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삶을 먹다' 스티브잡스 vs 농부로 본 진정한 삶의 의미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당연히 농부가 되어선 안 되고, 도시로 나갈 수 있으면 시골에 있어선 안 되고, 돈이 되는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산비탈에서 농사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미국의 한 농부가 있다. 웬델 베리라는 이름의 농부이자 작가가 쓴 책 ‘온 삶을 먹다’는 기계와 기업에 종속되어버린 무기력한 오늘날의 자화상에 회의를 느껴본 사람에게는 하나의 ‘혁명서’가 될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책 내용을 소개한다.얼마 전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분야를 혁신한 애플을 진두지휘했던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잡스에 대한 관심은 ‘신드롬’에 가깝다. 전 세계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업적을 예찬 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공식 전기에서 스스로 고백하듯, 그의 작업은 ‘먼저 이루어진 성과들 위에서 몇 가지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새로운 도구에 종속된 인류, 그리고 노동력 착취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도구로 인해 더 편리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로인한 종속과 노동력의 착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사이버세계가 실제 삶을 대체하고 자신만의 욕망과 환상에 맞게 개조한 가상세계에 더 오래 머무는 오늘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창의와 혁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물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제프 딕슨이 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의 몇 구절이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은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면 제프 딕슨의 역설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소중한 것들로부터 멀어져 있다.여기, 스티브 잡스 반대편에 웬델 베리라는 미국의 농부가 있다. 잡스가 실리콘벨리의 총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동안, 베리는 고향 켄터키 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웬델 베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먹거리를 스스로 거두어 먹으라고. 그랬을 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민주주의가 정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소농(小農)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중산층이란 세계 경제의 추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으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는 구조화된 운명에 놓여있다. 전혀 독립적이지 않으며 경제 예속적이다. 그러면서 부와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땅과 자본이 소수에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다만 정부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베리의 진단은 정확하다. 지금 20대 80을 넘어 1대 99가 된 사회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실업’일 뿐이다베리는 산업화가 ‘정신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실업’이다. 사람들은 업무 종료시간을 위해, 주말을 위해, 휴가를 위해, 은퇴를 위해 일한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오직 그 일을 하지 않을 때를 위해서다. 정신의 퇴보는 인간의 ‘지고한 소명’을 박탈했다. 에릭 길이 말하듯 “누구나 손으로 하는 일을 사랑하도록, 예술가가 되도록 소명을 받아”태어났는데도 말이다. 베리는 “작은 가족농장이야말로 남녀노소가 예술가가 되라는, 손으로 하는 일을 사랑할 줄 알라는 소명에 답할 수 있는 마지막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곳이 나날이 줄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삼성 이건희 회장도 하루 세끼를 먹고, 나도 하루 세끼를 먹는다며 돈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하곤 한다. 이 역설 속에는 인간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존재임이 내포돼 있다. 베리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해 말한다. 먹거리에 관심이 있으면서 먹거리 생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부조리라고.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는 먹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삶, 그것은 농업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소비경제’의 강요에서 벗어났을 때, 순환 가능한 자연법칙에 따르는 순박한 소농이 번영했을 때 가능하다고 웬델 베리는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일그러져 가는 인류의 자화상은 웬델 베리의 확신을 반증하고 있다. “먹거리의 정치학은 우리의 자유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그 원천이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 왔다. 수동적인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조건은 민주적인 조건이 아니다. 책임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웬델 베리 지음│이한중 역│낮은산│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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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삶을 먹다' 스티브잡스 vs 농부로 본 진정한 삶의 의미
  • [ 기사입력   2011-12-01 00:18:28 ]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당연히 농부가 되어선 안 되고, 도시로 나갈 수 있으면 시골에 있어선 안 되고, 돈이 되는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산비탈에서 농사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미국의 한 농부가 있다.


    웬델 베리라는 이름의 농부이자 작가가 쓴 책 ‘온 삶을 먹다’는 기계와 기업에 종속되어버린 무기력한 오늘날의 자화상에 회의를 느껴본 사람에게는 하나의 ‘혁명서’가 될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책 내용을 소개한다.


    얼마 전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분야를 혁신한 애플을 진두지휘했던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잡스에 대한 관심은 ‘신드롬’에 가깝다. 전 세계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업적을 예찬 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공식 전기에서 스스로 고백하듯, 그의 작업은 ‘먼저 이루어진 성과들 위에서 몇 가지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새로운 도구에 종속된 인류, 그리고 노동력 착취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도구로 인해 더 편리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만남과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로인한 종속과 노동력의 착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사이버세계가 실제 삶을 대체하고 자신만의 욕망과 환상에 맞게 개조한 가상세계에 더 오래 머무는 오늘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창의와 혁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물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제프 딕슨이 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의 몇 구절이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은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면 제프 딕슨의 역설이 틀린 말이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소중한 것들로부터 멀어져 있다.


    여기, 스티브 잡스 반대편에 웬델 베리라는 미국의 농부가 있다. 잡스가 실리콘벨리의 총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동안, 베리는 고향 켄터키 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웬델 베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먹거리를 스스로 거두어 먹으라고. 그랬을 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민주주의가 정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소농(小農)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라고.


    중산층이란 세계 경제의 추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으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는 구조화된 운명에 놓여있다. 전혀 독립적이지 않으며 경제 예속적이다. 그러면서 부와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땅과 자본이 소수에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다만 정부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베리의 진단은 정확하다. 지금 20대 80을 넘어 1대 99가 된 사회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실업’일 뿐이다


    베리는 산업화가 ‘정신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실업’이다. 사람들은 업무 종료시간을 위해, 주말을 위해, 휴가를 위해, 은퇴를 위해 일한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오직 그 일을 하지 않을 때를 위해서다. 정신의 퇴보는 인간의 ‘지고한 소명’을 박탈했다. 에릭 길이 말하듯 “누구나 손으로 하는 일을 사랑하도록, 예술가가 되도록 소명을 받아”태어났는데도 말이다.


    베리는 “작은 가족농장이야말로 남녀노소가 예술가가 되라는, 손으로 하는 일을 사랑할 줄 알라는 소명에 답할 수 있는 마지막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곳이 나날이 줄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삼성 이건희 회장도 하루 세끼를 먹고, 나도 하루 세끼를 먹는다며 돈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하곤 한다. 이 역설 속에는 인간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존재임이 내포돼 있다. 베리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해 말한다. 먹거리에 관심이 있으면서 먹거리 생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부조리라고.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는 먹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삶, 그것은 농업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소비경제’의 강요에서 벗어났을 때, 순환 가능한 자연법칙에 따르는 순박한 소농이 번영했을 때 가능하다고 웬델 베리는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일그러져 가는 인류의 자화상은 웬델 베리의 확신을 반증하고 있다.


    “먹거리의 정치학은 우리의 자유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그 원천이 다른 누군가의 통제를 받을 경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해 왔다. 수동적인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조건은 민주적인 조건이 아니다. 책임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웬델 베리 지음│이한중 역│낮은산│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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