의 결의로 지은 남간정사.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집을 지었다. 구릉지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변곡점에 입지해, 자연적으로 생긴 지반에 도을 깔아 다져서 자연적인 기단을 만들었다. ⓒ사진작가 유동영

     

    (위)고산 윤선도가 은거한 세연정은 사방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돼있다. 도가적 이상향으로서의 수미산을 상징한다. (아래)사계 김장생의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돋보이는 임이정 내부. 전면에 보이는 부분이 온돌방이다. 일반적인 정자는 사진에서 전면에 보이는 부분 전체를 온돌방으로 들였지만, 김장생은 우측의 1/3 부분 바닥을 높여 온돌방에 또 하나의 마루를 뒀다. 건축가 함성호는 그 방향이 바깥 경치가 좋기 때문에 마루를 둬서 감상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사진작가 유동영

     

    (사진제공=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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